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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리스트 Oct 02. 2019

옛집(한옥)을 좋아한 그에 대한 기록-30

신병 신돌삼(3/3)

삼 칸 한옥 1879와 신병 신돌삼의 부모님 집이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신병 신돌삼'과 관련된 사건 중에 '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므로. '신병 신돌삼'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 편입니다.


신병 신돌삼(3/3)


사병들에게 GOP 보수 공사에 투입되는 것으로 인한 긴장감은 없었다. 바뀐 대대장이 문제였다. 대대장은 철책선 보수 공사에 투입되는 것을 마치 대대 전체가 척후 부대가 되어 적진 중앙에 침투하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훈련과 경계 근무 모두 힘들어졌다. 

낮에는 공사에 필요한 장비들을 만들거나 점검하고 GOP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경계 근무 원칙을 숙지하게 했다. 가장 강조했던 것은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에도 반드시 2인 이상이 한 조가 되어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대장은 북한군 침투 부대가 언제 나타나 아군의 목을 따갈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대원들 중에 그 말은 믿는 사람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이병 신돌삼'이었다. 돌삼이는 그런 일이 정말 있었냐고 대대장을 향해 당돌하게 손을 들고 물었다. 대대장은 근엄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런 일은 정말 있었고, 요즘에도 가끔 있는 일이라고 엄숙하게 말했다. 돌삼은 대대장의 대답이 믿기지 않는지 그에게 다시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밤에는 두 명도 위험하고 반드시 세 명이 한 조가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군은 주로 두 명이 침투하는데 이 두 명이 각각 아군의 목을 딸 때 나머지 한 명은 빨리 도망 와서 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돌삼은 칼을 던지면 어떻게 하냐고 다시 물었다. 잠시 고민한 그는 그래서 전방 부대는 아침 구보가 그렇게 힘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돌삼이는 아침 구보 때 자꾸 낙오를 해서 걱정이라는 말을 더했다. 그 말을 들은 돌삼은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천천히 쓰다듬다가 허벅지를 같은 속도로 주물렀다. 그는 그런 돌삼에게 '돌삼이는 목이 두꺼워서 잘릴 때 무척 아플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해주었다.


며칠 후 필요한 장비와 더블백, 군장을 차에 실어 전방으로 보내고 부대원은 단독 군장을 갖추고 GOP로 출발했다. 대대장은 더블백은 몰라도 군장은 매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 말은 들은 주임 원사는 지금 이것은 훈련이나 경계 근무 교대가 아니고 공사 투입이기 때문에..... 부대원들이 막노동을 오래 하려면 체력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짐은 차에 실어 보내자고 주장했다. 사병들은 주임 원사의 말이 마냥 고맙지만은 않았다. 수리봉과 백암산을 거쳐 아리랑 고개를 올라 OP에 도착했다. 멀리 북녘의 산하와 휴전선이 내려다보이는 OP에서 그들은 한 가지의 놀라운 것과 한 가지 평범한 것을 경험했다.

놀라운 걷은 산맥을 따라 단단하게 서있던 철책선이 허공에 둥실 떠있는 모습이었다. 태풍 '도리'에 의해 흙과 돌이 쓸려 나가고,  철책선이 허공에 그물처럼 떠 있었다. 고기를 잡는 그물의 종류로 설명하면 '고정자망' 형태의 철책선이 태풍에 의해 '유자망' 형태도 바뀐 것이다. 그렇게 '유자망'으로 떠 있는 철책선 아래 공백을 채우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단 작전 과장은 철책을 해체한 후 지주를 다시 세우고 판망을 설치하자 건의했으나 사단장은 단 한마디 '채워'로 갈음했다고 한다.

