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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Sep 08.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23

근대 한옥 1928 (유하당)-2

끝까지 읽으면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어'라고 말 할 수 있는 한옥 집에 불 난 이야기.


그에게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뒤에 할 이야기를 고려한다면 그 친구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좋진 않지만 그냥 '차행'이라는 이름을 대놓고 밝힌다. 그와 그의 친구 '차행'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의 집이 직선거리로 40m 정도 떨어졌으니 위 아랫집이라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 둘은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탁아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탁아소 2년을 포함해서 14년 동안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10번 정도 같은 반이었다. 같은 날 담배를 배웠고, 같은 날 술을 배우고 숙취로 인해 같이 지각을 했다. 같이 과수원을 서리하다 걸려서 둘이 나란히 무릎을 꿇고 부모님을 기다리기도 했다.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대부분을 아니, 좋은 일은 반절 정도 짓궂은 일은 대부분 같이했다. 둘은 키도 비슷했고, 취향도 비슷해 뱀과 미꾸라지를 잡아 팔아서 용돈을 만들었고 그럴듯한 재미난 일에 사용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조금 착한 척을 하며 살았고, 차행은 '척'하면서 살지 않았다. 뱀은 같이 잡으러 다녔는데..... 차행은 몇 번 뱀에 물렸지만 그는 한 번도 뱀에 물리지 않았다. 40호 정도가 사는 마을에서 차행의 집은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였고 그의 집은 중간 정도의 살림살이였다. 차행에게는 한 살 차이가 나는 형이 한 명 있었고, 그에게는 세 명의 형이 있었다. 차행과 차행의 한 살 많은 형 그리고 그는 친구처럼 지냈다. 짓궂은 놈 셋이 모여 놀았으니 사건 사고가 많았다. 우산대를 이용해 화승총을 만들어 노루를 잡르려다 화상을 입기도 했었고, 20~30m 깊이의 저수지를 몇 번까지 가로질러 수영을 할 수 있는지 내기를 하다 저승을로 갈뻔도 했었다. 이제부터 말하려는 사건은 수많은 사건 중에 집과 관련된 사건 중에 하나로 오랫동안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이다. 그 사건은 그들이 중학생이었던 어느 가물었던 봄에 일어났다.


그가 차행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당에는 넓은 비닐이 깔려 있었다. 비닐 위에는 오토바이 한 대가 온전히 분해되어 각각의 부속이 나란히 펼쳐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색색의 바가지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온 집안의 바가지는 모두 동원한 듯했다. 바가지 안에는 작은 부속과 볼트와 너트가 크기별로 구분되어 담겨 있었다. 한쪽에서 차행과 차행의 형이 또 다른 오토바이 한 대의 분해를 이제 막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또 다른 고물 오토바이 한 대가 멀뚱히 서서 다음 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즉 형제는 한 대의 오토바이를 이미 분해했고, 한 대의 오토바이를 분해하고 있었으며, 한 대의 오토바이를 분해할 예정이었다. 세 대의 오토바이는 모두 고물로 오랫동안 방치된 것들로 보였다. 그는 낑낑대며 오토바이의 바퀴를 분해하고 있는 형제 옆에 조용히 앉아 사연을 물었다.

'이런 고오급 오도바이들은 어디에서 구했대?'

'응 왔어, 여기저기서' 차행이 대답했다.

'말 안 하고 빌려왔고만!'

'말을 하고 빌려 오려고 했는데 주인을 만날 수 있었어야지....' 차행이 형이 답했다.

'그려 잘했네, 잘했어. 굴려서 가져왔어?'

'응. 조빠졌어'

그가 너트를 풀고 있는 차행 곁으로 바투 붙어 앉으며 물었다.

'뭐하려고 오도바이를 분해한대?'

