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IT 노동자가 본 유럽의 문제점
벌써 유럽 생활도 거즌 12년 차다. 처음 유럽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건 2017년, 첫 나라는 독일이었다. 당시 독일은 제조업이 워낙 강하니까 그 탄탄한 하드웨어 위에 소프트웨어를 살포시 얹기만 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줄 알았었다. 그 가능성과 함께 독일 철학과 문화가 좋아 유럽 직장생활을 처음으로 독일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독일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도 좋았고, 한국처럼 유행에 목매지 않아도 느리게 살아도 살아진다는게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뭔가 뒤쳐저도 살만하다고 해야하나.
근데 12년 넘게 여기서 구르다 보니 이제는 장점보다 문제점들이 더 크게 보인다. 현지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느낀 유럽 테크 생태계의 민낯, 4가지 키워드로 솔직하게 까발려보려고 한다.
유럽은 정말 규제에 진심이다. 그 내용은 언론이나 유투버로 많이 다루어졌고 나 역시 모든 테크 규제에 대해 알지 못하니, 깊게 다룰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접한 규제중, EAA가 있다. 2025년 시행된 EAA(European Accessibility Act)이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당연히 찬성할 일이고 당연히 해야할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는 '가이드라인'이 아닌 강력한 '법적 제재'이다. 말 그대로 혁신이나 새 제품을 개발해도 모자를 판에 그 개발인력을 EAA를 지키고 그에 맞추는 디지털 제품을 만들어야 하니 당연히 재품 개발 속도가 뒤쳐질수 밖에 없다.
유럽 인터내셔널한 테크 오피스에서 현지인을 찾기란 의외로 어렵다. 일단 엔지니어링 중심의 교육 자체가 경쟁력이 없을 뿐더러, 회사들은 경쟁력 없는 내국인 보다는 경쟁력있는 외국인 노동자(Expats)들을 고용하려고 한다. 런던외에 테크의 그나마 중심인 스톡홀름, 베를린을 봐라. 잡을 얻는데 굳이 스왜덴어 독일어가 필요하지는 않는다.
유럽의 삶의 질을 지탱하는 강력한 노동법은 테크 기업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가 되기도 한다. 특히 병가(Sick Leave) 제도는 한국이나 미국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독일: 아프면 최대 6주까지 임금의 100%를 회사가 보장해야 한다.
네덜란드: 무려 2년 동안 병가를 쓸 수 있으며, 법적으로 임금의 최소 70%를 보존해줘야 한다. 노동자로서는 환상적인 안전망이지만, 속도와 퍼포먼스가 생명인 테크 기업 입장에서 이런 막대한 비용 부담과 업무 공백은 글로벌 경쟁력을 깎아먹는 요인이 된다.
사실 이 병가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 사실 기침만 나도 쓸 수 있는게 병가이며 독일 같으면 그냥 의사에가 아프거나 회사와 갈등만 있다고 말해도 병가쓰도록 진단서를 써준다. 네덜란드는 심지어 그 조차도 없다. 잘만 쓰면 너무나 좋고 필요한 제도이다. 사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악용을 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구조조정 하거나 힘들어지면 뻑하면 일부러, 병가를 써서 일안하면서 월급을 받는 다거나. 번아웃 핑계로 병가쓰고 휴가가거나 해외여행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병가를 쓰면 회사입장에서는 해고가 절대 불가하기에 그냥 돈만 퍼주고 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독일은 EU를 프랑스와 함께 이끄는 나라중 하나이다. 직접 살아보니, 독일의 디지털 실태를 보면 비극에 가깝다. 동네 주변 상권은 세금 문제로 현금만 받는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독일인들은 개인정보 유출이다 뭐니 해서 현금을 선호한다. 그러니 핀테크 산업이 발달하지 않을수 밖에.... 가장 황당한 건 공공 서비스의 대응 방식이다. 2022년인가, 기차가 무려 7시간이나 지연되어 공식적으로 항의하려고 하니 우편으로 항의 하라고 하네. 결국 프린트해서 우편으로 항의 사항을 전달했다. 이 사소한 것들이 독일이 얼마나 디지털에 있어 뒤쳐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럽은 분명 살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기술을 설계하고 혁신을 꿈꾸기엔 장애물이 너무 많고 앞으로 테크놀로지에 있어 성장가능성이 많이 없어 보인다. 규제와 아날로그의 편안함에 안주하는 이 구조를 깨지 못한다면, 유럽은 결국 과거의 영광만 파먹고 사는 거대한 '디지털 박물관'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