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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Mar 22. 2016

PS컨트롤러 위에 자리잡은 기호들

~ 손 끝으로 느끼는 확신 ~

내가 예전에 썼던 에세이를 긁어왔다. 부제를 다니 좀더 있어보이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구만.


  게이머는 게임을 하면서 마우스나 컨트롤러를 던져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즉각적인 분노의 감정의 표출이며, 본인의 내면 깊숙한 심연에서 끌어올려지는 행위이다. 오래동안 피땀흘려 진행해오던 세이브 데이터를 날렸을 때, 내가 얻어야할 보상을 남이 채갔을 때, 게임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때 게이머는 순간적으로 반응한다. 또한 게임을 클리어 했을 때, 석양에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풀밭을 뛰어다닐 때, 힘든 여정과 고난을 헤치고 정점에 설 때, 게이머는 아낌없이 두 눈 가득 눈물을 흘리고 감동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여운에 잠긴다.

  이를 보면 게임이라는 장르는 우리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매체이다. 신체와 밀접한 하나의 스포츠 같은 것이며, 손에 땀을 쥐는 스펙타클한 영화를 보는것과 같으며, 훌륭한 예술 작품을 멀리서 감상하다가 그 위에 수염을 그리고 도망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쉴 새 없이 컨트롤러와 즉각적인 반응을 하고, 그것은 굉장히 원초적인 방식의 욕구표현 방법이다.


  몇년 전, 나는 나의 휴대용 게임기를 뜯었다. 2007년 초기모델인 나의 PSP는 나와 생사를 함께한 친구였는데, O 버튼이 닳아서 컨트롤러로써의 역할을 못하게 된것이 이유였다. 나는 임기응변으로 우리집 고양이 고무빗을 조그맣게 잘라 버튼 아래에 넣고 반창고로 그 위를 고정시켰다. 그러니 작동도 잘 되고 아직 10년은 더 나의 손이 되어줄 수 있게 되었다. 닳아버린 동그라미 버튼에서 나는 수천 수만번의 결정의 과정을 거쳐왔음이 밝혀졌고, 내 PSP 동그라미 버튼위엔 보란듯이 영광의 훈장이 생겼다. 그 후 1년 가까이 연명하다 전문가의 손길로 고쳐졌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나에게 이러한 경험을 하게 하는 나의 두번째 손에대한 이야기이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엑스, 그 기가막힌 앙상블!


  게임을 게임으로써 존재하게 하는 게임패드의 등장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벗어난 두번째 손. 컨트롤러에는 방향키인 십자버튼과 기호가 그려진 버튼들이 있다. 방향키와 두개의 버튼을 선사했던 패미컴에서 부터 ABXY의 닌텐도, ○✕△☐의 PS 까지 각각 표시의 방법은 다르지만 그것들이 기능하는 바는 같다.


사용자의 의도로 정확히 그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것



  게임기를 사용해 본 사용자에게 기기를 그려보라고 하면 주저없이 정확하게  자신이 사용하는 컨트롤러의 버튼을 묘사 할 것이다. 그것은 사용자가 손의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트롤러의 버튼들은 사용자의 의도를 가감없이 100% 반영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얼마나 획기적이며 충실한 도구인가!


다양한 기능을 하는 기호들



PS기기의 컨트롤러는 단순한 도형으로 사용자를 맞이한다. 동그라미 버튼은 내가 수행할 일에 대한 확신과 결정을 하게 한다. 게임기를 처음 사용하는 사용자도 거침없이 확인을 위해 동그라미 버튼을 누를 것이다. 또하나 분명한 것은 엑스 버튼이다. 컨트롤러는 사용자의 거침없는 행위에 대해 돌파구를 마련해 두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엑스 표시는 사용자가 과제를 수행해 나가며 언제든지 '취소'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면 세모와 네모의 기능은 무엇일까? 기호만 봐서는 딱히 어떤 기능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신기한 것은 PS컨트롤러에 '체화' 된 사용자들은 이 버튼이 어떤 기능을 할 지 대강 '이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모는 대부분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서 메뉴화면을 불러오는 기능을 한다. 네모는 현재 위치의 옵션같은 부가 기능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버튼은 게임의 장르, 게임과의 인터랙션 방법등에 의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버튼 체계가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뀐다면 어떨까? 확인을 위한 버튼이 세모로 바뀐다면 내가 계속적으로 느껴왔던 확신에 대한 약속은 처절하게 배신당할 것이다. 사용자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고난을 겪어야 한다. 이로써 몰입에서 오는 즐거움은 흔적조차 사라진다. 근본 없는 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컨트롤러는 시대를 변화하며 진화한다. 색다른 크기와 색, 손에 느껴지는 새로운 질감. 그러나 버튼위엔 항상 같은 기호가 자리잡는다. 그것은 플레이스테이션을 사용하는 사용자와의 약속과 사용자의 신뢰. 그것이 그 이유이다.





경험에서 오는 확신, 몰입에서 오는 즐거움


나는 오늘도 컨트롤러를 사용해 게임을 한다. 컨트롤러는 나에게 매일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이 되게끔 하며, 신체의 놀라운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나는 컨트롤러로 하여금 감정이 즉각적으로 순환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나의 손가락, 마우스, 컨트롤러 모두가 미술관의 예술작품에 수염을 그려줄 것이다. 이 기호들과 함께하는 경험은 절대적이고, 때론 위트있으며, 철학적이며 분명하다. 그리고 나를 대신하는 또하나의 나를 만드는 것이다. 이 작은 기호들은 말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내면속 나의 열정에 대한 행위에 관하여, 손가락 지문 가득 느껴지는 플라스틱의 질감에 관하여, 그리고 끊임없는 확신으로 나아갈 항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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