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 3년 만에 돌아온 우울증, 범불안장애 환자
글을 안 쓴 지 너무 오래되었다. 아니, 늦깎이 대학생이 되고 레포트를 쓰는 일이 많아 글 자체를 쓸 일은 많았지만 내 감정에 대해 적고, 표현하는 게 아주 적었다. 격동의 해였던 2022년이 지나고, 사이버 대학교에 상담심리학과를 들어갔다. 나의 병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심리상담에 대해 대한 불만과 더욱 개선하고 종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상담과 심리에 대해 배우다 보니, 내가 왜 오래 상담을 받지 못했나에 대한 이유를 찾았다.
정신과, 심리상담센터, 학창 시절에는 교내 위클래스 상담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상담을 받을 때마다 나에 대해, 나의 감정에 대해 잘 알게 되곤 했지만 오래 다니질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떠올려보면,
- 막상 주기적으로 받으려니 귀찮아져서
- 내 상태가 좀 괜찮아진 거 같아서
- 상담사 분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생각해서
- 비용에 비해 얻는 만족도가 적어서
이 네 가지가 가장 컸던 거 같다. 사람의 감정은 계속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다. 어제의 우울함과 오늘의 우울함의 정도와 내용이 다를 수 있다. 그러니 저번 상담이 괜찮다 느꼈어도 오늘은 내 감정이 괜찮으니 안 받아도 되겠다, 그 정도 말만 해주는 거 보니 꼭 상담을 안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사람의 대한 신뢰가 낮은 사람이었기에 더욱 라포형성을 하기가 힘들어서도 있겠다. 어쨌든 이 원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았다. 먼 훗날 내가 상담사가 되었을 때도 같은 케이스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현재는 많이 괜찮아진 상태인지라 어떻게 괜찮아졌나를 톺아보았다. 내 말은 정답이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 두 번의 자살시도, 그리고 맑아짐 "
가장 좋았던 상담과 치료를 꼽자면 정신과이긴 했다. 다만, 가장 독이 되었던 것도 정신과였다.
약물치료가 대부분이고, 상담은 아주 짧게 진행되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그 의사 선생님과는 빠르게 라포형성이 돼서 오히려 심리상담을 받을 때 보다 내 진솔한 이야기를 더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깊은 내 감정에 대해서 다뤄지진 않았다. 아무래도 정신과는 상담이 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정신과 까지도 가지 않게 된 큰 이유는 '약물' 때문이었다.
분명 공황과 불면을 없애는 데에는 효과가 좋았다. 문제는 오래 우울했던 사람인지라 ' 갑자기 ' 이 증상과 우울함이 도려내진 듯한 삶을 처음 살게 되어 이질감이 들어 괴로웠다. 신체 부위가 갑자기 하나가 없어진 듯한 느낌. 내가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이 우울감인지 아니면 무(無) 그 자체인지도 분간이 안되었다. 그러다 보니 약을 거부하게 되기도 하였고 현실에서의 문제가 점점 해결되지 않아 불면은 심해져 불면에 관련된 약은 점점 센 약을 복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을 모아 자살 시도를 2번 했다.
첫 번째는 거의 몽롱한 느낌만 느끼고 기절하듯 잠들고 끝났고, 두 번째 시도 때는 졸피뎀을 과다 복용했던 것이라 효과가 강력했다. 그날의 기억이 모두 흐릿하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아직도 약간의 트라우마라 여기에 자세히 적기는 힘들다. ) 이 얘기를 들은 이들은 모두 내가 무의식이었다고 안 믿는다. 그런데 난 정말 그냥 무의식으로 행동했고 어떻게 거기까지 나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드문드문하게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오열하는 "상상"을 했다는 것. 실제론 한 명 외에는 걸지 않았고 상상이었다는 것도 끔찍하고 무서웠다.