평범했던 한 가지는 대남 방송이었다. 다만 돌삼이에게는 평범하지 않았다. 대남 방송 요원이 돌삼이가 도착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돌삼이가 지친 몸을 OP의 벽에 기대는 순간, 적군의 OP에서 부대를 환영하는 인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환영 인사는 북한강을 건너와 황병동 계곡을 지나 돌삼의 귀에 꽂혔다. '친애하는 8 연대 3대대 장병 여러분 조국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38선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네다. 우리 북조선은 수령 동지의 계시와 인민들의 철저한 대비로 태풍의 피해가 없었습네다. 그러나 남조선은 미군 괴뢰와의 작당에만 몰두한 나머지 아름다운 산하가 붉은 흙빛을 드러내도록 방치하고 말았습네다. 이 아름다운 산하를 보수하기 위해 다시 휴전선으로 돌아온 국방군 여러분을 열렬히 환영합네다.' 그리고는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얼싸안고 좋아~~~'로 시작하는 북한의 명곡 '반갑습니다'가 스피커가 녹아지도록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돌삼은 기댔던 벽에 전기라도 흐르는 듯 깜짝 놀라며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그의 곁으로 와서 눈으로 이 상황을 물었다. 그는 '들었지..... 저들은 다 알고 있어..... 저렇게 환영 인사를 하지만 속으로는 우리의 목을 노리고 있는 거야..... 철책선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다. 돌삼아....' 라고 답했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소대원들은 그의 말에 킥킥대고 웃었지만 돌삼에게는 그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부대는 OP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공병대가 건설 장비로 터를 닦아놓은 곳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각 소대 별로 할당된 T24, 24인용 군용 텐트 설치를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작은 기둥과 큰 기둥을 세우고, 고정 끈을 설치하고 텐트 주변에 말뚝을 박아 고정했다. 연한 흙이라 말뚝은 쉽게 박혔고, 쉽게 뽑힐 듯했다. 행보관은 미리 준비해온 비닐과 위장막으로 텐트를 덮게 하고 비닐 밖깥 쪽에 고랑을 깊게 팔 것을 주문했다. 텐트를 흘러내린 빗물이 내부로 들어오지 않도록 텐트에 바짝 붙여 도랑을 파고 물길을 냈다. 이어서 내부 바닥에 비닐을 깔고 매트리스를 텐트 가장자리에 설치했다. 보편적인 군대 내무반처럼 중앙은 통로였고 취침 시 머리는 중앙 통로와 반대 방향으로 눕혀야 했다. 집이 마련된 것이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FEBA와는 다르게 날씨가 벌써 싸늘했다. 전방의 9월은 후방의 10월 ,도시의 11월과 같았다. 그들은 늦은 저녁을 먹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밤이 되니 대북 방송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다음 날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각 소대장들은 뽑기를 통해서 공사 지역을 선택했으나  소대장의 서열과 공사 지역의 난이도가 반비례했다. 그들은 평지도 아니고 산도 아닌 곳, 능선은 더더욱 아닌 계곡 지역 공사를 담당했다. 계곡 지역은 피해를 가장 많이 당한 곳임에도 포클레인과 차량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능선에 있는 소초에서 부식을 배달받을 때 사용했다는 케이블조차 손상되어 오로지 손과 어깨만으로 흙과 돌과 시멘트를 날라 철책선 하단의 공백을 채워야했다. 더 큰 문제는 그 공백을 채우는 실제 공사는 그들의 몫이 아니라 공병대의 몫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날조, 돌과 자갈과 모래와 시멘트를 옮겨주는 것만이 임무였다. 분대장이었던 그는 이등병과 일병들이 운반해온 재료를 상병들이 섞어 병장들이 쌓을 때 그저 물이나 뿌려주고 훈수나 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병대 덕에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루에 운반해야 할 자재 양이 정해졌다. 일인당 시멘트 1포, 호박돌 4개, 모래 2포, 자갈 4포가 배당되었다. 계급에 예외가 없었다.  하루 동안 정해진 분량의 자재를 나르지 못하면 일이 끝나지 않았다. 군용 트럭으로 도로가 있는 산 중턱쯤에 배달된 자재를 어깨에 짊어지고 계곡 아래로 옮기는 일, 그는 이것을 징용이라고, 아니 시대가 다르므로 징용보다 더한 노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군대에 와서야 비로소 강제 징용에 끌려가 군함도에서 석탄을 캤던, 필리핀 외딴섬에서 활주로를 만들었던 선조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돌을 나르며 을사오적, 반민특위, 위안부....사단장 뭐 이런 단어를 가끔씩 떠올렸다. 그리고는 생각 끝에 항상 '아름다운 새끼들....'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여하튼 그의 말처럼 매일 할당된 재료를 계곡으로 나르는 일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다. 수십 킬로 무게의 재료를 어깨에 짊어지고, 긴 내리막을 걸어 재료를 옮기고 다시 오르막을 올라오는 일은 고된 일이었다. 그는 그 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들어했다. 체력이 원래 약했으므로, 아니 풀린 군번이었었으므로......병장이었음으로...... 분대장이었음으로...... 희망과 기대가 무너졌으므로.... 그런데 그를 구원하는 한 명의 은인이 있었으니 '돌삼'이었다.

