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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Jun 25.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14

보는 눈이 없으면 금덩어리도 돌멩이, 문화재도  땔감

그 해 겨울 그는 슬레이트 처리 사업을 하는, 묵은집 슬레이트를 처리해준 김 사장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평소 같으면 잠을 자고 있을 이른 새벽 시간에 전화가 왔다. 마침 그는 깨어 있었고 사장님은 부지런하다며 칭찬을 했다. 부지런하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것이었는데.....사장님은 서둘러 용건부터 말했다 오늘부터 4일 안에 한옥을 한 채 해체해서 가져갈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는 집을 보기 전에는 결정을 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4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촉박하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곧 몇 장의 사진을 보내 주었다. 사진은 집의 일부분만 찍었을 뿐 집 전체 사진은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담이 높고 마당이 좁아 카메라 앵글 안에 집 전체를 넣을 수 없었다.

사장님이 보내 준 사진은 그가 봐야 할 곳, 보고 싶은 곳 전부는 없었지만 중요한 몇가지는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전면 기둥에 원 기둥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 기둥을 통해 시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는 동학집을 통해서 알았다. 계급에 따라 집의 규모와 부재의 크기 등을 규정한 가사제한에 민가는 원기둥을 사용할 수 없게 했다. 그러나 행정력이 덜 미치는 지방이나 왕이 하사한 집, 관직이 높았던 양반가 등 특별한 경우에는 민가에도 원 기둥을 사용했기 때문에 원 기둥으로 집의 건축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마루는 우물마루를 사용해 만들었고, 도리 아래 장여가 들어가 있었다. 네 개의 툇보가 보였으나 참 특이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두 개의 툇보는 무척 두꺼워 보였으며 나머지 두 개의 툇보는 동학집과 비슷한 모양의 유려한 선을 가진 툇보였다. 툇보는 대체로 비슷한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지며 기둥과 비례감을 갖는데 두 개의 툇보는 엉뚱하게 두꺼웠고 뭉특하며 특이해 보였다. 아니 이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둥 등 노출된 나무 전체에 페인트가 칠해진 점이었다. 나무를 보호할 목적으로 사용된 페이트로 인해 오히려 나무를 더 빨리 상하게 하는 경우를 자주 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득 이 집을 꼭 해체해서 보존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오늘부터 4일이라는 날짜가 문제였다.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는 그날과 다음날은 일이 있어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고, 조 목수는 서울에서 한옥을 수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촌 동생인 한도 일이 밀려 바빴다. 친구인 훈도 해남에서 월동 배추를 작업하고 있어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4일이라는 시간 안에 집을 해체해서 이동시킬 수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김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왜 4일이라는 기간을 말씀하셨냐 물었다. 사장님은 그 집을 헐고 바로 터를 정리한 뒤에 지체없이 요양원 건축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흘 안에 집을 철거해야만 이후 포클레인이 들어와서 터를 정리하고  측량 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4일 안에 목재를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바로 여건을 만들 수 없어 해체가 어렵겠다는 말을 했다. 사장님은 아쉬워하며 잘은 모르지만 집이 참 좋아 보이고 트럭도 진입하기가 좋은 곳이며 나름 동네에서 부잣집이었니 여건을 만들어보라는 말을 했다. 여건을 만들어라........그는 해체를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일단 그 한옥을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바로 출발을 했다. 사무실에는 전화를 해서 출근이 늦을 수도 있겠다는 양해 전화를 했다. 세수도 하지 않고 출발해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달려가 바로 사장님을 만나 집으로 향했다.

집은 낮게 웅크리고 있었다. 집터의 대부분이 팔려 나간 듯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의 좁은 터에 집만이 낮게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주인이 오랫동안 거주하지 않는 집은 쓸쓸해 보였다. 그런데 집의 분위기가 묘했다. 양반집 같아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돈 많은 상인의 집 같아 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그냥 가정집이라 보기에는 집의 규모가 무척 크고, 학당이라 볼 수도 없고, 살림집이긴 살림집이되.....양반집 안채라 보기에는 터도 좁고 사랑채 등 부속 건물도 없고.....원 기둥을 사용했고.....그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동학집이나 묵은집과는 전혀 달랐다.

