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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키베이비 Dec 21. 2020

번아웃 탈출했다! 2020년 회고

밀키베이비 

작년 이맘때쯤 내 이름으로 된 두 권의 책, '오늘 또 뭐 하지' (창비교육) '우리 엄마 그림이 제일 좋아' (한빛미디어) 를 연달아 출간 하고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빼곡해진 스케줄표를 보고 체력을 키워야겠다며 흐뭇해 했죠. 특히 11월에 나온 '오늘 또 뭐 하지?' 밀키베이비 아트 놀이 책은 특히 힘들게 만든 책들이었기에 기대도 컸고, 두 권의 출간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비웃듯 코로나가 빠르게 창궐하던 2020년 연초, 출간 관련 강의와 전시, 콜라보도 모조리 취소되었습니다. 뭐부터 해야 할지 망연자실해 있었지만 곧이어 아이도 기관에 다니지 못하면서 한숨을 쉬고 있을 틈도 없어졌습니다. 재택근무와 육아에 치여 번아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를 일으켜 주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그림책이었어요.



천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다가간 그림책,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까?'는 코로나 예방수칙을 배우면서, 나만의 그림책을 만들어보는 '그림책 도안'입니다. 밀키가 "그림책을 만들어보자"라고 제안하여 제작하게 된 이 키트는, 밀키베이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만 알렸는데도, 무료 배포한 3개월 동안 500여 부의 다운로드가 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시 코로나19 예술 사업으로도 선정되어 전자책으로도 출간하게 되고, 친환경 방식으로 인쇄한 그림책 도안이 여러 공공기관에 제공되었습니다.

"그림책 친환경 인쇄기" at 밀키베이비 인스타그램 




그러나 이건 결과일 뿐입니다.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배운 것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십 년 차 디자이너니까 도안을 만드는 일이 수월할 것 같았지만, 저 역시 테스트 과정에서 종이를 수차례 자르고 붙여가며 도안을 완성했습니다. 그림책 만들기 방법을 담은 영상을 만들고, 그림책만을 위한 사이트를 구축하고, 이벤트를 열어 배포를 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전자책을 내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고 구청에 가서 개인 출판사를 내고 한숨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결과물 뿐 아니라, 각 과정에서 쌓이는 노하우들은 온전히 제 것이 되었습니다.

직접 도안을 이용해 그림책을 만들어 본 수많은 리뷰들을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만난 적 없는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료 배포 이후 6개월간, 전국의 도서관과 유치원, 복지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천여 명의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작은 성취들이 모이자 번아웃에서 조금씩 탈출이 가능해졌습니다. 




  나를 돌아보는 웹툰 시리즈, '엄마 말고 크리에이터'


금세 여름이 되고, 방학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일찌감치 계획한 가족 휴가 여행, 연례 행사였던 '엄마의 방 탈출'을 떠나야 했지만 2020년도의 풍경은 그저 '매일 집콕'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상과 여행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내 삶에 필수 요소였던가를.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무렵, 인터뷰와 기고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질문의 모습은 각기 달랐지만, 공통적으로는 내가 수년간 하는 작업들을 '왜' 하는지 물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밀키베이비 작업을 왜 할까?',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질문에 답을 고심 고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편의 시리즈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밀키베이비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나에게 영감과 열정을 북돋아 주었던 경험을 담기로 했습니다. 밀키베이비 초반에는 아이와의 육아/일상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에는 '아이 없이 떠났던 여행', 즉 '방 탈출'에서 나의 성장을 도운 특별한 경험들, 그리고 그 시간에 배운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omcreator