 

돌삼은 타고난 날조였다. 선천적으로 만들어지고 후천적으로 가꾸어진 날조였다. 돌삼은 그의 나이 아홉 살 무렵부터 직접 소꼴을 베어 오고 소죽을 끓였으며, 군대 오기 전에 우사에서 직원으로 일을 할 때는 매일 수 십 포대의 사료를 지게로 날랐으며, 그것이 소화되어 나온 소똥을 오로지 삽과 리어카만으로 처리했다는 증언을 나중에 했다. 나아가 그 우사도 그가 직접 만들었는데, 경사진 산을 트럭이 올라오지 못해 철제 골조를 직접 날랐으며 용접도 직접 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돌삼은 그 증언과 진술을 할 때 사료를 짊어지는 모습, 삽질을 하는 모습, 용접을 하는 모습, 용접을 하다가 불똥이 튀어 깜짝 놀라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재현했으므로 모두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말은 행동으로 증명되었다. 돌삼은 날조 세 명의 몫을 충분히 해내었다. 다만 도구가 하나 필요했는데 지게와 지게 작대기였다. 돌삼이 날조 임무를 처음 수행할 때 무척 힘들어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포대에 들어있는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나를 때는 한쪽 어깨만 써야 했고, 호박돌은 들기가 불편했기에 효과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돌삼은 행보관에게 용감하게, 이등병답지 않게 지게 지원을 요청했다. 며칠 후 각 소대 별로 두 개의 지게가 지원되었다. 두 개 중 하나는 돌삼의 몫이었다. 돌삼은 지게를 건네는 행보관에게 당차게 '작대기는요?'라고 물었고 행보관은 '작대기는......자네가.....만들게.'라고  미안하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여하튼 단풍나무 작대기까지 마련한 돌삼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두 배의 짐을 지게에 실은 돌삼은 평지를 걸을 때는 서유기의 손오공과 같았고, 능선을 걸을 때는 수행을 마친 홍길동과 같었으며, 내리막을 걸을 때는 임꺽정의 처남 황천황동이와 같았다는 전설 같은 같은 이야기가 아직도 7사단에 전해 내려올 정도였다. 돌삼은 다른 사람보다 두 배의 짐을 실어 지게를 마련해준 행보관에게 보답을 하고도 한번 더 짐을 날랐는데.... 그 짐은 그의 몫으로 할당된 짐이었다. 체력이 원래 약했으므로, 풀린 군번이었었으므로, 병장이었으므로, 분대장이었으므로, 희망과 기대가 무너졌으므로 유난히 날조의 임무를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돌삼은 그에게 할당된 분량까지 모두 날라 주었다. 과정이야 어떻건 중요한 것은 도착한 물량이었으므로 공병대의 간부도, 지뢰 지대에서 더덕을 찾아다니던 행보관도, 포병 FO(Forward Observer-관측병)들과 노가리를 까던 소대장도, 솔방울로 골프를 연습하던 중대장도, 딸내미의 중간고사를 걱정하던 대대장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소대원과 중대원들도 모두 그런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가 분대장인 까닭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돌삼이에게 들인 그의 노력과 사랑, 희생과 열정, 냉동만두와 깐 포도, 냉동 치킨과 맛스타, 초코파이와 사이다의 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그의 '빅픽처'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는 그런 돌삼이를 위해 먹을 것, 그중에서도 라면을 준비했다.