'응 이 오도바이들을 다 분해해서 쓸만한 부속을 모아서 새로운 멋진 오도바이 한 대를 조립하려고.' 차행의 형이 '멋진'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좋아. 좋은데..... 아이디어는 참 좋아.....그런데.....오도바이 종류가 서로 다 다른데 결합이 될까 몰라? 재는 ct100 이고, 얘는 mx고, 재는....감마.......저 쇼바 높이 대단하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차행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바퀴를 분리하고 있는 그의 형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긍게 내 말이 맞잖아~아! 종류가 다른데 어떻게 결합이 되것냐고,  변신 합체 로봇 맥칸더도 아니고.....닝기리.'

그러자 차행의 형도 얼굴의 땀을 닦아내며, 아니 땀을 닦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름때를 얼굴에 묻히며 말했다.

'결합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힘들어서 못하것어, 차라리 뱀을 잡아 팔아서 오도바이를 한 대 사는 것이 낫것어....닝기리....' 하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실실 웃으며 '아 결합이야 어떻게 하면 되겠지.....해봐....근디 타고 다니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형제는 오토바이 분해를 포기한 듯했다. 그들은 행랑채 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그와 차행, 차행의 형은 행랑채 마루에 앉아 분해된 오토바이와 분해되고 있는 오토바이와 분해될 오토바이의 처리 방법에 대해서 상의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 쥐, 쥐 한 마리가 본채 부엌 근방 쥐구멍에서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헛간으로 '다다다다' 뛰어갔다. 그들이 앉아있던 행랑채와 본채 사이에는 마당이 있었고 마당 가장자리에 사 칸의 헛간이 있었다. 헛간의 좌측 첫 칸은 대문 가까운 곳으로 빈 외양간이었고, 그 옆 한 칸은 예전에 머슴이 사용했던 작은 방이었다. 나머지 두 칸은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오래 마른 장작과 불쏘시게감이 꽤 쌓여 있었다. 장작이 쌓여 있는 그곳은 본채 부엌과 가까운 곳으로 그 마을에선 그런 곳을 '나무허청'이라 불렀다. 세 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쥐가 들어간 쥐구멍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쥐는 곧 쥐구멍에서 다시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처음 나왔던 쥐구멍으로 '다다다다' 뛰어 돌아갔다. 무료한 휴일, 목적을 잃어버린 세 청춘의 눈에 열정과도 비슷한 무언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차행의 형은 행랑채 벽에 걸려 있던 채, 정확히 말하면 깨채를 들고는 헛간과 본채 중간쯤 되는 마당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깨채를 던질 준비를 하고 쥐를 기다렸다. 그 모습은 흡사 진지하게 투호를 던지는 선비의 모습이었고,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궁사의 모습이었으며, 투망을 들고 은어떼 무리를 기다리는 젊은 어부의 모습이었다.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쥐구멍에서 쥐가 다시 나오려 했다. 순간 차행은 그의 형에게 손을 들어 사인을 보냈고, 그는 꿀꺽 침을 삼켰으며, 차행의 형은 들고 있던 깨채를 조금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쥐가 구멍에서 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헛간을 향해 '다다다다' 뛰기 시작했다. 순간, 차행의 형은 쥐의 이동 속도와 깨채의 속도 및 포물선 각도, 바람의 방향 등을 정확히 계산해서 쥐를 향해 깨채를 던졌다. 깨채는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가 슬로우 모션으로 뛰는 쥐를 정확하게 가두었다. 순간 그는 탄성을 질렀으며, 차행은 박수를 쳤고, 차행의 형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손을 하늘을 향해 펼쳤다. 


그렇게 쥐를 포획했다. 그들은 우르르 달려 나가 깨채 안쪽 둘레를 돌며 방황하고 있는 쥐를 내려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행랑채 벽에 걸린 새끼줄로 쥐를 포박해 인간의 양식을 탐한 죄를 물어 관아로 압송하고 싶었지만....... 이미 관아는 없었으므로...... . 쥐를 내려다보던 차행의 형은 짧게 박수를 치고는, 오토바이 부속의 기름때를 닦기 위해 준비해 놓았던, 큰 바가지에 담겨 있던 시너(휘발유의 일종)를 작은 바가지에 조금 덜어 가져왔다. 시너를 들고 오는 그가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망나니의 미소였다. 차행과 그는 차행의 형이 할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던 바, 이성적 판단에 의해 그것은 좋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폭력성은 다음 순서를 기다리게 했다. 다음 순서를 기다린 정도가 아니라 무척 기대 되었다. 곧 차행 형은 깨채 안에서 분주히 돌아다니는 쥐에게 시너를 뿌렸고 성냥을 집어 들었다. 성냥을 긋기 전 차행의 형은 차행과 그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소리 없이 야릇한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는 흡사 악당을 처치하는 더 나쁜 악당의 미소처럼 보였다. 


