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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Dec 10. 2017

[Punished by Rewards] 보상 = 처벌

나를 반성하다

'Punished by Rewards’ 즉, 'Rewards punish’다. 상이 벌을 준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보상을 어떠한 대가로 상을 주는 행위이며, 벌하는 것과 다른 것으로 본다. 보상은 계속 추구하고 싶은 것, 처벌은 피하고 싶은 자극이 아닌가. 그러나 Alfie Kohn은 이 두 개념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보상도 처벌 못지않게 부정적인 것으로 봤다. 역설적인 제목을 가진 이 책은 기존에 널리 퍼져있는 상식에 도전한다.
(책에서 말하는 ‘보상’에는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부터 칭찬과 같은 언어적인 것까지 포함됐다.)

작가는 보상과 처벌은 같은 개념으로 봤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달까. 보상은 주어지면 상이고 뺏기면 벌이된다. 처벌도 주어지면 벌이고 제거되면 그 자체가 상이 되기도 한다. 양 극단에는 뇌물과 폭력을 동반한 협박이 있다.

보상은 대상의 행위를 조종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문제가 된다. 그 대상이 어떤 이유로 그 행동을 하지 않는지, 우리가 시키는 그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일단 하게 만든다. 그래서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 보상이 없으면 금방 효력이 사라져 버리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Do this, and you will get that’으로 상대방이 배우는 것은 ‘Doing this responsibly’가 아니라 ‘Controlling people with that’이다.

과연 보상은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한 실험연구의 결과가 흥미롭다. 보상은 관련된 일에 흥미가 떨어지게 만들었다. 일보다 그 보상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도전 의식에 좋지 않았다. 보상받은 행동만 반복하고(강화), 그 보상을 얻기 위해서 위험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적게 주어진 보상은 경쟁을 유발하면서 동료들과의 관계를 악화 시키고 오히려 의욕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목표를 두고 팀별로 보상해도 마찬가지였다. 팀원들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보상을 받는데 방해가 될 제일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원망하고 비난했다. 성과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상을 주는 것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어떻게 직원과 학생과 자녀들을 동기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동기부여는 스스로 해야 한다. 즉, 내적 동기부여가 자신이 선택한 행동을 책임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행하게 한다. 우리가 동기부여를 시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아닌 외부의 사람이 하는 외적 동기일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어떤 행동을 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게 아니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주위에 많은 흥미와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내적 동기의 원천이다. 그러나 밖에서 주어진 여러 자극들로 대체되고 우리의 선택보다는 타인에 의해 통제당하고 행동의 주도권을 잃으면서 흥미도 떨어지고 책임감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 대신 우리는 뭘 해야 할까? Alfie Kohn은 세 개의 C를 제안한다. Collaboration(협동), Content(내용), Choice(선택)이다. 어떤 일이든 협동할 때 혼자서 할 때보다 나은 결과를 낸다. 같이 할 때 더 마음적으로 안정이 되고 하는 일 자체에 집중할 수 있고 소통하면서 더 흥미를 느낀다. 하는 일이 의미 있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야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외부적인 보상이 없이도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다. 시킨 일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혹시 일에 어떤 문제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시키는 사람만 일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직접 하는 사람도 그 일에 대해서 이해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떤 규칙이든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기여를 하면 자연스럽게 그 일에 책임감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함께 틀을 만들며 그 안에서 지켜나가는 것과 일방적으로 내려진 규칙을 따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먹고살기에 바쁜 이 삶 속에서 우리는 당연하게 효율성과 가성비에 매달린다. 보상과 처벌은 변화를 만드는 데 가장 짧은 지름길을 안내한다. 그러나 그 변화는 지속적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갖고 주도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야 건강한 사회다. 보상과 처벌은 통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책을 보면서 ‘우리는 정말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하는 것들을 이유를 막론하고 그저 ‘필요하니까!’를 주장하면서 그들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납득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불만을 가졌다. 우리는 그런 반응에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다고 답답해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립은 서로에 대한 불신만 낳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일지도. 

구구절절 맞는 얘기들이지만, 과연 어떻게 이것을 실생활에 접목시킬지는 막막하다. 지난 1년 남짓 영어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며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행동들이 떠올랐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잘 받은 점수와 좋은 대학교 합격 소식으로 부모님에게서 상을 받기 위해서 등.... 학생들 대부분은 어떤 보상을 바라면서 공부를 했다. 공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에 불과했다. 상이 간절할수록 공부는 부담이 되었고 공부의 즐거움은 멀어졌다. 멀리하는 것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부모를 둔 아이들은 하루하루 넘기는 심정으로 숙제를 베끼고 부정행위를 하곤 했다. 그런 학생들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당근과 채찍을 눈앞에 흔들며 일단 문제집 한 장 더 풀고 단어 하나 더 외우게 하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하는 일에 의문이 들었다. 필요한 것 같았지만 정당화하기는 힘들었다. 일 년이 지나면서 나도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도 나에게도 아닌 것 같아 결국 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을 주문했다. 정작 사놓고 읽기 시작한 것은 그러고도 반년 정도가 지난 뒤였지만.

나도 그 정도만 다를 뿐 내가 싫어했던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웃으면서 상을 흔들든, 무서운 눈으로 회초리를 휘두르든 일단 따르기를 요구한 것은 똑같았다. 보상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가진 ‘일방성’을 지적했고 이렇게 교육에 대한 생각과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까지 이어졌다. 국내에 번역판이 없는데,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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