그는 3일에 한번 중대 일직 분대장을 맡아 밤새도록 불침번 근무와 외곽 근무자 관리를 했다. 다음 근무자에게 공포탄이 들어 있는 탄창을 내어주고, 돌아온 근무자에게서 탄창을 회수해 젓가락을 꽂아 탄알의 숫자를 확인하는 일이 첫째 임무였다. 둘째 임무는 돌삼을 위해 라면을 끓이는 것이었다. 전방이라 라면과 건빵 보급은 충분했고 옛 시에 '꾸물거리며 구차히 사는 백성은 배불리 먹이'라는 말을 떠올려, 아니 돌삼이 고마워서 그는 돌삼을 위해 라면을 끓였다. 돌삼이 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에 맞춰 라면을 끓였다. 너무 많은 양의 라면을 먹으면 다음 날 돌삼이 피곤할 것 같아 그는 3개만 끓였다. 돌삼이 허겁지겁 라면을 맛나게 먹고 배를 두드리며 담배를 한 대 피우면 바로 재웠다. 설거지조차 그가 해결했다. 그는 돌삼이에게 라면 밖에 해 줄 것이 없어 늘 미안해했고, 돌삼은 라면만으로 자신의 한은 풀린다며 그를 고마워했다. 그렇게 그들의 전우애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들이 철책선 보수 공사에 투입된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그들은 시간 개념이 없었다. '날조'였음으로 그냥 하루하루가 중요할 뿐이었다. 첫눈이 내릴 무렵이었다. 대대장 지시 사항 두 가지가 전달되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이후 잠잠하던 북 동태가 이상하다는 내용이었다. 중국과의 미사일 거래가 있었으며 휴전선 인접 지역에서 활발한 움직임이 보이니 야간 통행을 자제하고 경계 근무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야간에는 잠을 자느라 통행을 자제 할 틈이 없었고, 경계 근무를 철저히 한들 부대에는 공포탄 밖에  없었으니, GOP 경계 근무를 할 때 늘 들었던 지시였으니 그 지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지시 사항이 문제였다. 빠른 FEBA 복귀를 위해 작업량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날조가 더 많은 자재를 운반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그 지시 이후 돌삼은 밤에 싸던 똥을 날이 밝은 아침에 싸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밤에 화장실을 가게 되면 일직 분대장 근무를 서고 있는 그와 함께 화장실을 가려했고 목에는 목도리를 동여맸다. 목도리를 한들 목을 베려는 놈들을 이겨낼 리 없지만 돌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아 말리지 않았다. 둘째 지시와 관련해서, 그를 위해서, 돌삼은 지게 위에 더 많은 짐을 올려야 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돌삼을 위해 라면을 한 개 더 추가해 끓였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도 약간의 자재를 날랐고, 돌삼도 지게를 이용해 그의 몫을 포함한 많은 자재를 날랐다. 서로가 나른 자재의 양만큼 피곤했다. 해질 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저녁을 먹고 일직 분대장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CP(Command  Post-지휘통제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 돌삼은 불침번 초번초였던 탓에 라면을 2개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졸음을 참으며 근무자들에게 공포탄을 나눠주고 회수하며 무료하게 밤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잠을 깨기 위해 CP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내리는 눈을 바라 보았다. 대남 방송만 들리지 않았다면 그곳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깊은 산속 두메마을이었다. 모든 것들이 지치는 새벽 4시, 근무 교대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의 소대 불침번이 헐레벌떡 CP로 뛰어들어왔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돌삼보다도 군번이 늦은 이병이었다.