이윽고 차행의 형은 성냥을 그어 쥐를 가두고 있는 뒤집어진 깨채 위로 던졌다. 성냥불은 유증기를 거쳐 순식간에 쥐로 옮겨 붙었다. 순간, 불이 붙은 쥐가 솟구쳐 올랐다. 실로 강력한 순간적 힘이었다. 깨채는 뒤집어졌고, 그들은 뒤로 물러났으며 그중에 한 명은 '아이쿠야' 소리를 쳤다. 불이 붙은 채로 깨채의 감옥에서 탈출한 쥐는 내달렸다. 그런데 쥐가 달리려는 순간 차행의 형이 내려놓은, 신너가 들어있는 작은 바가지에 부딪혔고 순간 바가지에 불이 붙었다. 훗날 쥐가 시너가 물이거나 시너가 담겨 있던 바가지를 우물 바가지로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쥐가 그 상황에서, 그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 통에 든 액체를 물로 판단하거나 그릇을 우물 바가지로 판단했을 리 없었다. 쥐는 그냥 달렸을 것이고 그 방향에 시너가 담긴 바가지가 있었을 뿐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신나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쥐가 높이 튀어오를 때보다 시너통에 불이 붙을 때 더 놀랐다. 세 사람의 망나니는 허둥지둥거리다 어디서 들은 바는 있어 헌 이불을 구해와 불을 제압했다. 다행인 것은 더 많은 시너가 들어있는 큰 바가지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을 제압한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당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잠시 숨을 돌린 차행의 형이 그에게 물었다. '쥐는 어디로 갔데?' 그는 마당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러게? 어디로 갔을까?' 답했다. 차행은 '물 찾아서 냇가로 간 거 아녀?'라고 말했다. 그럴 수 도 있겠다고 생각한 모자란 세 망나니는 대문 밖 냇가로 나가 보았다. 냇가에 불이 붙은 쥐는 없었다. 연기도 없었다. 차행의 형은 '큰일 날 뻔했다' 말하며 둑 위에 서서 봄 가뭄에  바짝 마른 냇물을 마치 큰 강물이라도 되는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잠시 서 있었던 그는 형제를 향해 '나 이제 집에 갈게' 말했다.

형제는 그를 동시에 바라보며 눈으로 '왜?'라고 물었다.

그는 '나 집에 가서 만화책 빌려 온 거나 보려고....'라고 답했다.

형제는 동시에 '무슨 만화?'라고 소리 내서 물었다.

그는 '북두의 권'과 '닥터슬럼프', '드래곤 볼' 신간을 빌려왔다고 답했고,

차행의 형제는 '이런........ 훌륭한 놈, 같이 봐야지!' 말하며 그 길로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행은 그의 집을 약 20m정도 남겨두고 그의 형에게 '오도바이는?'이라고 물었고, 차행의 형은 '아 몰라!'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분해된 오토바이와, 분해하고 있던 오토바이와, 분해할 오토바이와, 형형색색의 바가지를 마당에 펼쳐놓고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구석진 그의 방에서 구석진 곳에 놓여 있는 고구마를 깎아 먹으며 남은 세 구석에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아 신간 만화를 읽었다.


