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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Sep 20.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27

근대 한옥 1928 (유하당)-마지막

이장님께 조언을 듣다.

다음날 날이 밝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한옥 해체하기 좋은 날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에 모여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일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마을 이장님이 오셨다. 그는 벽체를 해체하면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날 미리 마을 이장님께 인사를 드렸다. 봉투에 돈을 넣어 동네 분들 막걸리라도 한 잔 드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그래서인지 이른 아침 이장님은 음료수를 사들고 오셨다.

 

이장님은 도대체 이런 나무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 물었다. 그는 이 오래된 목재에 다시 대패질을 하거나 샌딩을 하고 기름을 먹여 다시 앉힐 생각이라 답했다. 이장님은 나무가 크고 요즘은 구하기 어려운 나무인데다가 색이 좋아 다시 앉히면 예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앉혀서 무엇을 할 생각이냐 물었다. 그는 지금 계획 중이지만 지금 구해 놓은 1800년대 한옥 몇 채와 함께 이 한옥을 앉혀서 식당, 카페, 숙박 등을 동시에 해결하는  MICE(회의(Meeting)·포상관광(Incentives)·컨벤션Convention)·전시회(Exhibition))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이장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아이들을 위한 교육 문화 활동이나 박물관 등을 계획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더해 주셨다. 그리고는 군산과 안동, 일본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문득 이장님께서 평생 농사만 지은 분은 아닌 것 같아 물었다. 이장님은 교장으로 은퇴한 지가 얼마 안 되었다는 답을 해주셨다. 그럴 법했다. 그리고 그에게 돈이 많이 들 텐데 어떻게 자본을 마련할 것이냐 물었다. 그는 여기에서 막문이 막혔다. 그가 머뭇거리니 혼자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니 지자체장들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지자체장들 중에서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보고 그래도 일이 추진이 되지 않으면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 정도 열정과 아이템이면 반드시 한 번은 때가 오는 법이니 그때까지 잘 견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울컥했다. 잠시 말을 멈춘 이장님이 아쉬운듯한 어조로 우리 집은 이 집보다 더 좋은 집이었는데 몇 년 전에 동생이 헐고 새집을 지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를 미리 만났으면 그 집을 아마 그에게 주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이장님은 유하당과 관련된, 집의 내력과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1. 유하당의 주인은 전주 최 씨 문중이었다.

2. 유하당의 주인은 4형제였는데 이 집은 4 형제 중 둘째의 집이었다.

3. 4형제 중 첫째 형은 나주에서 한약상을 하며 거부가 되었다.

4. 거부였던 첫째 형이 둘째 셋째 넷째의 집을 모두 지어주었고 이 네 형제의 집은 모두 같은 목수가 지었다.

5. 목수는 김제 지역뿐만 아니라 정읍 고창에도 집을 지었고, 전라도에서는 꽤 유명한 목수였다.

6. 그 첫째 형의 집이 아직 이 동네에 남아 있다. 

7. 이장님은 그 첫째 형의 막내 동생, 즉 넷째의 장남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꽤 놀라운 이야기였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장님은 그에게 시간이 괜찮으면 그 첫째 형의 집, 즉 이장님의 큰아버지 집에 다녀오자고 권하셨다. 그는 흔쾌히, 아니 오히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이장님 차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마을에 있었던 첫째 형의 한옥을 보게 된다. 유하당과 아주 비슷하게 지어졌고 소로를 수장으로 넣은 집이었다. 이 집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음으로 이쯤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여하튼 그는 그렇게 이장님과 유하당과 형제인 집을 보게 된다. 유하당이 중년의 남자라면 그 집은 중년의 여인과 같은 느낌의 집이었다.


일을 시작하다. 

그의 사촌 동생 한과 조 목수는 목재에 넘버링을 하고 작은 부재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와 일용직 한 명은 벽체를 제거했다. 일용직 세 명과 고 사장은 정미소를 해체하기로 했다. 그가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정미소 지붕에 올라가려 했으나 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 덕에 그는 하루 종일 해머질을 하며 정미소를 가져가기로 한 결정을 몸으로 책임졌다. 결정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정미소는 처음에는 나락을 저장하는 창고였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시골 정미소는 통상 지붕에 흙을 올리지 않는다. 나무로 집을 짓고 함석 등을 이용해 비가림0을 하고 그 안에 정미 기계를 놓을 뿐인데 지붕에 상당한 양의 보토가 쌓여 있었다. 도리 아래 상단은 모두 살창을 설치해 환풍에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다만 나락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곳은 아닌 듯했다. 저 정도의 살창이면 나락을 노리는 쥐가 쉽게 드나들 것 같았다. 가을에 나락을 수확해 정미를 하기 전까지 잠시 보관하는 창고 정도로 보였다. 간단하게 지은 창고여서 해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벽을 해체하다.