따로 또 같이, 그림 그리다


2018년에 이어 2019년까지, 감사하게도 크고 작은 기업들과 콜라보를 하며 커다란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개인적인 작품을 쌓아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빨리해야 하는데...' 란 생각으로 초조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020년에는 콜라보를 할 기회가 적어졌습니다.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이제 콜라보를 하지 못하는 걸까?' 라는 걱정이 아니라, '콜라보 아니면 콘텐츠를 못 만들 정도로 콜라보에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불안함과 초조함을 타개할 수 있었던 세 가지를 꼽자면, 앞서 언급한 1. 작은 성취를 쌓는 것 2. 나에 대한 성찰, 마지막으로 3. '따로 또 같이' 드로잉 하는 챌린지 덕분이었습니다. 드로잉을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육아나 눈앞의 할 일에 치여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매일 누군가와 드로잉을 하기로 약속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작심 7일! 드로잉 챌린지를 열었습니다. 신청해 주신 1, 2기 챌린저들과 함께, 매일매일 드로잉 연습을 하면서 과정을 공유하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날릴 수 있었습니다.

 "눈의 노래" 작업기 at 밀키베이비 인스타그램


The song of the snow 작품의 상세 컷 



덕분에 어린이의 마음을 닮은 그림, 가족과 엄마의 마음을 담은, 밀키베이비다운 일러스트를 부지런히 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숲의 노래'를 시작으로, 시리즈인 '눈의 노래', '한 땀 한 땀 내 마음' 등 신작들을 연이어 발표했습니다. 신작들의 한정 에디션 포스터들이 솔드아웃되고 있고, 다음 작품을 고심하고 그리는 내내 즐겁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조금씩 스스로의 예술 활동을 위한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고, 가능하다면 개인전에서 여러분들을 뵙고 싶습니다.

밀키베이비 아트포스터 at 밀키북스 스토어

https://www.milky-books.com/




 심리테스트, 한 달 만에 천명 돌파


설마 팬데믹이 일 년 동안 이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연말에는 더욱 심해진 코로나 상황으로 답답하고 때로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아마도 코로나 블루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도 방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예술을 접목한 심리테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내 마음을 마주한다는 취지의 심리테스트이기 때문에 이름은 "헬로우 마이 블루 Hello my blue"라고 지었습니다. (심리테스트 해보기)


단순하게 생긴 심리테스트지만 이를 설계하고 사이트를 론칭하기 위해 한 달여간 고심하고, 제작하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심리테스트를 다 하고 나면, 결과로 보여지는 것은 치유와 쉼을 주제로 한 밀키베이비 그림입니다. 이 그림들에 움직임과 음악을 더하기 위해 디지털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영상으로 뽑아냈습니다. (유튜브영상에 자세히 설명해 놨습니다.


첫날, 500여 명이 심리테스트를 했고, 한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누적 천여 명의 사용자가 심리 테스트를 하며 마음 챙김에 나섰습니다. 이 아트 프로젝트가 '서울문화재단'의 예술 사업으로 선정된 것도 기뻤지만,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온라인으로나마 해볼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심리테스트를 해보신 분들 중 진심을 담아 소감을 보내주셨는데, 제게도 위안이 되었던 것들을 소개합니다.





 '마음 잔잔' 단계가 나온 것을 보며, 나름 잘 지내고 있구나…스스로에게 위안과 격려를 받은 느낌이 듭니다. 인식하지 못했던 지금의 상황을 이 심리테스트로 문득 깨달았네요. 쉼 없이 달리고 있는 제시간에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볼 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녹여주는 심리테스트였어요. 코로나로 마음 편한 외출과 외부 활동을 못하니 답답하고 지친 상태였어요. 아이 낮잠 시간에 테스트하고 결과에 나온 동영상을 보는데 그렇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마냥 우울해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버티고 있구나 느끼게 해주는 심리테스트였어요. 재미로 해본 심리 테스트이지만 따뜻해지는 결과 문구와 그림, 음악이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주네요.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리셋'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남겨진 게 하나도 없다고 느껴질 때, 조용히 내 안을 들여다보니 그간 소홀히 했던 보석 같은 장점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차가운 안갯속을 헤맸던 것은 잠시였을 뿐, 우리는 여전히 따뜻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힘든 상황을 독이 아닌 약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기회를 마냥 기다리기보다 주도적으로 실행하면서 길을 찾아 나갔던 것이 주요했습니다. 당장 내일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다지면서 새해를 맞이해 보려 합니다. 


2020년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t 밀키베이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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