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리얼리스트 Jun 27.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15

한옥 1874 (2)

사장님과 헤어지고 그는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집과 관련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운전에 집중했다. 언제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잘 지어진,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 듯한 한옥 한 채가 땔감이 되어 사라진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자신의 잘못만 같아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편치 않은 마음을 떨쳐 내기 위해 그는 부족해 보였던 두 개의 툇보를 생각했다. 주인의 지나친 과시욕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툇보, 솜씨가 부족한 도편수가 만들어낸 툇보, 맵시 있게 다듬어지지 않은 툇보, 그저 기둥에 무겁게 걸려 있기만한 툇보를 생각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선택하지 않은 집이라면,  몇 번쯤 목재를 팔려 했으나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집이라면, 그런 툇보가 걸려 있는 집이라면 보이지 않는 곳의 부재도 그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재도 인방재도 지나치거나 과할 뿐 그렇게 칭찬할만한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대들보도 그저 그럴.....것.....이.....라......고......생.....각.....하는 순간 문득 과거에 보았던 집 한 채가 떠올랐다. 그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충남 아산시 외암마을의 참판댁을 찍은 사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참판댁의 대들보를 찍은 사진이었다.

외암마을 참판댁의 툇보가 방금 본 툇보와 모양이 비슷했었고, 그 툇보는 툇보가 아니라 대들보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참판댁의 툇보 또한 다른 툇보와는 어울리지 않는 크기였고, 모양이었고, 애써 기교를 부리지 않은 모습의 툇보였다. 아니 대들보였다. 길고 두꺼운 나무를 적당히 다듬어 툇칸과 가운데 칸을 하나로 연결한 대들보였다. 대들보가 툇보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외암마을에서 그가 유일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참판댁은 외암마을에서 그의 마음에 드는 유일한 집(건재 고택 등은 들어가 볼 수 없었고 근래에 지어진 한옥들은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이었고, 집에 대한 예찬과 함께 네 병의 연엽주를 사니 종부께서 손수 문을 열어 주셔서 볼 수 있었던 내부였고 대들보였다. 반자가 없는 연등천장이어서 그는 대들보를 볼 수 있었다. 그 풍모가 인상 깊어 사진으로 남겨 놓았었는데 오늘 문득 그 사진, 대들보가  떠올랐던 것이다. 카메라 대신 핸드폰을 꺼내서 몇 장의 사진을 더 확인했다.(위 사진 두 컷을 찍자마자 카메라의 배터리가 다해 핸드폰으로 몇 장을 더 찍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확인한 그는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운전석에 다시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옆으로 차들이 빠르게 달렸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좌측의 툇보와  우측 대들보가 연결되어 있다.

참판댁의 종부는 그에게 그 집이 할아버지에게 고종이 하사한 집이라 설명해 주셨다.(할머니들께서는 시할아버지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늘 우리 할아버지라고 표현하신다. 묵은집에서도 그랬다.) 고종이 하사한 돈과 보내준 목수가 직접 지어준 집이라고 전해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왕이 하사한 집이면 이보다 더 좋은 집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왕이 보내준 돈이 어디 그대로, 온전히 사용되었겠냐며 당대의 공무원들을 의심하셨다. 아마도 문화재로 집이 지정이 되어 고치지도 못하고 생활도 불편하고, 살림에 큰 도움도 되지 않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그는 들었다고 한다.(지금은 좀 나아지셨을까.) 그렇게 종부의 말씀을 더듬어 보다가 문득 한 가지 더 떠오른 것이 있었다.  정면 칸 우측 아궁이 위의 다락이었다. 참판댁 대청 칸 가장 우측에 방이 하나 있었고 그 옆에 아궁이가 하나 있었고 그 아궁이 위에 다락이 있었는데 방금 보고 온 집도 그러한 구조, 그러한 다락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넓이도, 느낌도 비슷했었는데. 그는 순간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금을 보고 돌멩이로 판단한 것이 아닐까. 앞으로도 이 땅에 계속 있어야 할 집을 땔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그는 김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집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그렇지. 나도 집을 얼마나 철거했는데.... 딱 보면 좋은 집이랑께.

