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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Sep 17.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26

근대 한옥 1928 (유하당)-5

마루를 해체하고.

유하당 해체는 우물마루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목부재의 맞춤과 이음으로 건축물을 지었던 중국과 일본에서는 유례가 없으므로 우물마루는 한국만의 특징적인 마루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강점기 이전 우리나라에는 우물마루가 대부분이었고 강점기 이후에 장마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유하당은 1928년에 건축된 근대 한옥이어서인지 대청에는 장마루가 설치되어 있었고 전툇칸에는 우물마루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물마루를 깔기 위해서는 앞 기둥과 뒤 기둥 사이에 세로로 긴 장선을 건너지르는데 이를 장귀틀[長耳機]이라 한다. 장귀틀 사이에 다시 일정한 간격으로 장선을 건너지르는데 이를 동귀틀(童耳機)이라고 한다. 길이보다 방향을 중심으로 명명된다. 동귀틀 측면에 길게 홈이 파고 여기에 청판(마루판)을 끼워 마감한다. 예전에는 기계가 없어 홈을 파거나 판자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판자를 만드는 목수 집단이 따로 분류되었을 정도다. 마루청판은 목재의 윗면만 대패로 다듬고 아랫면은 나느 껍질이 붙은 체로, 혹은 간단한 자귀질만으로 다듬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작의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이것이 더 두껍기에 튼튼하다. 그래서 아랫면이 다듬어지지 않았거나 자귀 자국이 남아 있는 마루청판은 오래된 마루다. 요즘에는 이 수제 마루청판을 이용해서 탁자나 의자를 만드는데 고가로 판매된다고 한다. 우리같은 서민은.....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오래 비어 있는 한옥 치고 마루청판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더러는 마루 청판을 얻기 위해 집을 해체하는 경우도 있고, 이축하기 위해 모아놓은 집 부재에서 청판만 판매해 달라는 사람들도 꽤 있다. 옛 어른들의 손길이 남아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다행이지만 귀한 것을 좀 더 귀하게 다루고 귀한 곳에 사용했으면 좋겠다.

동귀틀에 청판을 걸 때는 완벽한 비율의 직사각형 마루청판은 잘 끼워지지 않기 때문에 미세하게 사다리꼴 모양으로 제작해 청판을 밀어 넣어서 맞춘다. 따라서 마루청판은 모두 자기만의 고유 위치와 모양을 갖기 때문에 우물마루를 분리할 때는 번호를 적어 놓아야 한다. 번호를 적어 놓지 않아도 위치는 찾을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기준을 가지고 장귀틀과 동귀틀을 구분하고 마루 청판에 번호와 방향을 기입해 놓아야 한다. 마루를 분리하기 위한 첫 작업으로 청판을 뺄 때는 마지막에 넣은 막장부터 빼면 된다. 막장은 대체로 위에서 덮고 아래에서 마감하기 때문에 마루 아래로 들어가서 막장을 고정하고 있는 나무를 제거하면 쉽게 뺄 수 있다. 해체 과정에서 마루가 손상될 것을 염려한 탓인지 조 목수는 오랜 시간을 들여 마루를 분리했으나 번호를 기록하지 않았다.

  


반자를 온전히 제거하고

한옥에서의 천장은 크게 연등천장, 귀접이천장, 반자틀 천장으로 나누어진다. 연등천장은 움집, 귀틀집, 토담집, 오두막이나 이동식 여막 등의 천장 형태로 별도로 반자를 만들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 만든 천장이다. 한옥을 수리할 경우 서까래 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반자를 제거하고 연등천장으로 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장점은 아름다운 것이고 단점은 추운 것이다. 다만 추운 것도 때론 장점이 될 수 있다.

개평마을 한옥의 연등천장

반자 천장은 자재에 따라 종이 반자, 고미 반자, 우물 반자로 나뉜다, 종이 반자는 종이를 발라 도배한 것이다. 보통 구들방에 설치되는데, 아늑하고 부드러우며, 취향에 따라 벽지를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공간의 변화와 분위기 쇄신에 적합하다. 고미 반자는 진안 정천면에 있는 서이당이란 곳의 방과 마루에 설치된 것으로 주로 삼림이 우거진 지역에서 방 천장에 설치했다. 고미반자는 고미받이와 고미서까래로 반자틀을 짜 만들거나, 다락 장선 위에 외를 엮고 흙질을 한 반자이다. 선비집에서는 여기에 태극도나 성수도, 역경을 풀이한 도식을 그렸 넣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옥의 도식에 관련된 글을 쓰고 싶다.)