어디선가 징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운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먼 곳도 아닌 곳에서 징소리가 들렸는데, 그 징소리는 여느 때의 징소리와는 달랐다. 징소리와 어울리는 장구와 꽹과리 소리도 없었고, 소리의 여음 또한 '징~~~~~'이 아닌 '징 징 징 징' 짧고 간결한, 거칠고 큰 소리였다. 소리만으로도 징을 내리치는 징잡이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이런 느낌의 징소리를 언젠가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태풍 '델마'가 왔었을 때였다. 태풍이 내린 비로 인해 저수지 둑이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었을 때 이런 징소리를 들었다. 루이스는 놔두고 델마 혼자 태풍이 되어 왔던 날 밤, 붕괴 직전의 저수지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들은 마을의 늙은 징잡이는 그의 집 용마루에 올라가 사정없이 징을 내리치며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한간에 늙은 징잡이는 마을 골목을 뛰어다니면 징을 칠까 고민도 했지만 좀 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용마루에 올라 갔다는 이야기와, 늙은 징잡이의 아내는 마을 사람보다 늙은 징잡이가 아니,  새로 번와한 기와가 떨어질까 걱정되어 미친 짓 그만하고 내려오라 소리쳤으나 늙은 징잡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번개가 내리치는데 징을 높이 들고 칭채를 내리쳤다는 아름답고도 멋진.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여하튼 그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잠이 깨어 고지대로 대피를 했고 그 덕에 재산 피해는 있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들에게 들려오는 징소리는 그때의 징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 망나니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즐거운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들은  덮고 있던 이불을 박차차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가장 먼저 나온 망나니는 차행의 형이었다. 차행의 형이 방문 앞 토방에서 신발을 신으려다가 순간 멈춰섰다. 그리고는 코를 킁킁댔다. 어디선가 알싸한 불냄새 났기 때문이었다. 차행의 형은 훗날 그 불냄새에 쥐 냄새가 섞여 있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에 오랫동안 닿지 않는 동물이 갖는 냄새, 그늘에 사는 동물이 내는 냄새가 불냄새에 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신발을 신은 차행의 형은 그의 집 마당 가운데에 서서 코를 킁킁대며 불냄새가 나는 방향을 탐색했다. 마치 늑대 무리의 대장처럼. 그와 차행도 신발을 신고 차행 형의 옆에 서서 코를 킁킁대며 불냄새가 나는 방향을 탐색했다. 마치 늑대 무리의 일원처럼. 곧 그들의 코와 몸과 손이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차행 집 방향이었다. 동시에 손을 들어 차행의 집을 가리켰던 그들의 모습은 마치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에 서 있는,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레닌의 동상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손을 내린 것은 웅성거리며 바쁘게 달려가는 마을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의 집 대문을 지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손에 각기 무언가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대문 앞을 지나가던 사람 중에 한 아주머니를 붙잡아 물었다.