'부,분대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왜?'

'저저 적군이 침투한 것 같습니다'

'뭔 소리야 지금?'

'우, 우, 우리 막사 인원 한 명의 모, 목이 없습니다'

'뭔 개소리야 지금!'

 CP에는 그 밖에 없었다. 중위 계급의 일직사령관과 본부 중대 상황병은 일찌감치 자기들 막사로 돌아가 잠을 자고 있었다.

'저, 정말입니다. 신, 신돌삼 이병님 목이 없습니다......'

'뭐?'

그는 문득, 군대의 이병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할 상황도 아니었다. 순간 그도 모르게, 병장답지 않게, 평소의 여유로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라진 공백으로 긴장감이 채워지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책상에 기대어 놓았던 자신의 소총을 들었다. 소총을 든 손이 떨렸다. 실탄을 찾았으나 CP에는 실탄이 없었다. 그들 부대는 공사 중이었으므로..... 그는 다음 근무자에게 배급해야 할 총알, 아니 공포탄 탄창을 자신의 소총에 삽탄 하고 노리쇠를 후퇴 전진했다. 소리가 차가웠다.

그와 불침번은 바쁘게 눈길을 걸어 그들 소대 막사로 이동했다. 소대 텐트 앞에서 그는 잠시 숨을 몰아 쉬고 소총의 조정관을 단발로 바꾸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반사되는 환한 눈길을 걸어온 탓에 텐트 안이 더 어둡게 보였다. 무서운 정적과 어둠이 텐트 안에 꽉 차있었다. 이등병 불침번의 사수인 상병 불침번이 그를 보자 침묵의 경례를 했다. 그는 상병 손에 있던 군용 손전등(TK-205S)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텐트 중앙 통로를 걸어 잠들어 있던 소대원들을 지나 돌삼의 자리로 갔다. 돌삼의 자리 앞에서 마른침을 삼킨 그는 돌삼의 발부터 천천히 상체를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누에 꼬치 같은 침낭 안에 들어있는 몸이지만 그 몸이 돌삼인 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천천히 돌삼의 머리 부분으로 비췄다. 순간, 그는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정말 돌삼의 목이 없었다. 침낭 지퍼가 시작되는 부분과 텐트의 벽이 맞닿아 있을 뿐 돌삼의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곳을 비추는 손전등 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는 다리에 힘이 빠지며 넘어질 뻔했고 그런 그를 상병과 이병이 부축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텐트 벽을 비추었다. 흔들리는 불빛 속으로 정적이 흘러가고......그가 눈꺼풀을 잠시 감았다가 번쩍 뜨며 '따라와' 상병과 이등병에게 지시했다.

