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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Jul 27.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22

근대 한옥 1928 (유하당)-1

그가 다시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을 꺼내 들었다. 그의 아내는 그가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이번엔 며칠만에 전권을 읽어낼지 궁금했다. 지난번엔 4일이었고 그 전엔 7일이었다. 몸과 마음을 가라앉힐 때 장길산을 꺼내 드는 것은 그의 오랜 습관. 책 읽기를 다시 시작하거나, 긴 글을 쓰기 위해 앉는 힘을 기르려 할 때 그는 장길산을 본다. 책으로 몸을 길들이는 것이다. 반대로 오랫동안의 책 읽기를 멈추거나 긴 글의 탈고하면 드라마를 몰아본다. 드라마의 첫 편부터 끝 편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한 번에 몰아본다. '도깨비'가 그랬고, '응답하라'라 그랬다. 그런 그가 이제 장길산을 꺼내 들었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갈 준비를 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의사 표시.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최소화하고 그는 책으로 스며들어 갈 것이라고 그의 아내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이라 생 각 했 다. 그가 이제 옛집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막 1권을 읽고 날짜를 기록하기 위해 연필을 찾으려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아내의 눈에 불안감이 스쳐갔다.

전화의 주인은 조 목수의 지인이자 주택 리모델링을 직업으로 하는 고 사장님이었다. 목수는 아니지만 목수에 버금가는 나무 다루는 솜씨를 지녔고, 철을 다루는 일에 일가를 이룬 분이었다. 고 사장님은 조 목수와 함께 옛집이나 일반 주택을 몇 채 수리했고, 서로 친해졌으며 그 과정에서 그의 이야기도 전해진 듯했다. 그도 고 사장님을 몇 번쯤 만났고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번호를 교환한 기억은 없었다. 조 목수를 통해 그의 연락처를 알게 된 듯했다. 용건은 옛집 한 채를 철거할 예정인데 구경올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여자의 직감은 화살과 같다. 설거지를 하고 있었지만 오감은 그의 통화에 집중되었던 아내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그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는 '나 잠깐 나갔다 올게'라고 아내의 엄지발가락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챙겨서 썰물처럼 집을 나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금도 장길산 2권은 그의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고 한다.


그가 간 곳은 새만금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김제시 진봉면이었다. 고 사장님은 약속한 주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봉면은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주변 땅 값이 오르며 토지 및 주택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했다. 새만금의 배후 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곳에 옛집은 있었고 누군가에게, 누군가들에게 팔린 듯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 집을 헐고 땅을 나누어 새롭게 몇 채의 집을 지을 예정이라고 했다. 개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곳에 집을 짓는다는 것이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 사장은 댐이 건설될 곳에 나무를 심는 이유와 같다 설명해 주었다. 

집은 정남향에 정면 6칸에 측면이 2칸 반으로 겹집 형태였다. 가장 좌측은 부엌이었고, 그다음 칸은 다락 그리고 연달아 두 개의 방이 있었다. 대청 칸은 한 칸이었지만 다른 곳보다 칸 사이가 넓었다. 가장 오른쪽은 긴 방으로 방 안쪽으로 벽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은 누군가가 벌써 가져간 지 오래였고, 기둥에서 서까래 등은 상한 곳이 없었다.

마당 오른쪽에는 창고 겸 간이 정미소가 있었다. 집에 정미소가 있다는 것이 그는 신기했다. 주인이 아주 큰 부자였고, 그 후손은 지금도 부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 정미소가 따로 있으나 집안에 정미소가 있을 수 있고, 남아있는 옛집 중에 부자 아닌 집이 없어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집을 해체하다가 발견한 몇 권의 족보와, 관직을 하사 받은 임명장(?)를 보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이후 여러 흘러온 말들을 종합합면 주인은 전주 최 씨 집안으로 진봉면 일대 땅이 이 집주인을 비롯한 4형제의 땅이었고, 사 형제 중에 한 명의 자손이 63 빌딩을 짓는데 관련되었다고 한다. 사 형제 중에 큰 형님은 전주 팔복동 공업 단지 개발 과정에 중요한 역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애매한 경계에 집의 역사가 서있었다. 

오래된 집은 아니었다. 묵은집(1841)이나 동학집(1893), 1874년 집과 같은 오래된 느낌이 덜했다. 자귀 자국이나 구조 등 오래된 집에서 보이는 몇 가지 특징이 없었다. 강점기 전후에 지어진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 천장에 반자가 있어 상량기문과 상부 구조는 확인할 수 없었다. 상량기문을 확인하지 않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의 그 첫 생각이 맞았다. 

해체 과정에서 확인한 상량기문에서 1928년을 지시하는 무진(戊辰)이라는 60갑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무진년이니 1988년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1868년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서까래를 못으로 고정했다는 점, 집의 사연과 친척 분의 증언 등을 고려해 봤을 때 1928년이 맞을 듯했다. 그는 1841년 묵은집을 비롯해 그 사이 꽤 많은 고택을 봐온 탓에 90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오랜 세월로 느끼지 못했다.

고 사장과 함께 찬찬히 집을 둘러보았다. 집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둥과 장여, 툇보 등을 관통하는 못 비슷한 무언가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고 사장께 저것이 뭐냐 물으니 모른다고 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한옥에서 부재를 연결할 때 사용하는 나무못으로, 산지못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못을 이용해서 부재를 연결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는 그때 처음 알았지만 한옥을 지을 때 흔히,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그는 그때 그것이 특별해 보였다. 

툇마루는 우물마루인데 대청마루는 장마루였다. 일반적으로 툇마루보다는 대청마루를 더 격이 높게 생각하기에 대청마루를 우물마루로 만들고 툇마루를 장마루로 만들어야 하는데 뒤바뀐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강점기에는 긴 장마루가 더 귀했을 수도 있고, 관점은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가 열심히 집을 보고 있으니 고 사장이 문득 권했다. 마음이 있으면 그가 이 집을 가져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 사장이 그를 부른 목적을 조금 늦게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답을 미룬 채 한동안 집을 바라봤다. 사실 그는 집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내의 엄지발가락과 통장의 잔고였다. 

'이 집 좋은 집이네. 포클레인으로 철거해서 화목으로 사라지게 하기엔 그렇지 않은가?'라고 다시 권했다. 그는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한쪽으로는 전화를 받지 말 것을, 장길산이나 읽을 것을,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이런 깊은 갈등은 없었을 것을.....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합리화했다. 내가 보호하고 이축을 생각하는 집은 개화기 이전의 조선집, 강점기 이전에 지어진 초가집인데..... 그가 애써 가치관을 내세우며 합리화하고 있을 때 고 사장님이 다시 권했다. '목재 값은 나중에 벌어서 주고 해체할 때 들어가는 비용만 어떻게 먼저 마련하면 안 될까? 나도 대마지가 길어지고 있고, 조 목수도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우리는 일당벌이 하는 셈 치고...... ' 그는 순간 아내의 엄지발가락을 잊고 말았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데'라는 멋진 속담을 생각하며 그는 '그렇게 하시지요' 대답했다. 그 한 마디가 그를 장길산으로부터 벗어나 옛집에 다시 발을 담그게 했다. 고 사장님은 '잘 생각했어, 내일부터 바로 일 들어가야 것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1928년에 지어진 근대 한옥 유하당을 해체해 보관 하기로 결정했다. 고민없는 그의 선택과 결정이 나는 조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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