좌측은 서이당 안방 천장이고 우측은 국립민속막물관으로 이축된 오촌댁 안방 천장이다.
서이당 마루 천장

우물 반자는 천장 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것으로서, 궁전이나 법당 등 최고급 건물에 설치되었으며, 아름답게 단청을 하기도 했다. 이 우물 반자를 천정 또는 조정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천장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경복궁의 우물반자

유하당 대청의 천장은 처음에는 연등천장 같았으나 후대에 반자틀을 설치하고 종이를 바른 지반자였다. 지반자로 만들어진 천장은 제거는 어렵지 않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벽지를 제거하고 못을 꼼꼼히 제거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지붕을 해체하고.

바닥, 벽, 지붕이라는 집의 삼 요소 중에 지붕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주춧돌, 기둥, 도리, 보, 등은 궁극적으로 서까래를 비롯한 지붕을 떠받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방이나 마루와 같은 실내 공간도 크게 보면 지붕에 의해 마련된 공간을 나눈 것으로 볼 수 있다. 민도리, 굴도리, 수로수장, 익공, 주심포, 다포 등 지붕을 떠받치는 방식에 의해 한옥의 명칭과 구조가 결정되기도 한다. 부연을 달고, 주심포, 다포 등 포를 설치하고, 하앙식 등 지붕을 떠받치는 다양한 방식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온 것이 한옥 건축의 발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유일 하앙식 구조(완주 화암사 극락전)

그래서인지 지붕의 구조와 모양은 목수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하다. 도편수들은 다른 부재의 치목은 아래 목수에게 맡겨도 지붕의 곡과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추녀의 치목은 늘 자신이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전의 지붕 재료는 볏짚이나 너와, 돌기와, 굴피, 토기와 등을 사용했다. 이후 1960~70년대 지붕을 개량 사업을 하면서 슬레이트와 함석을 이용해 지붕을 교체한다. 이청준의 소설 ‘눈길’에서 지붕 개량 사업의 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동네가 너도 나도 집들을 고쳐 짓느라 밤잠을 안 자고 저 야단들이구나” 농어촌 지붕 개량 사업이라는 것이었다. 통일벼가 보급된 후로는 집집마다 그 초가지붕 개초가 어렵게 되었단다. 초봄부터 시작된 지붕 개량 사업은 그래저래 제격이었다. 지붕을 개량하면 정부 보조금 5만 원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모심기가 시작되기 전 봄철 한때 하고 모심기가 끝난 초여름께부터 지금까지 마을 집들 거의가 일을 끝냈단다.’ 1970년의 흔한 풍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건축 재료의 발달로 초가지붕은 함석으로 함석은 다시 강판이나 징크 계열로, 너와나 돌기와는 아스팔트 싱글로, 기와는 스페니쉬 기와나 플라스틱 기와, 시멘트 기와 등으로 대체된다. 그렇게 대체된 지붕 덕에 지금은 초가집과 너와, 돌기와 등의 재료로 만들어진 지붕을 보기 힘들다. 앞 글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유하당 또한 처음에는 초가지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지붕 개량을 하면서 물매를 잡기 위해 덧지붕을 설치하고 그 위헤 시멘트 기와를 올린 듯했다. 시멘트 기와는 재활용의 가치가 없어 버리기로 했다.


목수의 개성-맞춤과 이음

우리나라의 전통 목조건축물은 크고 작은 목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목부재들은 다양한 맞춤과 이음의 결구 방법으로 짜여 있다. 목조건축물의 결구는 수평재, 수직재가 서로 짜맞춤을 하고 있다. 따라서 목부재의 맞춤과 이음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목조건축물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맞춤은 기본적으로 서로 직교한 부재의 짜임새를 말하고 이음은 서로 같은 방향의 부재의 짜임새를 말한다. 즉 맞춤은 둘 이상의 부재가 직각 또는 예각으로 만날 때, 접한 면의 결합 방법을 말하고, 이음은 두 개 이상의 단일 부재가 같은 일이 방향으로 짜 맞추는 방법 또는 그 자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목조건축물은 수평 구조재와 수직 구조재가 건물을 지탱하는데 이들 수평, 수직 단일 부재는 맞춤과 이음 방식으로 짜였다. (한국 전통 목조건축의 결구법 맞춤과 이음 -정연상. 고려 p40~48 요약) 유하당 또한 다양한 맞춤과 이음 방법을 통해 목부재가 짜여 있었다. 이런 맞춤과 이음 방법은 집을 짓는 과정이나 해체하는 과정이 아니면 잘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보강재-산지 제거

맞춤과 이음으로 결구된 부재의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한 보강재로는 쐐기와 촉, 산지가 주로 사용되었고 그 외의 보강재로써 철물이 있다. 쐐기는 작은 나무토막과 같은 것으로 맞춤과 이음부에 끼워 부재간 마찰력을 증대시켜 결속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쐐기를 이용한 결구 방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결속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로 압축력이 작용하는 곳에 사용한다. 은 수직 부재인 기둥과 대공 등을 수평 부재에 고정할 경우, 단일부재로서 주두, 소로, 살미 등을 수평 부재에 고정할 경우에 사용한다. 