집은 정면 7칸에 측면 2칸이었다. 사진으로 보기에 측면은 2칸이 넘어보이지만 사진을 찍은 면만 달아내었을 뿐 전체적으로는 2칸이었다. 가운데 칸에 양쪽으로 툇칸을 달아낸 구조였다. 이런 구조를 아마 겹집이라 부를 것이다. 처음 본 정면 7칸의 집은 길어 보였다. 그런데 왜 7칸이었을까. 옛 어른들은 집을 지을 때 홀수를 지향했다. 지붕의 용마루를 쌓을 때도 세 켜, 다섯 켜, 일곱 켜 등 홀수로 쌓았다. 기둥 위에 공포를 짜서 넣는 포집의 경우도 포가 쌓이는 숫자에 따라 삼포 오포 칠포 등 홀수로 만들어진다. 옛날에는  집의 칸 수도 세 칸, 다섯 칸, 일곱 칸 씩 홀수로 늘여 갔으며 기둥의 척수나 서까래의 수효도 홀수로 했다. 마당에서 집으로 오르는 기단의 계단도 홀수로 만든다. 이처럼 우리 옛 어른들은 집을 지을 때 홀수를 즐겨 썼다. 홀수가 양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의 칸수를 7칸으로 지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는 들었다고 한다. 그가 제법 한옥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는 네모난 형태의 민도리였고, 도리를 장여가 받치고 있었다. 장여는 전면뿐만 아니라 측면과 후면까지 모두 받치고 있었다. 그가 보았던 대부분의 민가는 전면이나 측면 정도에만 장여가 있을 뿐, 후면까지 장여가 있는 집은 드물었다. 후면에까지 장여가 있는 집들은 대체로 반가 고택이었다. 그런데 이 집은 여느 민가와 달리 집의 후면까지 장여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니! 그래서 반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정성을 많이 들여 지은 집이었다.

집의 양쪽 모서리, 즉 추녀가 걸린 곳의 서까래는 갈모산방(추녀 곁의 도리 위에 서까래를 걸기 위하여 붙이는 삼각형 모양의 나뭇조각)을 올리고 그 위에 말굽서까래를 올린 듯했다. 따라서 처마의 선은 지붕의 내림마루 중간쯤 되는 지점부터 올라가기 시작해 추녀에서 가장 높았다. 추녀는 서까래보다 밖으로 더 멀리 나와있으니 안으로 휘어 들어가는 선을 만든다. 한옥의 아름다운 선이라 하면 대체로 이 선을 말한다. 좀 더 보충 설명하면 맞배집을 제외한 보통 한옥 귀퉁이의 추녀는 서까래에 비해 앞으로 나오고 위로 솟아서 처마의 곡선을 만든다. 추녀가 서까래보다 앞으로 나와 있으니 안쪽으로 곡선을 이루고, 위로 솟아 있으니 처마는 아래로 곡선을 이룬다. 안허리곡과 안곡이다. 즉 안허리곡은 건물을 평면상에서 바라보았을 때 추녀와 추녀의 돌출된 끝을 연결한 직선으로부터 안쪽으로 들어간 곡선을 말하고, 안곡은 건물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처마와 처마를 연결한 직선으로부터 아래로 처진 처마의 곡선을 말한다. 이 집은 그 곡선들이 과하지 않게, 그렇다고 소박하지도 않게 만들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즉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했다. 아니 사치스러운 건가......

