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의 골목

85화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85화. 벼 이삭 사이로 피어오른 형제의 정

아빠의 사촌 중

특히 둘째 사촌아버지는 아빠와 유독 많이 닮으셨다.


쌍둥이는 아니었지만

목소리며 눈빛, 웃는 모습까지

마을 어르신들이 “형제 맞지?” 하고 물을 만큼

두 분은 꼭 닮아 계셨다.


그분은 주말마다

예고도 없이 불쑥 시골로 내려오셨다.


“형님, 논에 들어갑시다.”

모내기철이면 장화부터 꺼내 신으시고

밭이랑에 먼저 서 계셨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없이 따라나서셨다.


한여름의 논바닥은

땀으로 흠뻑 젖은 두 사람의 등을

푸르른 벼 잎이 살랑이며 쓸어주었다.


모내기, 김매기, 벼 베기, 타작까지

일이 몰릴 땐 어김없이 토요일에 나타나

일요일 늦은 밤에야 서울로 돌아가셨다.


“내가 이럴 줄 몰랐어.

형님이랑 이렇게 일하는 게 좋은 줄 몰랐다고.

내가 젊었을 적에,

여기 좀 더 자주 내려왔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 사촌아버지는 웃으며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아빠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기억을 뀌메는 사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15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7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기억의 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