그들은 텐트에서 나와 텐트의 측면으로 돌아갔다. 눈에 비친 달빛이 환해 손전등도 필요 없었다. 텐트 주변의 물고랑을 따라 측면으로 돌아간 그들은 돌삼의 자리쯤 되는 곳에 섰다. 그곳에서 그들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돌삼의 목이 완벽하게 젖혀진 채로 물고랑에 걸쳐 있었다. 몸은 그대로 텐트 안에 놓아두고 머리만 텐트 밖으로 내놓고서 돌삼은 자고 있었다. 마치 몸은 침대 위에 있고 머리만 침대 밖으로 떨어뜨린 모습이었다. 텐트를 고정한 말뚝과 말뚝 사이를 통과한 돌삼은 텐트 바닥보다 낮은 물고랑에 머리를 걸친 채 잠들어 있었다. 초저녁부터 그런 자세로 자고 있었는지 눈과 이마와 귀와 머리카락에는 이미 많은 양의 눈에 쌓여 있었다. 다만 인중과 입 주변은 눈이 없었는데 돌삼이 거칠게 내뱉은 따뜻한 숨결 때문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은 마치 하얀 접시에 붉은 홍로 사과를 올려놓은 것만 같았다. 홍두깨 선생의 조강지처 '고은애' 여사의 입술을 닮은, 썰면 한 소쿠리는 될 것 같은 그 커다란 입술과 입술 주변에 남아 있는 라면 국물의 흔적과 온 얼굴을 덮고 있는 흰 눈이 대비를 이루며 매우 기괴하고도 묘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돌삼의 목이 몸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돌삼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본 상병은 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등병은 '쿡쿡' 거리더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는 군홧발로 사정없이 이등병의 정강이를 걷어찼고 이등병은 눈밭을 때굴때굴 굴렀다가 다시 때굴때굴 굴러왔다. 이등병이 그의 앞에 아니, 돌삼의 옆에 똑바로 서자 그는 '아무리 돌삼이지만 니 고참인데 그러면 안된다. 우리는 군인이다' 라고 위엄 있게 말했다. 그리고는 돌삼의 머리맡에 쪼글치고 앉아 돌삼의 눈과 이마와 귀와 머리카락을 덮고 있는 눈을 조심스레 걷어내고 돌삼을 조용히 불렀다. 돌삼은 그가 부르는 소리를 꿈속에서 들었다. 꿈 속의 돌삼은 고향집 마루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던 듯했다.


'돌삼아.... 돌삼아.... 아 들어가 자야지. 여그서 이렇게 자면 어쩐다냐. 고뿔 오실라.' 돌삼은 대답도 없이 입맛을 다시며 계속 잠을 잤다.

'아, 돌삼아.....눈 구경 하다가 잠들었다냐......' 그래도 돌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삼아... 돌삼아.... 이제 그만 일어나서 소죽 끓여야지. 날도 추운디 어미소 배고파서 어쩐다냐.....' 그러자 돌삼은 목과 머리를 조금 움직였다. 하지만 잠을 깨지는 못했다.

'아이고 우리 돌삼이가 겁나게 피곤한가부네.....그래도 일어나야지.... 아부지가 저렇게 아프고 어메는 늙어부러갔고.....소가 배가 고파서 저렇게 울어 쌌는디......아가....아가....' 그의 눈꺼풀 안쪽이 조금 꿈틀거렸다.

'아이고 우리 늦둥이가 저렇게 애를 묵는디.... 나는 어매가 되갔고 다 늙어부러서......오냐...오냐.... 그래 좀만 더 자그라....'

'어무니요?, 아이고 어무니... 내가 피곤했는 갑소..... 내가 겁나게 피곤해가꼬 잠이 들었던갑소.....'

'아이고.....소죽 늦어지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너를 불러갔고 곤한 잠을 깨워부렀구나...... 아이고.... '

그 때 돌삼이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눈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엇인가가 고여 있었다.