그와 일용직 일꾼은 벽을 해체했다.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목재 해체와 동시에 벽을 해체하면 되지만 유하당의 해체는 크레인을 사용하기로 했다. 상부에 올려져 있는 들보가 크고 숫자가 많았다. 인력을 이용해서 해체하는 비용과 크레인을 사용하는 비용에 큰 차이가 없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크레인을 사용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다만 벽체를 해체하고 인방재를 미리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공정이 길어지고 인건비가 많이 소모되는 단점은 있었다. 그러나 100년 된 14개의 크고 휘어진 대들보를 이용해서 지은 한옥을 온전히 해체하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넘버링에서 유의할 점.

벽체의 해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조 목수는 넘버링을 하기 시작했다. 좌측 전면 첫 기둥이 가, 그 뒤에 서있는 둘째 기둥이 가-1, 셋째 기둥이 가-2, 마지막 넷째 기둥에 가-3이라 기록했다. 좌측 전면 둘째 기둥부터 순서대로 나, 다, 라, 마, 바, 사까지 기록했다. 그렇게 28 개의 기둥에 번호를 썼다. 이때 특기할 점은 넘버링의 기록 위치가 모두 전면을 향한다는 것이다. 즉 넘버링이 쓰여있는 곳이 남향인 것이다.


그런데 넘버링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 두 가지가 이루어진다. 첫째는 사용한 매직이 빨간색이었는데 이 빨간색 유성 매직은 시간이 지나면 지워진다. 빨간색 유성 매직은 바람과 햇빛에 노출되면 차츰 연해지면서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지워진다. 한옥을 해체해서 바로 이축을 하면 모르지만 장시간 보관할 경우에는 빨간색 매직은 좋지 않다. 그리고 매직으로 넘버링을 하면 샌딩을 해야 하는데 고재에 샌딩만이 정답은 아니다. 이 유하당은 지금도 창고가 아닌 곳에서 보관 중인데 며칠 후에 이를 창고로 이동시킬 예정이다. 그때 부재의 위치를 다시 한번 점검해서 넘버링을 다시 할 계획이다.

둘째는 넘버링을 한 후에 조 목수가 평면도와 입면도 등을 그려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을 통솔해야 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평면도조차 그려 놓지 않았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처럼 보였다. 다만 그에게 집의 구조 등을 설명하면서 메모한 쪽지가 있었다. 그것을 그가 사진으로 찍어두어 그나마 집의 간략한 구조를 알 수 있었다.

위의 메모를 대략 자세하게 그리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는 이 평면도만으로 이축을 하거나 설계 및 인허가 과정에서 조금 복잡함을 유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 그러나 조 목수를 비롯해서 여러 도편수님들에게 문의하니 도면과 넘버링이 없어도 이축을 비롯해 설계 및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문제가 없는 것과 복잡한 것은 조금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는 염려를 놓지 못했다.


수장재를 분리하다.

수장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 말이다. 수장이란 '꾸미고 치장하다'는 뜻이다. 일반 건축에서 수장공사라고 하면 '내부 인테리어 공사' 정도를 말한다. 하지만 한옥에서는 구조체를 이루는 거의 모든 부재가 외부에 노출된다. 그런 만큼 기둥이나 보도 꾸미고 치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옥에서는 대부분의 부재가 수장재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한국건축사전. 장기인. 보성각. 1993'에서는 수장재의 두 가지 뜻을 밝히고 있다. 하나는 '건축물의 내외부에 노출되어 미려하게 꾸미는 재료의 총칭'이고, 다른 하나는 '목구조체에서 체목 이외의 치장이 되는 목재의 총칭'이다. 즉 수장재에는 체목이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서 체목이란 구조체를 이루는 부재를 말한다. 한옥을 짓는 사람들은 주선, 문설주, 상방, 중방, 하방, 머름 등을 수장재라고 부른다. (한옥 짓는 법. 김종남. 돌베개. 2011. p301)

조 목수와 사촌 동생 한은 먼저 머름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머름은 바람을 막거나 모양을 내기 위하여 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을 말한다. 기둥이나 문선 사이에 설치해 사생활을 보호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더하기 위해서 만들기도 한다. 머름을 제거한 후에는 인방재를 제거하고 하루 일을 마감했다.


마지막 날-구조제(체목) 해채

전날 인방재는 모두 제거되어 있었다. 크레인이 도착하고 모두들 자리를 자리를 잡았다. 조 목수와 한은 본체에서 해체 준비를 마쳤고, 고 사장과 그의 부사수는 정미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와 일용직 한 명은 크레인이 내려놓는 부재를 받기 위해 대기했다.  

드디어 목재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상부의 상량 도리를 내리고 추녀를 내린 후에 들보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목재를 분리해 쌓았고 이후 5톤 차 2대에 목재를 싣고 창고로 이동했다.(이후 사진이 없어서 더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하겠다.) 창고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이 유하당은 창고에 넣지 못한다. 많은 설명을 해야 하고, 꼭 해야 할 설명은 아니어서 이 이유는 생략한다. 다음 날 건축업자들이 터 정리를 할 때 그는 한의 차를 빌려와 주춧돌을 가져왔다. 그렇게 새만금 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위험에 있었던 1928년에 지어진 근대 한옥 '유하당'의 해체 및 이동, 보관을 마쳤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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