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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Sep 25. 2019

어머니가 살았던 집은.

'질마재'의 내 생가(生家) -서정주

'질마재'의 내 생가(生家)

                                                      서정주

내가 생겨나서 자라던

'질마재' 마을의 내 생가가

병들고 다 삭아서 무너지게 됐으니

올해에는 기어코 이걸 새로 지어 세우리라.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모다 들일을 나가시면

나 혼자 마루에서 그 빈집을 지켰으니,

뒷산 뻐꾹새 울음소리에

숨을 맞추아 쉬다가는

그대로 흐렁흐렁 잠이들던 그 마루

그 마루를 그대로 남겨서

올해에는 기어코 다시 일어세우리라.

뿔뿔이 외국에 나가 흩어져사는 내 자손들

그들이 돌아오면

내가 듣던 그 뻐꾹새 소리를

이 마루에 앉어

한땟식 듣고 있게 하리라.


서정주 시를 빌어

범람을 막는 둑이 생기기 전에 우리 집은 퍽 운치있는 집이었을 것이다. 남향집에 동쪽엔 헛간채가 있었고, 남서쪽엔 ㄱ 자 모양의 외양간과 측간이 있었고, 3 칸의 본채 그 뒤에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 옆에는 작은 텃밭도 있어서 여름에는 남새밭이 되었고 겨울에는 움을 묻어 남새를 저장했다. 대문을 열고 나가면 깊은 계곡에서 흘러와 처음 사람을 만나는 물이 잠시 멈추었다 하류로 흘러갔다. 그곳에서 마을 어머니들은 빨래를 하며 간지러운 소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집 앞에 범람을 막는 둑이 생겼고 집터는 움푹한 곳이 되어버렸다.


어머니의 왼쪽 다리의 상처가 덧나지 않았다면 우리 집은 여전히 소담스러운 집이었을 것이다. 둑길로 왕래하는 사람의 시선을 가리기 위해 어머니는 겨울이 되면 '굴피담'을 정리하셨다. 참나무의 껍질을 벗겨 울타리를 만들고 그 곁에 인동과 나팔꽃을 심어 가꾸셨다.

꽃만큼 정성스럽게 가축도 기르셨다. 19년을 일하다 생을 마친, 한 해에 논 서마지기 값을 한다는 어머니의 고향집에서 받아 키운 어미소를 위해 늙은 호박을 키웠고, 그 어미소의 송아지들은 늘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외양간 옆에는 판자를 얼기설기 이어붙여 막을 짓고 토끼를 키웠다. 소꼴을 벨 때마다 따로 토끼의 먹이를 마련했지만 농번기에는 베어온 소꼴에서 특별한 풀을 골라 먹이로 주었다. 멍멍이는 이곳저곳이 집이어서 새끼를 보면 헛간에 깔아준 멍석이 집이었고, 추우면 부엌에, 더우면 마루 밑에 자리를 잡았다. 밥을 줄 때면 어머니는 처음에는 혀를 굴려 소리를 냈고 그래도 나타나지 않으면 나를 부르듯 '도꾸야 도꾸야' 멍멍이를 불렀다. 그러면 멍멍이는 혀를 길게 내밀고 '씩' 웃으며 어디선가 나타났다. 멍멍이가 새끼를 낳으면 아버지는 옹망졸망한 새끼들을 지게에 싣고 장터에 나가 팔았고 나는 며칠을 울며불며 새끼들을 찾아오라고 보채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말없이 웃기만 했다. 마당은 암탉과 그 새끼들의 터전이었는데 쌓여 있는 두엄으로 인해 먹을 것이 많아 마당은 성한 날이 없었다. 가을걷이를 앞두면 아버지는 흙으로 움푹한 곳을 메우는 '마당들이기'를 하셨다. 닭들은 늘 외양간 지붕 아래에 알을 낳았는데 아침마다 닭알을 꺼내 오는 것은 오랫동안 막내형의 몫이었고 잠시 내 몫이었다. 측간 옆에는 돼지우리가 있었다. 돼지우리와 구분되어 측간에 앉아 있어도 돼지가 두렵지 않았으나 시선은 늘 부담스러웠다.

어머니께서는 키우는 가축을 죽여 양식으로 삼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가축은 그저 키우는 것이었을 뿐. 그 숨과 몸을 거두어 먹이로 삼지 않으셨다. 세월이 다해 이별할 때가 오면 팔거나 이웃집에 줄 뿐이었다.


돼지가 돼지우리를 탈출하지 않았다면 돼지는 더 오래 우리 가족으로 남았을 것이다. 내가 탁아소를 다녔던 6,7세의 나이였을 것이다. 서정주의 시인의 시처럼  '어른들이 모다 들일을 나가시면 나 혼자 마루에서 그 빈집을 지켰으니, 뒷산 뻐꾹새 울음소리에 숨을 맞추아 쉬다가는 그대로 흐렁흐렁 잠이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기척에 놀라 낮잠을 깨니 지게 발채만한 돼지 두 마리가 돼지우리를 탈출하여 마당을 누비고 있었다. 닭들도 강아지들도 어딘가로 피해 숨죽여 돼지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돼지들이 마루를 뛰어올라 나를 물어버릴 것만 같았다. 좀 더 나이를 먹었더라면 짧은 다리를 가진 돼지가 마루를 뛰어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나이가 부족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문고리에 매달려 울며불며 엄마를 찾았다. 어둑해질 무렵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때까지 나는 문고리에 매달려 있었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얼굴로 달려 나가 엄마에게 안겼다. 아마도 마른 걸레질만으로 윤을 낸 먹오딧빛 어머니의 마루에서였을 것이다. 마루에서 토닥토닥, 쓰담쓰담 어머니는 내 등을 어루만져주었고 나는 문득 깊은 잠에 들었을지 모른다. 다음 날 돼지는 팔리고 말았다. 감히...... 아니, 미안해...... 그렇게 어머니는 돼지를 팔았고 그 이후 우리 집은 돼지를 기르지 않았다.


우리 식구들은 이제 이승과 저승으로 흩어졌지만 언젠가 다시 때가 되어 만나면 그때는 범람을 막는 둑도 사라지고, 덧난 상처도 낫았을 테지. 우리가 생겨나서 자라던 '버더' 아랫마을의 어머니가 살던 집 그 마루, 그대로 묵은 윤이 나고 있겠지. 어머니는 그 마루에 앉아 당신의 가축을 둘러보며 소쩍새 소리 맞춰 내 등을 천천히 토닥여 주시겠지. 밥 짓는 연기 서서히 걷힐 무렵이겠지. 아마도 봄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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