그렇게 약효가 끝나고 정신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실토했다. 민망한 상황을 못 견디는 나는 " 그래도 안 아팠고, 안 죽었어요! " 라며 웃었다. 선생님은 슬픈 표정으로 " 그렇게 웃으며 얘기할 게 아니라 정말 죽을 수도 있었어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문득 겁이 나 울었다. 죽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었는데 막상 살아남았다면 아쉬워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정말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무서워 울었다. 그리고 그 뒤로 정신과를 가지 않았고,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강의를 통해 배운 바로는 일부 정신 질환에는 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게 감정의 문제뿐만이 아닌 '뇌'나 '호르몬'등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 감정과 뇌가 연관이 되어 있기도 하고 ) 다만 나는 그 당시에 꽤나 심한 우울증이었는데 상담은 최소로 하고 그저 약으로만 덮으려고 하니 악화될 수밖에 없는 짓을 반복한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약을 먹고 호전되어 나아지는 사람들도 꽤나 많겠지만 여러 가지 얽히고설킨 감정이 많은 나에게는 약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복용할 것이라면 진료 주기를 조금 더 짧게 하고 약한 성분을 먹었어야 했던 게 맞았던 거 같다.
아무튼 이렇게 정신이 맑아지고 나서 우울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했고 내가 어디서부터 이 우울과 불안이 왔는지 알게 되었다. 내 기질적인 것도, 가족 문제도, 그 간의 부끄러운 과거들도 … 모두가 복합적이었다. 이유를 알고,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혼자만의 상담을 하다 보니 이제는 전처럼 심한 증상이나 사고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걸 절망적으로 보지 않게 된 게 가장 큰 거 같다.
앞서 기재하였듯 나는 심리상담에 대한 불신도 꽤나 있었고 귀찮아했던지라,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반신반의했고 지금도 일부 기법 중에서 이게 진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심도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의 감정/성격/문제는 혼자서 풀어내기는 정말 극한의 어려움일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나'는 '나'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보기가 힘들고,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수용하지 못해 나오는 언행이나 행동들이 무수히 넘친다. 그리고 내가 깨닫지 못했던 과거의 행적 속에서 굴레를 발견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개인 상담을 받거나, 맞춤 강의를 듣는 것도 아닌데 강의 내용을 들으며 혼자 생각하니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결국 정신과 의사나, 전문 상담사를 통해서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건 내가 길을 나아갈 때 길잡이 역할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계속 같은 문제를 지적당하고 힘들어하는 일이 생긴다면 한 번쯤 꼭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이 세상에 의사와 상담사는 무수히 많아서 개인적으로 안 맞는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상담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선은 천천히, 여러 군데를 많이 찾아보고 심리학 관련 책을 찾아보고 나에게 맞을 거 같은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 또한 상담사라도 약 복용이 꼭 필요한 내담자에겐 권유하고 있으니 상담으로만으로 치료가 안될 거 같다고 해도 일단 방문해 봤으면 좋겠다. ( 물론 상담사가 직접 약을 주는 건 당연히 아니고 병원을 찾아갈 수 있게끔 권유한다고 한다. )
그리고 상담에는 나름 절차가 있고 과정이 있고 목표가 있기에, 한 번에 상담이 맘에 안 들었다고 과거의 나처럼 당장 멈추진 않았으면 좋겠다. 난 처음에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야 해서 부담스러워서 그만둔 적도 있는데, 상담사는 우선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뭐가 문제였는지 파악할 수도 있고,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지도 찾을 수 있으니. 그러다가 말하다가 힘들면 그렇다고 말해도 되고, 쉬어도 된다.
내가 마음을 열지 못하면 상담사는 그만큼 도움을 못 줄 확률이 크다. 그러니 결정했다면 믿어보시길.
우선은 내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병원이나 상담소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무나 두렵다면 일단 관련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혹은 상담 관련 게임도 추천한다. ( 최근에 많은 게임들이 많이 클로징 되긴 했지만 )
가벼운 병들은 약 한 알로 금방 낫곤 한다. 하지만 정신과 관련된 문제들은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특히 우울증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 상담소에 가면,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면, 내가 가진 이 괴로움은 다 덜어지겠지? 돈을 이 정도 내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생각한다면 일단 치료하기 전부터 치료 성공률이 너무 낮아진다. 당신이 괴로워 한 시간이 몇 날 며칠이며, 고통 체감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상담사든 의사든 한 방에 알고 한 방에 치료할 순 없다. 실제로 내가 상담사님께도 물어봤었다. 내가 나아지려면 얼마나 걸릴지.
