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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Jul 02.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18

한옥 1874 (5)

이른 새벽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한과 훈이 도착했다. 미안함, 고마움, 든든함, 그는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한과 훈은 도착하자마자 커피도 마시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 남아 있던 흙이며 산자 등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태국 사람들에 비해 세 배는 빠른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와 태국 사람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오전 내내 지붕 일을 해야 했다. 흙보다도 산자가 문제였다. 집을 짓는 사람들이 해체를 염두했을 리 없었다.


지붕의 흙과 산자를 제거하고 서까래를 수거했다. 나무를 옮기는 일은 태국 사람들의 몫이었다. 타향에 와서 고생이 많았다. 독일의 탄광에서,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우리 아버지들도 그랬을 것이다. 서까래를 제거하니 하늘의 빛을 받으며 나무의 색과 곡선의 아름다움이 드러났다고 그가 말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하늘은 어둡기만 하다.) 그는 일을 하며 구조와 관련된 몇 가지 의문점들을 품었다. 모두 내가 해결해 주었다. 첫째는 집의 가장 왼쪽 칸과 둘째 칸의 구조와 사용된 나무들이었다. 휘어진 두 개의 나무를 이용해 경사를 잡은 것. 나무를 네모나게 조각해(소로 모양의 목침) 종도리를 떠받친 이유를 궁금해했다. 그리고 수리를 할 때 왜 기둥을 제거하고 보를 추가했을까 궁금해했다. 나는 전자는 '멋있으라고' 후자는 '넓게 쓰려고'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내부의 두 대들보를 연결하는 사각의 나무를 1947년에 수리하면서 넣은 나무라고 생각했다. 그럴 것 같았다. 그는 그 나무를 넣은 이유를 궁금해했다. 두 대들보 사이에 존재했던 어떤 것을 제거하며 그 역할을 대신해 하중의 분산시키려 그랬을 것 같다고 자문자답을 했다. 그럼 물어보지 말던가...


두 개의 대들보를 비롯해서 다락 우측의 두 목재, 여러 개의 종보들을 1874년에는 도대체 어떻게 올렸을까 궁금해했다. 마른 상태에서도 장정 10명이 들지 못하는 대들보를 150년 전에 어떻게 올렸을까?


나는 정약용 선생이 발견한 '거중기'라고 답했으나 후에 알게 되니 도르래를 이용한 '이맛대'라는 도구가 이용되었다고 한다. 대들보에는 그 이맛대를 걸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철물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태국 사람이 빠루로 제거하려는 것을 조심스레 말렸다. 그의 마음은 이해했으나 무덤 속의 사소한 철물 하나, 그릇 한 조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데.......

  gibumi.tistory.com

서까래와 추녀 등을 차에 싣고 일을 마쳤다. 훈과 한이 창고로 서까래를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한의 주도로 떠나기 전에 회의를 했다. 한은 '형 크레인 취소하고 우리가 직접 분리하자!'라고 그에게 강단 있게 말했다.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저 대들보 네 개가 문제야' '형 지금 사람이 몇 명인데, 한쪽 뽑아서 도리에 걸치고 다른 한쪽 뽑아서 도리에 걸치는 순으로 해서 내리면 안 될까?' '자신 있어?' '응' 세 명이서 사다리를 타고 대들보에 올라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그는 크레인을 취소했다.

그는 남아 태국 사람들과 벽체를 제거했다. 해질 무렵 김 사장님이 직원들을 태우러 왔다. 김 사장님은 자기가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한옥을 철거했는데 이처럼 목재가 좋은 집은 열 손가락 안에 든다면서 칭찬을 했다. 나머지 아홉 채는 어떻게 되었냐는 그의 질문에 모두 화목으로 사라졌다고 답했다. 그가 아쉬워하자 사장님은 더 아쉬워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고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옳은 일인지 의심이 될 때가 많지만, 사장님의 칭찬은 듣기 좋았다. 멀리서 집을 유심히 바라보던 사장님이 기둥 하나를 짚었다. 전면 우측의 둘째 기둥이었다.

사장님이 짚은 기둥은 전면 기둥 중에 유일하게 네모난 기둥이었고, 그 기둥이 약간 내려가 있었다. 도리의 처진 각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부동침하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부동침하란 기초 지반이 불균등하게 침하하는 것을 말한다. 그 기둥만 네모난 기둥인 이유, 그 기둥만 부동침하가 일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초석, 집을 지탱하고 있는 기초가 되는 돌. 문화재에 지정된 건물에 가면 주춧돌을 유심히 보게 된다. 돌 몇 개가 집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과 돌 표면에 맞춘 기둥의 그레질이 신기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각, 원형, 팔각, 방형 등 가공 초석보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 주초에 더 관심이 갔다.

