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85화. 벼 이삭 사이로 피어오른 형제의 정
아빠의 사촌 중
특히 둘째 사촌아버지는 아빠와 유독 많이 닮으셨다.
쌍둥이는 아니었지만
목소리며 눈빛, 웃는 모습까지
마을 어르신들이 “형제 맞지?” 하고 물을 만큼
두 분은 꼭 닮아 계셨다.
그분은 주말마다
예고도 없이 불쑥 시골로 내려오셨다.
“형님, 논에 들어갑시다.”
모내기철이면 장화부터 꺼내 신으시고
밭이랑에 먼저 서 계셨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없이 따라나서셨다.
한여름의 논바닥은
땀으로 흠뻑 젖은 두 사람의 등을
푸르른 벼 잎이 살랑이며 쓸어주었다.
모내기, 김매기, 벼 베기, 타작까지
일이 몰릴 땐 어김없이 토요일에 나타나
일요일 늦은 밤에야 서울로 돌아가셨다.
“내가 이럴 줄 몰랐어.
형님이랑 이렇게 일하는 게 좋은 줄 몰랐다고.
내가 젊었을 적에,
여기 좀 더 자주 내려왔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 사촌아버지는 웃으며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아빠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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