대답은 "아파왔던 기간이 못해도 십몇년인데, 그걸 하루 만에 치료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우울증인 사람은 없을 것, 그렇지만 치료를 못하는 것은 아니기에 따라와 주면 좋겠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맞다. 내가 내 병식이 없고 나으려는 의지를 내 안에서 찾으려고도 안 하는데 그 누가 나을 수 있으랴.
상담을 시작했다면, 치료를 시작했다면 당신도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동안의 무수한 희망을 걸었다가 절망으로 점철되었던 것은 안다. 하지만 결국 당신이 죽지 않고 그곳을 찾아갔다는 건 그 실낱같은 희망을 잡아보려 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그 희망을 키우려고 도와주는 사람의 손을 잡아는 줘야 한다.
의심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고, 나으려면 내가 그 손을 잡고 움직여야 한다.
힘든 상황이면 당연히 혼자가 버겁기에 가까운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SNS나 드라마, 영화 속에서 보면 자신의 우울과 병을 무기 삼아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이전에 필자가 썼던 글 중 "우울증을 무기로 삼지 마라"가 있다. 실제로 내가 당해보기도, 내가 무기로 휘두르기도 해 봤는데 그 무기를 쥐는 것도, 맞는 것도 정말 쓰라리다.
그렇다고 도움을 주려는 주변인들을 모조리 밀쳐내 버리고 다가오지 말라고 으름장 놓으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곁을 내어주고, 그만큼 의지하고, 감사함을 느껴주면 좋겠다. ( 그렇다고 과하게 다가오는 이는 부담스럽다고 말할 용기도 필요하고. )
어려운 이야기지만 너무 의지해서 기대려고만 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밀어버리진 말고.
그저 그 사람들 옆에 '서' 있기를. 서 있기가 어렵다면 그들 옆에 앉아있을 수라도 있기를.
다시 돌아와서, 내가 왜 심리상담을 한 곳에서 오래 받지 못했는가.
신뢰를 할 수 없었다. 상담사든 의사든 그게 '나'든. 조금 괜찮은 날이다 싶으면 다 나았다 싶었다. 본질적인 것을 피하고 싶어 했던 거 같다. 상담을 시작하면, 어찌 됐든 내 아픈 기억을 꺼내야 하고 그걸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하는 게 괴로웠던 거 같다.
하지만 진짜 괴로운 건 그걸 말할 곳이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재앙이 일어날 거라 믿고 근처조차 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걸 계속 묵혀두면 언젠가는 자의든 타의든 열리게 되어 있더라. 그러니 조금의 귀찮음을 참았어야 했고 "상담"이라는 것에 대해 더 알았어야 했다.
나도 상담이라는 건 내 얘기를 듣고 상담사가 해답을 내놓는 것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나와 상담사가 함께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상담사는 자신에게만 의지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담자가 스스로도 걸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해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점을 모르고 상담을 시작하니 당연히 이게 뭐야 싶었겠지. 그래도 이러한 시스템이 이해가 안 가는가? 그렇다면 우리 아기들을 생각해 보자. 아기는 혼자 걷기 전까지 성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근데.. 아기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바로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었던가? 결국은 넘어져보고, 스스로가 터득해야만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성인은 그렇게 되기까지 조금의 비계(scaffolding) 역할을 해줄 뿐. 결국은 아기 혼자 걸어야 한다.
내 주위에도 꽤나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정말 아닐 것 같은 사람들도 다 병원을 가 본 이력이 있고, 진짜 가봐야 할 거 같은데 시도조차 못하는 이들도 정말 많고..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반복되어 힘든 문제가 있다면, 수면이나 식욕 등의 변화가 생겼다면, 출근하다가 차에 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 한 번쯤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너무나 방대하고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들만 소비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생각 말고, 진짜 내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고 있는가를 돌아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