초석은 눈에 보이는 부분이 다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부분뿐이다. 초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밑동이 더 크고 넓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집은 보이지 않는 곳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초석은 집의 하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때문에 초석 아래 기초 다짐이 중요하다. 지정이나 잡석 다짐 공정에 특히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진의 기둥처럼 부동침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둥이 가라앉으면 문선과 벽이 벌어지며 외풍이 심하게 들어오기도 하고, 그 부위의 서까래가 가라앉기도 한다. 무엇보다 집의 하중이 그곳으로 쏠려 결국 집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혹시 부동침하가 원인이 아니라면 그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두 개의 나무 때문이 아닐까. 대들보와 비슷한 하중을 가진 나무가 두 개나 되고, 그 둘의 하중을 기둥 혼자서 버티다 침하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장님과 태국 사람들이 떠나고, 그는 몇 컷의 사진을 더 찍고 하루 일을 마쳤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체조를 했다. 사람들을 나란히 세우고 그가 배드민턴을 치기 전에 하는 체조로 몸을 풀었다. 하루 종일 집을 해체하고 무거운 나무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른 아침에 어색한 체조를 했다. 달밤의 체조였다. 체조를 마치자 다큐멘터리 감독님들이 도착했다. 한 분은 드론을, 한 분은 보통의 영상카메라를 들고 도착했다. 드론으로 집의 전체 영상을 찍고, 카메라로는 집의 세밀한 부분을 찍었다. 처음 본 드론 촬영은 인상적이었다. 후에 나올 다큐멘터리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훈은 차 위에서 태국 사람들이 옮겨 오는 나무를 쌓고, 그와 한은 각각 다른 태국 사람들과 짝을 이뤄 부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가 직접 부재를 해체하니 사진을 전혀 찍을 수가 없었다. 위험하지 않거나 여유가 있었다면 중간중간 사진을 찍을 수 있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후에 창고로 이동된 목재를 찍어 그때 상황을 추리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좌측 둘째 칸의 상단은 사진과 같은 모양이었다. 휘어진 우미량(소꼬리처럼 휘어진 보로 주로 도리와 도리 사이를 연결한다) 혹은 충량(대들보와 직각 방향으로 놓여 측면의 평주와 가로 걸치면서 측면을 통과하는 중도리 등을 떠받쳐 지붕 합각부의 무게를 지탱하여 대들보와 평주로 분산시켜 주는 역할을 함)으로 생각되는 나무에 소로 모양의 목침을 올리고 그 위에 장여, 종도리, 추녀가 올라간 구조였다. 장여와 종도리만으로는 추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고 높이도 확보되지 않아 여러 나무를 쌓아 높이와 구조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상위 부재와 흙의 무게를 작은 소로 모양의 목침이 모두 지탱해 낸다는 것이 특별해 보였다. 150년 동안 지탱하면서 금도 가지 않았다. 어떤 나무일까. 그리고 그 우미량을 통해 나무의 등과 배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 이유도 얼핏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나무들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추녀를 분리해 내야 하는데 추녀를 고정한 못(추녀정?)이 뽑히지가 않았다. 두 추녀를 꽉 묶은 못이라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저히 뽑히지도 그라인더의 날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결국 강제로 추녀를 분리했다. 추녀는 상하고 못만 온전히 남았다. 그는 이 못을 박은 망치와 목수와 대장장이가 궁금했다. 


곧 안방 종도리 아래 장여를 분리했다. 한이 소리쳤다. '형 뭐가 있는 것 같아'. 종도리와 맞붙는 장여 상부에 홈 자국이 보였다. 상량문이 들어있는 자리였다. 덮개를 열며 한과 훈은 금붙이라도 들어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금은 없었다. 그는 상량문이 금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리를 분리하고 대공과 동자주 등을 분리했다. 대들보를 내리기 위한 과정이 천천히 진행되었다. 대공은 종보에 구멍을 파고 나무못을 이용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도리와 장여를 내리고 종보들을 내리면서 특별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있었다. 보의 몸과 머리 사이 부위가 매우 얇다는 것이었다. 실질적인 무게는 도리와 기둥이 받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얇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장여가 더 튼튼이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보머리가 부러지지 않게 내리느라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는 종보뿐만 아니라 대들보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태국 사람이 부엌 상단의 우미량을 내렸다. 부엌이 있던 자리, 우측 끝 두 칸은 좌측 끝 두 칸과는 다르게 오량에서 두 개의 우미량이 내려오는 구조였다.

그런데 이 우미량을 내리면서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헛보머리였다. 강철조(우보만리) 도편수 님이 알려준 이 헛보머리는 해체할 때는 알지 못했다. 보를 내려놓고 다시 일을 하려는데, 이를 옮기려는 태국 사람이 그에게 손짓을 하며 부르는 것이었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을 부를만했다. 보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

처음에 이를 보고 그는 집을 한번쯤 수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약 6m에 이르는 대들보 네 개를 사용할 정도로 좋은 목재를 쓰는 집에 나무가 모자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계속 읽어보셨으면 알겠지만 상부 구조가 온전하게 남아 있으니 수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이 정도 수리를 위해서는 상부의 흙을 제거하고 도리 등을 분리해야 가능한 수리 같았다. 그래서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이축'이었다. 이축 과정에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 이는 전면 우측을 둘째 기둥만 네모난 기둥을 사용했다는 점과 더불어 헛보머리는 이축을 생각볼 여지를 남겼다. 아니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사진을 공주 김갑순 가옥을 수리하고 계시는 강철조 목수님께 보내니 이는 헛보머리이고 정밀한 연결이나 나무의 상태 등을 봤을 때 집을 지을 당시에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 답해 주었다. 그리고 옛 목수, 지금의 목수들도 나무를 상당히 아껴서 집을 짓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두 장의 사진을 보내 주셨다. 그 사진은 영업 비밀 같았으나 사용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사진을 더 올릴 수 없어 다음 편에 이어 써야 할 것 같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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