기둥 바로 위에 크게 네모난 것이 주두이고 좌상의 그와 비슷한 모양의 세 개의 작은 네모난 것이 소로이다(국보였던 장수 향교)

산지는 수직 부재와 수평 부재의 맞춤부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보강재이다. 산지는 두 부재의 접합부를 엇댄 후 지각으로 산지 구명을 뚫어 산지를 박는다. 산지는 건조가 잘 된 나무로써 섬유 성질이 질긴 것을 사용한다. 산지를 이용한 맞춤은 현재 실림집뿐만 아니라 규모가 큰 중층 건물의 수평 구조재 보와 수직 구조재 기둥의 맞춤부 보강재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산지가 보강재로써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산지 구멍을 정확히 뚫어야 한다고 전통 장인과 기술자들은 강조한다.(한국 전통 목조건축의 결구법 맞춤과 이음 -정연상. 고려 p52~59 요약) 유하당의 경우 보강재로써 가죽나무(참죽나무)로 산지를 만들어 사용했다. 산지가 사용되어서인지 100년 가까이 된 나무들의 결속력이 약해지지 않았다. 부재들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이 산지를 먼저 제거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벽체 제거

서까래를 제거한 후에 일용직 일꾼들은 벽체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부재들을 해체하면서 벽체를 동시에 해체할 수도 있으나 이번 해체는 인력이 아닌 크레인을 이용하기 때문에 벽과 인방재를 미리 해체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유하당은 몇몇 민가와는 다르게 두껍게 회벽 미장이 되어 있었다. 

회벽 미장은 ‘임원경제지’ ‘섬용지’에서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석회를 사용한 분장법에 ‘책을 파는 서점에서 자르고 남은 면지, 오지의 조각을 약간 가져와 물에 불려서 완전히 녹인 다음 석회 안에 섞는다. 찹쌀로 된죽을 끓여 석회 안에 찧어 넣는다. 이 잘게 썬 종이를 지근이라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회반죽을 미장 재료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회반죽을 바를 때는 재벽이 완전히 건조한 것보다 건조가 조금 덜 된 상태에서 미장하는 하는 것이 유리하다. 재벽과 회벽 미장의 접착력과 작업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재벽에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미장을 하면 재벽에서 얼룩이 배어 나와 회벽 미장을 오염시킬 수 있고 회벽에 잔 균열이 생길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회벽 미장에 사용하는 여물은 잘게 썰어서 잘 풀어지게 해야 하며, 잘게 썰어지지 않은 섬유질 여물은 여러 개의 가는 회초리로 두들겨 엉긴 것을 풀어서 섞어야 한다. 회초리로 여물을 두들겨 펴는 것을 현장에서는 ‘수사를 턴다’라고 한다. 기존 현장에서는 회벽 미장을 ‘시꾸이’ 라고 하며, 시꾸이 작업 경험이 있느냐를 놓고 장인들의 기능도를 측정하기도 한다. -김진욱, (한국의 전통미장기술 성안당, 2017, 104쪽) 꽤 어렵게 만들어진 회벽을 해머로 내리치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고 한다. 100년된 집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해주었다.  

퇴근 후에 찾아간 현장에서 그와 조 목수, 고 사장은 몇 가지 상의를 했다. 고 사장은 본채 우측의 정미소는 일정상 해체할 시간이 없으니 그냥 놓고 가자고 의견을 냈다. 놓고 가면 어떻게 되냐는 그의 질문에 포클레인으로 눌러서 버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그가 마주한 적이 없다면 모르지만 이렇게 마주 보고 있고, 창고이긴 하지만 100년의 세월을 버틴 집을 포클레인으로 누를 수는 없다고 답했다. 고 사장은 그렇다면 두세 명의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더 아깝다고 답했다. 조 목수도 이런 집은 의미가 없으니 놓고 가자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수리용 부재가 될 수도 있으니,  일꾼을 더 섭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면 정미소를 해체해서 가져가는 것으로 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나는 그의 고집을 알고 있다. 다만 그 고집이 때론 일을 이루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을 고단하게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하튼 정미소도 해체해서 가져가기로 했다. 그렇게 마루와 천장 반자와 지붕과 서까래의 해체가 이루어지고 벽을 허물 준비를 했다.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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