불침병 상병이 비몽사몽 간의 돌삼이를 툭툭 발로 건드리며 '돌삼아 이 새끼야 아무리 피곤해도 이렇게 자면 어떡하냐 빨리 일어나 어서! 안 일어나?' 하고 엄하게 말했다. 상병의 발길에 돌삼의 눈에 고여있던 무언가가 관자놀이로 흘러내렸다. 그는 상병을 향해 '야! 지금 제가 어떻게 일어나냐?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있는데 너라면 일어나겠냐? '라고 말한 뒤 눈을 뜬 돌삼을 향해 '돌삼아 내가 봤을 때 너는 지금 전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후진을 해서 막사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겠냐? 우리가 텐트를 들어 줄게.'라고 말했다. 돌삼은 비몽사몽 간에 '분대장님? 지금 어떻게 된 겁니까? 제가 죽은 겁니까? 저 집에 있었는데... 소죽 끓여야 되는데..... 제가 죽은 겁니까? 제 목이 짤린 겁니까? 답답합니다..... 분대장님 일어날 수가 없어요. 몸도 움직이지가 않아요. 아~' 하더니 침낭 안에 있던 손을 빼내 텐트를 부여잡고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돌삼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여러 개의 막대로 세워진, 팽팽히 잡아당기기 위해 줄도 설치된,  얇지만 쇠로 된 말뚝이 꽂힌, 하물며 그 말뚝이 꽂힌 땅이 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 T24 텐트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급기야 줄이 뽑히고 막대가 쓰러지며 텐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집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텐트 안에서 자고 있던 소대원들과 주변 텐트에서 자고 있던 중대원들은 돌삼의 고함 소리과 불침번들의 말리는 소리, 놀라는 소리에 하나둘 잠이 깨기 시작했다. 잠이 깬 소대원들 중에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해진 병사도 있었고, 지진이 난 것으로 착각해서 땅에 바짝 엎드린 병사도 있었다. 어떤 병사는 전쟁이 난 것으로 착각해 소총 찾는 병사도 있었고, 화생방 훈련으로 생각해 일어나자마자 방독면을 뒤집어쓰는 병사도 있었다. 전 대대장이 좋아했던 FTX(불시 실전형 현장훈련) 훈련으로 착각해 군장을 싸는 병사도 있었고, 냅다 맨발로 텐트 밖으로 달려 나가는 병사도 있었다. 모두 개성 넘치는 행동이었다. 그 모든 행동은 곧 돌삼이 무너뜨린 텐트로, 집으로, 눈으로 덮였다. 무너진 텐트 안에서 꾸물거리는 병사들의 모습은 마치 볍씨가 담긴 함지박 속을 헤매는 들쥐와 같았다.


소대원들은 중대원들에 의해 무사히 텐트에서 탈출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다른 텐트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건이 주인공인 돌삼은 그가 근무 중이었던 CP에서 몸을 녹였다. 눈을 맞아 빨갛게 된 돌삼의 얼굴은 새색시 같았다. 그런 돌삼에게 그는 두 개의 라면을 삶아주었다. 라면을 맛있게 먹은 돌삼에게 그는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물었지만 돌삼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기억하고 있었으나 말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다음날부터 자신이 운반해야 할, 자신에게 할당된 자재를 돌삼에게 맡기지 않았다. 돌삼의 땀과 냄새와 손때가 묻은 지게와 지게 작대기도 부러뜨려 버렸다. 지게를 사준 행보관도, 늘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있는 소대장도, 집을 잃은 소대원들도, 돌삼의 지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 돌삼만이 서운해했다. '제대할 때 지게와 지게 작대기를 집에 가져가려 했는데 분대장이 부러뜨렸다며, 지게 길들이기 쉽지 않은데.....잘 길들인 지게를 잃었다'며 아쉬워했다. 

며칠 후 그들은 철책선 보수 공사를 마치고 FEBA로 퇴각했다. 그리고 몇 주 후 그는 제대를 했다. 소대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며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돌삼을 부탁했다. 특히 불침번 상병과 불침병 이병에게는 '인간적으로'라는 말을 여러 번 섞어가며 돌삼을 부탁했다. 돌삼은 글씨인지 지렁인지 모를 활자로 그의 집 주소와 대학교 이름, 과를 적어 품 깊숙한 곳에 넣었다. 그와의 이별에 눈물까지 흘리는 돌삼에게 '미안했다'는 말을 남기고 제대를 했다.


여기쯤에서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네요. 이틀동안 돌삼이 얘기를 쓰느라 힘들었네요.

원래는 돌삼의 제대 후 그와 해후하는 장면까지가 예정된 글 분량이었는데 글이 길어져서 마무리를 하려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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