'뭔 일이래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바가지인지 대야인지 양동이인지 모를 것을 허공에 휘두르며 차행의 형을 향해 '야 니네 집에 불랐디야!'라고 소리치며 가던 길을 마저 달려갔다. 그들도 아주머니를 뒤를 따라 차행의 집으로 달려갔다. 불과 직선거리 40m의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주머니와 동네 사람들을 추월해 차행의 집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실로 놀라운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헛간에 말 그대로 화광이 충천했다. 넘실 거리는 불은 춤을 추는 듯 했다. 몇 년 묵은 장작의 연기는 하늘이라는 그릇에 담기 뽀얀 사골 국물 같았다. 불길은 이미 본채 부엌까지 번져있었고, 부엌 다음 칸에 있는 차행의 할아버지 방으로 연기가 넘어가고 있었다. 실로 장관이었다. 그 집이 차행의 집만 아니면 이런 인생 일대의 재미난 불구경은 없었을 것 같았다.그런데 구경거리는 불만이 아니었다. 차행의 식구들이었다. 못자리를 하다 달려왔는지 차행의 할아버지는 노란 장화를 신고 달려가다가 마당에 깔려 있는 오토바이의 부속을 밟고 우당탕당 쓰러지는 순간이었고, 차행의 아버지는 본채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는 한쪽 바퀴가 없는 오토바이를 치우기 위해 낑낑대고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마당에 펼쳐져 있는 형형색색의 바가지 중에 큰 바가지를 들어 올렸으나 바가지 안에 들어 있는 오토바이 부속의 무게로 인해 꼬꾸라지던 찰나였다. 정지 화면으로. 먼저 도착한 차행네 아랫집 아저씨는 제법 큰 바가지에 담긴 물을 힘차게 불로 뿌렸다. 그러나 그 바가지에 담겨 있던 것은 차행의 형이 남겨 놓은 신나였다. 순간 불길이 확 솟구쳐 올랐다. 그 모습은 일본에 떨어진 원자 폭탄 리틀보이가 터질 때의 형상을 축소해 놓은 듯했다. 정말 장관이었다. 하마터면 차행과 차행의 형은 박수를 칠뻔했다. 아저씨도 '와~' 하며 화염의 잔상을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바가지를 내려 놓고는 큰 바가지를 골라 우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담겨 있던 볼트를 우물에 쏟아 버리고는, 물을 퍼 올리는데 그것을 본 그의 할아버지는 이제 우물물을 다 먹었다고 소리쳤고, 차행의 아버지는 지금 우물물 걱정할 때가 아니라며 이 오토바이를 밀어내야 한다고 소리쳤다.  마당 아랫쪽 행랑채 앞에서는 늙은 징잡이가 '징징징징' 귀가 먹먹하도록 징을 쳐대고 있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각기 하나씩 물을 담을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차행의 집에 도착했다. 잠시 '와~'하며  세 망나니 옆에 서서 불구경을 하던 마을 사람들은 '아 이 영감이 노망이 들었나 징을 칠라믄 동네 가운데 가서 징을 쳐야지 불난 집에서 징을 치면 워쪈대! 아 빨리 저 밑으로 내려가서 징을 치던지 혀어! 시끄러 죽것네에~'라고 소리치는 늙은 징잡이 아내의 고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문 앞 냇가로 물을 구해 달려갔다. 그러나 냇물은 봄 가뭄에 말라 길어 올릴 물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불난 집으로 돌아온 마을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을 조달하기 위해서 달려들었으나 우물터가 좁았다. 순간 새마을 운동의 효과였는지 마을 사람들은 일렬로 쭉 서서 물을 퍼올릴 순서를 기다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물가에 일렬로 서서 물을 배급받을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불구경을 했고 차행의 식구들은 그렇게 불구경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때 멀리서 트럭, 아니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의용소방대였다. 그런데 사이렌 소리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훗날 의용 소방대 일원이었던 읍내에 사는 '노춘삼'씨는 차행의 뒷집에 사는 황 씨의 달구지 때문에 소방대의 도착이 늦었다고 증언했다. 막걸리에 잔뜩 취한 황 씨는 달구지 위에 배를 까고 누워 소에게 귀가길을 온전히 맡기고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클랙슨을 아무리 울려도 황 씨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의용소방대의 트럭, 아니 소방차에서 한 사람이 내려 달구지를 못자리가 막 끝난 무논으로 끌고 들어가서야 길이 열렸고 소방차가 제 속도를 냈다고 한다. 노춘삼 씨는 곁들여 무논으로 달구지를 끌고 들어갔던 의용소방대원이 다시 소방차에 올라타려 할 때 청소하기 힘드니 너는 뛰어오라는 의용소방대장의 말에 기분이 나빠 그 길로 의용소방대를 탈퇴하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소방대장은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하튼 나름 어려운 여정을 거쳐 의용소방대가 도착했다. 의용소방대라기보다는 '의용섯다대'로 불리는, 봄철 산불 대비를 핑계로 아침마다 출근해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화재 진압의 효율적 방법론에 대한 연구보다는 섯다의 원리와 노름의 의의, 잃은 돈과 딴 돈의 액수에 가장 절한 개평의 비율에 대해서 논쟁하던 그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곧 트럭, 아니 소방차에서 호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소방차라고 말하기 어색한, 일제 강점기에나 썼을법한 소방용 수동 펌프를 싣고 온 트럭에서 호스를 펼치던 '노춘삼'씨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화투 두 장이 자꾸 허벅지를 찔렀으나 꾹 참고 호스를 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노춘삼 씨는 아픔을 참으며 하나의 호스를 늘어뜨려 우물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 앞에 일렬로 서있던 마을 사람들이 길을 터주었는데 그 사이를 달리는 노춘삼 씨의 모습이 마치 두쪽 난 바다를 건너는 성경 속 그 호세의 모습과 비슷했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나올 다른 호스를 불이 난 곳으로 펼치고 수동 소화기의 펌프질을 시작했다. 물론 화재 진압용 호스는 소방대장이 잡았고 펌프질은 노춘삼 씨와 트럭 운전수로 따라온 소방대원이 했다. 그 둘이 얼마나 열심히 펌프질을 하는지 우물가에 일렬로 서있는 사람들은 그 둘을 둘러싸고 '으쌰 으쌰' 구령을 더해주었고, 그때까지도 자리를 지키던 늙은 징잡이는 '지 잉 지 잉' 징을 치며 펌프질과 마을 사람들의 응원에 박자를 맞춰주었다고 한다.  다행히 호스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세 망나니는 불이 난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 의용 소방대의 희생이 너무도 아름다워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 했다.


