가끔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 살아도 좋다
혹시 영화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애니메이션도 기꺼이 본다면, 조금은 독특한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는 2008년도에 출간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나는 소설을 보지 않았지만, 독특한 예고편과 썸네일을 보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중에 찾아본 소설의 서평에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청춘 소설"이라고 한 걸 보면 영화가 원작을 잘 따라간 모양이다. 순수함, 기백, 천연덕스러움, 엇갈림과 조금의 행운 같은 게 가득한 이 영화는 우리가 여행에서, 혹은 삶에서 잊지 않으면 좋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영화를 보는 건 난데, 왜 이 영화가 나를 갖고 노는 것 같은지. 보는 내내 즐거운 경험이었다.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것들 중 가장 핵심에 가까운 것은 결국 제목이다.
밤은 짧아, 걸어.
인생은 짧아, 사랑을 해.
우리가 주저하다가, 망설이다가 놓치는 것을 이 영화에서는 전혀 놓치지 않는다. 당시에는 조금 바보같이 보이더라도,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더라도 쏟아부은 시간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는 걸 알려주는 그런 영화.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가진 것을 놓칠까 봐, 실수해서 다 망칠까 봐 머뭇거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뒤 안 가리고 내달려서 수습하느라 바쁜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가끔은 내 모든 여행의 순간들이 조금 아찔하게 느껴진다. 내가 배낭을 메고 태국에 내린 날이 그랬다.
잘 모르는 도시에 갑자기 머무르는 것, 나는 그런 것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방콕에서 그 환상이 실제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마침 태국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을 몇 시간 경유할 기회가 있었는데 충동적으로 며칠 머물러 볼까 하는 생각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당당하게 입국 수속을 마치며 나도 충동적인 여행이라는 걸 해보는구나, 그런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공항 밖을 나서자마자 많이 당황했다.
시계는 자정에 가까운 밤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날씨는 내가 태어나서 겪었던 더위 중에 가장 힘들었다. 동남아시아를 처음 가본 사람은 아마 더위보다 습한 공기 때문에 고생할 터였다. 네팔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이 말하길, ‘태국 시내에서 내리면 게스트하우스가 많다’고 했다.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 말만 믿고 온 나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추천해주기는 했는데, 누구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갈 수 있는 건지, 정말 절실하게 집에 가고 싶은 순간 중 하나였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택시도 하나 다니지 않았지만, 그나마 치안이 나쁘지 않은 도시라는 것이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나는 그냥 걷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도착하겠거니, 마음에 드는 방향을 골라 무작정. 배낭을 메고 터덜터덜, 그나마 불빛이 환한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툭툭 기사님이 나를 보고 차를 세웠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말했는데 역시나 고개를 가로저었다(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막무가내에 답답했을지). 다행히 그 툭툭 기사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유창한 영어로 혹시 그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랜드마크가 될만한 건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커다란 배낭 안 쪽 맨 밑바닥쯤에 있을 지도를 떠올리며 머리가 아파와서 일단 내 기억을 쥐어짜 보았다. 그리고 불현듯 ‘왓차나쏭크람(Wat Chana Songkhram)’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말했다. 툭툭 기사님은 듣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빨리 타라고 했고 그제야 나도 기사님만큼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밤은 대단히 아찔하면서 운이 좋은 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작정 갔던 태국에서 동남아시아의 매력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일본에서 온 여행자가 통기타를 들고 길거리에 앉아 버스킹 하는 것도 구경하고, 이미 6개월째 살고 있는 한 여행자가 호탕하게 웃으며 동네 구경을 자처하기도 하고, 밤이면 모든 여행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카오산 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밤새 데낄라를 마시기도 하고. 나름대로 점잖았던 유럽여행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자유로운, 매우 자유롭고 아름다운 곳이구나. 물론 다음날 아침,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숙취에 일어나면서 뜨끈한 국밥이 몹시도 그리웠지만.
이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드는 그런 날들의 기억이다. 만약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국여행을 다음으로 미뤘더라면? 시내에서 겁을 먹고 아무 호텔에나 들어갔더라면? 툭툭 기사님의 친절을 의심하고 거절했더라면? 남들의 충고처럼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뭐,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냈겠지만 이 추억은 이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아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용기 내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순간들. 내가 아주 자유로울 수 있었던 순간들. 부디 이 글을 보는 당신도 그런 자유로움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생은 짧습니다. 걸어요 우리 모두.
이 글은 글쓴이가 마케팅의 일환으로 작성한 글을 편집하여 연재하는 에세이입니다. 어디선가 보셨다면 표절이 아니고 당신은 저의 소중한 고객님.
*언젠가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코로나 시국으로 여행 이야기는 그림의 떡이 아닌 전설의 떡이 되어 버렸지만 꿋꿋하게 쓰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훈은 늘 그렇듯 인생을 미루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