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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Sep 26.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28

신병 신돌삼(1/3)

삼 칸 한옥 1879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가 군대에서 만난 '신병 신돌삼'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삼 칸 한옥 1879와 신병 신돌삼의 부모님 집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신병 신돌삼'과 관련된 사건 중에 '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므로......


신병 신돌삼(1/3) 


7사단 8 연대 3대대는 6개월 간의 일반전초(GOP, General Outpost-휴전선을 경계하는 부대) 근무를 마치고 전투지역전단(FEBA)으로 퇴각했다. 전방 GOP 근무는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모기와 담배, 추위 때문이었다. 전투화를 뚫을 수 있는 전투력을 가진 전방 모기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았다. 모기 중에 대숲 모기가 강하다는데 전방 모기는 군인을 피를 빨아 그런지 더 강하다. 물려본 사람만이 그 매력, 위력, 전력을 알 수 있다. 모기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추위가 찾아왔다. 내복, 그 위에 다시 내복, 오렌지색 체육복, 깔깔이, 전투복×2, 야상(깔깔이가 부착된), 스키복을 순서대로 껴입어도, 내리막에서 굴리면 천리를 굴러갈 정도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져도 뼈하나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옷을 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담배가 문제였다. 전방이라 부식의 보급은 나았으나(후방은  양배추 김치가 나왔다는데 그의 부대에는 배추김치가 보급되었으므로) 담배 보급이 시원치 않았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 길이 조금만이라도 험해지면 '사제 담배'라 부르는 민간 담배를 파는 '황금마차'도 오지 않았다. 담배가 없는 군생활이란 수프 없이 끓인 라면과 같았다. 군생활도 길었으나 일반전초 생활은 담배가 부족해 더 길었다. 

그는 일반전초(GOP) 근무를 마치고 전방전투지역전단(FEBA)으로 이동했으니  GOP 근무의 삼 대 악(모기, 추위, 담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다며 안도했다. 더욱이 이제 병장을 달았고 분대장을 맡았으니 고참들의 갈굼도 없겠다, 남은 군생활을 편히 즐기리라 다짐했다. 이제 곧 필 두릅을 따 먹고, 더덕을 캐먹으며, PX에서 냉동 닭다리를 녹여 먹으며 룰루랄라 시간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FEBA 생활은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피로하게 했다. 

소대 단위의 GOP 생활은 부대의 사기와 전투력을 사라지게 했다. 훈련을 하지 않고 근무만 열중하는 전방 생활이라 소대의 내부 군기만 조금 남았을 뿐 중대 단위, 대대 단위의 군기와 전투력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아침 구보조차 없었던 생활이라 체력도 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당나라 군대였으며, 오합지졸이었다. 삼군 사관학교 출신에 진급에 눈이 먼 대대장이 이를 두고 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대대장은 미치년 쥐 잡듯 대대원을 잡도리 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단 세 가지, 제식 훈련과 구보, FTX(불시 실전형 현장훈련) 훈련이었다.  아마도 GOP 근무를 마치고 전방전투지역전단(FEBA)으로 이동한 부대의 군기와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 매뉴얼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사병 내무반의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보는 사단장이 그 매뉴얼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중대 단위 제식 훈련이 연병장에서 이루어졌다. 4개 중대의 동시 제식 훈련은 장관이었다. 가끔 다른 중대와 동선이 겹치면 두 중대장은 오와 열의 흩트러짐 없이 두 부대를 홍해 가르듯 나누었다. 두 부대의 오와 열이 섞여도 사병들은 다른 부대원의 사이를 통과해 선을 유지했다. 마치 걸그룹 '소녀시대'의 안무 연습 같았다. 훈련 시간만이 아니었다. 훈련이 끝난 여가 시간에 1m만 이동을 해도 오와 열을 맞춰 걸어야 했다. 걸을 때 종아리와 허벅지는 직각, 멈추면 '제자리에 서'를 힘껏 외치며 전투화의 뒷굽을 힘차게 부딪쳐야 했다. 마치 북한군의 전승기념일 사열을 보는 것 같았다. 북한군을 무찌르자 하면서 왜 북한군을 따라 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왕복 10km의 구보는 아침저녁, 두 번 이루어졌다. 구보는 아침에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용기 있는 한 사병의 질문에 대대장은 '구보하고 먹는 짬밥이 얼마나 단지 아직도 모르나!'라는 한 문장으로 답했다. 아침저녁으로 10km를 구보를 하면서 한 가지 얻는 것이 있었다면 유턴 지역인 5km 지점에 몇 채의 민가가 있었고 그 민가에 사는 여고생을 어쩌다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큰 위안거리였다. 

무엇보다 큰 고통거리는 매일 한 번씩 실시되는 FTX(불시 실전형 현장훈련)였다. 매일 새벽 '비상 비상 적 생화학 포탄 낙하. 모두 방독면을 쓰고 완전 군장 후 방어 거점으로 이동' 소리가 나면 방독면을 쓴 채 더블백과 군장을 싸고 부대 내 유효 군사 정보를 제거하고 탄약을 지급받아 방어 진지로 이동해야 했다. 위병소를 막 통과하면 훈련 상황은 종료가 되었다. 대대장이 퇴근을 하지 않고 부대에서 자는 날은 새벽 3시, 대대장이 없는 날은 기상 전 30분에 항상 같은 훈련이 반복되었다. 문제는 대대장이 부대에서 자는 날이었다. 이 날의  FTX 훈련은 침묵과 고요함을 유지한 채 진행해야 했다. 지금 전쟁이 나서 적 생화학 포탄이 낙하되고 있는 상황에 독서실도 아니고 도서관은 더더욱 아닌 곳에서 침묵과 고요를 유지한 채 훈련을 하는 것이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청이 집 떠나면서 심봉사 옷 개키듯 군장과 더블백을 싸고, 심청이 변학도 수청 거부하며 옷고름 단속하듯 부대를 정리하고, 흥부 마누라 마당에 떨어진 보리쌀 줍듯 탄약을 주워담아, 홍길동 야밤에 지붕 뛰어넘듯 살금살금 방어 진지로 이동하는 이 상황이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대대장이 자고 있는 간부 숙소를 지날 때 '씨부럴 씨부럴 씨이~부우러얼~'을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으나 부하된 도리로서 그냥 꾹 참았다. 

FEBA에서 이루고자 했던 그의 꿈은 일장춘몽이 되어 사라졌지만 그래도 전방보다는 나았다. 밤새 모기에 물릴 일이 없었고, 추위를 막아줄 따뜻한 막사가 있었으며, 담배가 떨어지면 px에 들려 사제 '88' 을 사서 피울 수 있었으므로, 부대원들의 제식 동작은 점점 완벽해져 갔고, 아침저녁 구보는 체력을 길러주는 것이라 마음을 바꿔 먹었으며 무엇보다 여고생을 볼 수 있었으므로, FTX 훈련은 매일 있는 일이니 더블백과 군장은 싸 놓으면 되고, 군복이야 입고 자면 되고, 잠이야 때를 봐서 숨어 자면 되는 것임으로 그는 괜찮았다. 물론 신병 '신돌삼'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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