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때론 대화보다 더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by DYR Daddy

내가 다니는 회사는 명절에 하루 또는 이틀을 더 붙여서 쉰다.

입사 때부터 그래 왔던 지라 당연하게 생각했을 뿐,

하루나 이틀을 더 쉬게 된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는 않았었다.

이 글을 쓰며 그나마 이유를 찾아보았는데,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있다 보니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

명절 직후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한 게 아닌가 싶다.

온라인상으로 어지간한 일들을 다 할 수 있는 지금에서야 이 하루나 이틀을 더 쉬는 게 꼭 필요한가 싶기는 하지만.


서두가 길었다.


오늘 회사는 휴일이었지만 와이프의 따가운 눈총과 한숨 소리를 뒤로 한 채 출근을 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에서 꼭 갖춰야 할 역량 중 하나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인데,

내일 팀장님께 작성한 보고서를 보여드려야 하기 때문에 오늘 한 번 더 퇴고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 지금 일하는 부서는 이 회사에서 나의 두 번째 팀이다 - 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보고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고서에 공들일 시간을 실무 업무를 하는데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고, 보고서 작성하는 시간 자체가 너무 아까웠다.


그러다 보니 보고서 작성 실력도 형편없었다.

첫 번째 팀에서 근무할 당시 실무 업무 자체는 못한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지만, 부서장이나 팀장은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으레 한숨을 내쉬곤 했고 그러면서 수정을 해주시곤 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공감하겠지만 실무자가 가장 많은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보고서를 쓰면서도 그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실무자가 고생했고 이러이러한 점은 잘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은 물론이고. 그러나 보고서를 수정하는 단계에서 그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이 축약되거나, 심지어는 사라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러한 수정 과정에서 부서장이나 팀장은 실무를 안 해봤으면서 이런 말들은 왜 바꾸거나 뺄까라고만

생각하고, 몸으로는 수용했지만 마음으로는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이유를 설명해주시는 팀장, 부서장들도 거의 없기도 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팀에서 1년 남짓한 시간을 근무하면서 보고서에 대한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이전의 나는 철저하게 작가의 입장에서만 보고서를 썼던 것이라면,

지금은 독자의 시선에서 보고서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보고서를 읽을 독자는 내가 일하는 부서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어떤 부서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어떤 배경 지식을 갖고 있으며,

이런 단어나 표현들은 독자가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이전 부서에서 팀장, 부서장들이 내쉰 한숨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고,

아울러 보고서 서식도 잘 갖추어 작성하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 불편함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타나 잘못된 수치가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사항이다.


독자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얘기하긴 조심스럽지만,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서 내가 생각하는 보고서 작성자와 독자에 대한 원칙은 아래와 같다.

내가 혹시나 지금 일하는 회사의 임원, 나아가 최고 경영자가 된다면 내가 관리하게 될 조직에는

적용하고 싶은 원칙이다.


1.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는 사실만을 작성해야 하고,

보고서의 독자는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는 논리력과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2. 보고서의 독자는 보고서를 통해 의사결정을 해야지, 공부를 해서는 안된다.

3. 임원에게 보고되는 보고서 작성은 최소 부서장 이상이 작성해야 하고,

실무자들은 그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역할을 해야지,

보고서 작성에 대한 책임을 실무자에게 지우면 안 된다.

4. 보고서를 수정하면 작성자에게 수정하게 되는 사유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서로 공감이 있어야 한다.

5. 양식을 중구난방으로 난립시키지 말자. 내가 CEO가 된다면 전사 양식은 1~2개로 통일해버릴 것이다.

양식을 간소화함에 따른 독자(경영진)의 개인적인 불편함은 그 개인이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임원 이상이면 그 정도 역량은 있는 사람들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