헛간을 온전히 전소시키고, 본 채 부엌과 그 옆 할아버지의 방을 태우고 불길은 잡혔다. 그나마 6칸 겹집의 본채에서 좌측 두 칸은 불에 탔지만, 우측 두 칸 대청마루와 차행의 부모님과 차행의 형제가 잠을 자는 두 칸은 건질 수 있었다. 의용소방대원도 돌아가고, 마을 사람도 돌아가고, 늙은 징잡이와 그의 아내도 돌아가고, 다만 황 씨가 달구지를 끌고 차행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세 망나니가 앉아서 쥐를 바라보았던 행랑채 마루에 차행의 식구들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문득 차행의 어머니가 말했다. '아 근디 불이 어찌케 났을까? 그것도 헛간에서?' '긍게 말이네 장작더미 같은디......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차행의 아버지가 말했다. '너그 형제도 집에 없었잖여? 친구 집에서 만화책 읽고 있었다메?' '네' 할아버지의 물음에 두 형제는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순진한 눈빛이로 답했다. '참 희한한 일이네 ....희한한 노릇이여.....' 차행의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이 삶아다 준 감자 두 개를 들어서 차행과 차행의 형에게 건네주며 '느그들도 애썼다'라고 애잔한 목소리 말했다. 형제가 감자를 한 입 베어물고 우물거리자 차행의 어머니는 '목마치것다. 김치랑 같이 묵어라' 말하며 습관대로 우물로 물을 긷기 위해 걸어갔다. 형제의 어머니는 자꾸 발에 걸리는 오토바이의 부속을 발로 차며 '이것이 당최 뭐이여!' 말하며 두 형제를 바라보았고 형제는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히고 김치 줄기를 입에 넣으며 어머니의 말을 애써 못 들은 척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차행의 할아버지는 '아이고 내새끼들'이라고 말하며 흐뭇하게 바라보았고 그들의 아버지도 덩달아 웃었다. 참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저녘 식사 풍경이었다.


사실 이 이렇게 이야기를 길게 쓸 계획은 아니었다.

그저 1928년에 지어진 유하당에 관한 둘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반자를 제거하니 사랑방 천장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예전에 그가 경험한 이야기를 잠시 빌려오려 한 것 뿐이었는데.... 단편 소설이 되고 말았다. 여하튼 그의 친구 차행의 집에 불이 난 것처럼 1982년에 지어진 이 근대 한옥 유하당에도 한번쯤 불이 난 적이 있었던 듯했다. 지금이라면 샌딩을 하고 오일스테인을 먹여 보수를 했겠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 반자를 설치해 가려 놓은 정도로 보수가 이루어져 있었다. 

오늘 이미 많은 글을 썼고 독자 분들도 이미 많은 분량의 글을 읽었음으로 오늘은 이 정도에서 글을 마무리 해야 할 것 같다. 유하당의 본격적인 해체와 이축 준비는 다음 편으로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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