-사장님.... 사장님도 건설회사에서 철거비만 받고 일하시기는 그렇잖아요.

-그렇지

-이렇게 하시죠. 목재값은 조금 깎아서 00원으로 하시죠. 그리고 사장님께서 이틀동안 사장님 직원들 시켜서 집 내부 댄조하고 기와 정도만 철거해주세요. 더 해주실 수 있으면 좋고요. 제가 도저히 오늘내일은 시간을 낼 수 없어요. 사장님 직원들 인건비는 제가 드릴게요. 그리고 삼일째부터는 제가 들어갈게요.

-목재 값을 너무 깎는디......그려 좋다. 대신 반드시 5일 안에 해체해서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일 끝나면 나 술 한 잔 사주고. 내 인건비는 안받을 테니까. 근디 목수가 없다며.

-어떻게든 되겠죠. 뭐.

-그려 일이라는 것이 닥치면 다 하게 돼있어. 나 지금 직원들 데리고 연장 챙겨서 출발할란다.

-사장님 신나셨네...

-아 그럼 돈 버는 일인디....

-사장님 절대 목재는 손대지 마세요. 마루도 손대지 마시고, 못도 조심해서 뽑으시고요.

-알겠어. 내가 궁금한 것 있으며 전화해서 물어볼게.

-지붕 일 할 때 비계 설치하시고 올라가세요. 이동하면 비계도 이동시키면서 일하시고. 조심하셔야 돼요.

-걱정 말아 나 철거업자여....

-그럼 부탁할게요.


그렇게 그는 1874년에 지어진 7칸 집을 해체해서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 뒤 가리지 않는 추진력, 아니 무모함에 대해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 집이 외암마을의 참판댁과 다르게 지어졌으면 어떡하려고 그랬냐물었다. 그리고 그런 판단과 행동들이 경제적으로 봤을 때, 사회적 관념과 분위기로 봤을 때, 목재라는 특수한 경우를 봤을 때, 옳은 판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조언을 했다. 그도 내 말에 일부 동의했으나 단 한 마디로 내 말문을 닫게 했다. 그런 집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 나는 생각했다. 이건 전생의 인과와 관련이 있다.

여하튼 그의 결정은 모르겠으나 그의 판단은 옳았다. 그가 그토록 못마땅해했던 두 개의 툇보는 모두 대들보였고 길이는 6m 가까이 되는 아름답게 휘어진 나무였다. 그는 대들보의 길이나 두께보다 아름답게 휘어진 그 곡률이 좋다고 한다. 나는 두꺼운 지름과 긴 길이를 예찬했으나 여전히 그는 아름답게 휘어진 나무의 곡률이었다.

집은 양쪽이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앞 뒤 퇴 칸의 툇보들도 모양을 맞춰 대칭을 이루게  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좌측의 두 칸도 휘어진 충량을 이용해 물매를 잡고 있었다.
다락에도 대들보와 동일한 크기의 나무 두 개를 위 아래로 이용했다

이 집과 나무들이 가치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 집은 참판댁과 비슷한 시기인 1874년에 지어졌고(참판댁은 정확한 상량기문이 없었는지 백과사전에 19세기 말에 지어졌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짓는 기법이 유사했다. 아니 유사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한옥 관련 교수님 한 분이 집에 사용된 대들보와 종보의 나무가 잘하면 남한의 나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해주시기도 했다. 남한의 나무가 아니라면 북한의 소나무란 이야기인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그가 1874년에 지어진 7칸 한옥 한 채를 구하게 된 것이라는 점이다. 현장의 일은 시작되었고, 그는 출근해 일을 했지만 마음은 고택에 머물렀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14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