툇마루는 우물마루였으며 집의 좌측 면도 우물마루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둥 밖으로 마루가 깔려 있었으니 툇마루가 아닌 쪽마루라 볼 수 있었다. 쪽마루까지 우물마루로 튼튼하게 만든 집이었다. 집 내부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아니 덴조와 반자로인해 특별한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집의 좌측 칸 뒷 면에 공간을 추가하고 개조해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했다. 가장 오른쪽 칸은 긴 방이었고 그 다음 칸은 입식 부엌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전에도 그 곳은 부엌이었을 것 같았으나 원형에서 변형이 많이 이루어진 듯 했다. 무엇보다 특별해 보이는 것은 입식 부엌 위의 다락방이었다. 아주 넓은 크기의 다락은 우물마루로 만들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장판지를 정성들여 깔아놓았다. 방과 방 사이의 부엌과 그 위의 다락, 처음보는 구조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특별할 것 없는 그저 방이었다. 천장 및 모든 벽은 덴조(지붕의 안쪽. 지붕 안쪽의 구조물을 가리키기도 하고 지붕 밑과 반자 사이의 빈 공간에서 바라본 반자를 가리키기도 한다)로 마감이 되어 있었다. 천장을 열어서 상량문과 상부 구조를 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연장도 없었으며 연장이 있어도 쉽게 뜯을 수 있는 천장이 아니었다. 더욱이 남의 집 천장을 함부로 뜯어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가 가장 특별한 게 본 것은  두 개의 툇보였다. 직접 눈으로 봐도 이상했다. 저렇게 두꺼운 툇보를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싶었다. 과시욕이 지나치거나 목수가 솜씨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좌측 두 개의 툇보는 유려한 곡선을 가진, 위에서 아래로 적절하게 휘어져 내리며 여유로운 이동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안쪽 기둥에 끼워 넣은 듯한 이 두 개의 툇보는 영 어색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을 보고 있는 그에게 김 사장님은 집이 어떻냐고 물었다. 좋은 집 같다고 정성 들여 지은 집인 것 같다고 그는 대답했다.

-화목으로 버리기에는 아깝지? 내가 외주를 받아 철거를 하기로 했는데 포클레인으로 바로 누르기에는.......

-그러니까요.......

-어때 자네가 해체해서 가져가겠는가?

-그게........

-왜? 지붕 기와도 쓸만하잖아.

-지붕 기와는 시멘트 기와여서 재활용은 안돼요.

-그렇구나 시멘트 기와구나. 나무가 아주 좋아 보이지 않아?

-네 좋아요. 좋은데. 페이트가 칠해져 있어서.....꼭 해체해서 가져가야하나 싶네요.....일할 사람들도 없고, 시간도 촉박하고.

-자네는 그냥 목재만 가져가면 돼. 멸실신고 뭐 이런 것도 필요 없어, 터 정리 및 쓰레기 처리도 다 내가 할께.

-그래도....... 사장님 목재 값은 얼마나 생각하세요.

-어느 정도는 줘야지.... 이보다 더 좋은 집이긴 했지만 몇 년 전에 서울 사람이 김제 고택을 수천만 원 주고 가져간 적이 있는데....... 수천만 원은 아니어도 좀 줘야지...

-........사장님 안 되겠어요.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서요.

-하루 더 주면 어때 오늘부터 5일...... 목재 값은 0000만원으로 하고.

-.........사장님 죄송해요. 일단 돈도 돈이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야 어쩔 수 없지. 아~~화목감은 아닌데. 누구 소개해줄 사람은 없고? 하긴 이미 사람들이 많이 보고 갔다고 하더만...... 집이 별로인가...... 나는 괜찮아 보이는데......미안하네. 아침부터 심난하게 했네. 다음에 또 보세.

-네 사장님 저도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사장님도 심난하시 것네요.

-그러게 아~~나는 자네만 믿었지. 새 두마리 잡아볼라 했드만...나는 겁나게 좋아보이는디........ 잘 올라 가시게. 아! 아침 먹고 가지.

-아니요 바빠서요....


그렇게 그는 사장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차에 올라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출근을 위해 집으로 서둘러 출발을 했다. 그렇게 옛집 한 채는 세상과의 인연의 끈을 놓고 화목이 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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