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May 15. 2024

엄마는 숙제 선생님

나의 업무 영역은 어디까지?

동동이가 영어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어떤 아파트에 숙제 선생님이 다니며 아이들 영어유치원 숙제를 봐준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유치원생 숙제를 과외 붙여할 일인가 싶어 충격이었는데 바쁜 맞벌이 가정에서라면 그래야 하는 경우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유치원에 숙제가 있다는 게 일차적 충격이긴 했다. 1년 더 보냈다면 동동이도 숙제가 생길 예정이었지만 나는 일반 사립유치원으로 갈아타는 선택을 했다. 옮긴 유치원엔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하루 한쪽 숙제가 있었는데 학습이나 습관잡기에 도움이 되어 초등 입학 준비에 좋아 만족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원 때가 얼마나 좋았던 시절인가. 숙제 부담은 싫다고 주장하던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일 중 제법 큰 부분이 바로 숙제 선생님 노릇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은 이미 사교육보다는 내 홈스쿨링을 받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꼬물꼬물 뭐라도 집에서 직접 가르쳤으니까 말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영어학원은 복습도 약간 있지만 숙제의 대부분이 예습인 학원이다. 숙제를 통해 수업 준비가 되는 셈이다. 숙제가 별로 없는 학원도 있을 것이고, 수업에서 배운 것을 숙제로 복습하는 학원도 있겠지만 나는 다른 학원을 딱히 알아보지 않았다. 멀리 보낼 생각은 없고, 동네에서 보내되 그 학원만의 커리큘럼이 명확한 것이 내 선택 조건이었다. 나름 언어학을 전공했던 가닥이 있기에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것보다 낫다고 여기려면 확실 차별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지금 가는 학원은 꽤 성의 있는 피드백이 있고 수업 시간 외에도 따로 부족한 부분을 지도해주기도 하는지라 만족하는 편이다. 가장 큰 차이는 집에서 아무리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 쓰기를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큰 비용을 감수하고도 두 녀석들을 보내고 있다.


나는 복복이를 앉혀놓고 단어를 하나씩 다양한 추가 예문과 함께 설명해 주고 외우기 쉽게 음절을 잘라가며 알려준다. 리딩 지문을 따라 읽히고, 문법 설명을 훑어준다. 책을 읽어줄 때도 있고 발표문 연습을 봐주기도 한다. 틀리게 소리 내는 부분은 발음을 알려준다. 학원에서 개별적으로 봐줄 수 없을만한 것만 하려고 한다. 학원선생님이 아이가 틀리게 쓴 부분을 집에서 수정시키지 말라고 요청한지라 틀린 게 눈에 거슬려도 넘어가는 적당한 개입필요하다. 그렇게 한참을 봐주다 보면 내 다른 할 일들은 저만치 미뤄져 있다. 복복이는 내가 숙제를 봐주면 어떨 때는 하기 싫어 입이 나와있고, 어떨 때는 엄마랑 이렇게 재밌게 하니까 잘 외워지고 좋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숙제 선생님의 가르침은 영어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주 2회 복복이의 피아노 숙제를 직접 가르친다. 박자를 쪼개고 허벅지에 박수를 쳐가며 멜로디를 계이름으로 불러재낀다. 안 되는 박자와 음정을 해결해서 피아노 학원에 보내는 것이 나의 임무가 된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기존에 다니던 거의 매일 가는 피아노학원에서는 숙제가 없었다. 그런데 영 애매한 피아노 실력에 고민이 커진 나는 결국 아이들 피아노학원을 그만뒀다.


악기는 잠깐 쉬어도 빠르게 잊어버리는지라 빠르게 새로운 선생님을 찾아보았다. 체르니를 하고 있는 동동이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단지 내에 있는 개인레슨을 보내고 학원으로 가고 싶다는 복복이는 새로 생긴 소수정예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옮긴 학원을 몇 주 다니다가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연락은 어머니께서 피아노 숙제를 좀 봐주십사 하는 것이었다. 학원을 주 2회 가는데 나도 복복이를 주 2회 가르치는 셈이다. 학원에서 가르치셔야 하지 않나 생각했던 나는 복복이를 가르치며 생각이 바뀌었다. 집에서 내가 안 봐주면 진도를 나갈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나는 4학년 때 체르니 30을 치다 피아노를 그만뒀는데 수십 년이 흘러 그걸 여기에 쓰는구나 싶다.


학원에 다 맡기려고 학원 보내는 것 아니냐는 기존의 내 생각이 무색하게 나의 숙제 선생님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영어의 경우, 집에서의 학습 없이 학원에서의 시간만으로는 실력이 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이 학습의 과정에 아예 개입하지 않는 것도 시간과 돈이 아까운 노릇이다. 혼자 하라고 그냥 둬보기도 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영어학원을 보내보고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혼자서도 잘해갔길 기대하지는 말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숙제가 만만한 다른 학원을 찾아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2학년 복복이는 사고력 수학학원을 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