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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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음을 연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열정 없이 연주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교향곡 3번》,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 《교향곡 9번》, 《비창 소나타》, 《월광 소나타》등이 있다.

동시대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 E. T. A 호프만은 베토벤의 예술을 칭송하며, 자신들의 낭만주의 진영에 베토벤을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베토벤은 당시 낭만주의의 형식적인 통일감을 무시한, 감상과 감정 표현으로 대표되는 예술과는 거리를 두었다. 베토벤이 주목한 것은 동시대의 문학에서는 괴테와 실러, 또 그 이전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들의 것이며, 본업인 음악에서는 바흐, 헨델과 모차르트 등의 영향을 받았다.[176]

베토벤이 "전위"였는가의 여부는 많은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견해가 갈린다. "베토벤은 전위가 아니다"라고 단언한 하라 히로시는 당시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변주곡 등의 구조 모델을 준수하고 발안한 새로운 장르라는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177] 그러나 "메트로놈의 활용", "모국어에 의한 속도 표시", "피아노의 구조 개선과 음역의 확장", "악곡의 대규모화", "대담한 관현악 편곡", "연주 불가능에의 도전", "소음의 도입"(전쟁 교향곡) 등 후세의 작곡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베토벤의 음악계에 대한 기여는 매우 컸고, 그 이후의 음악가는 크든 작든 그의 영향을 받았다.

베토벤 이전의 음악가들은 궁중이나 유력 귀족을 섬겼으며, 작품들은 공식 및 사적 행사에 있어서의 기회 음악으로 작곡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베토벤은 그런 후원자와의 주종 관계 및 그 주종 관계에 따른 음악을 거부하고 대중을 향한 작품을 발표하는 음악가의 효시가 되었다. 음악가=예술가임을 공언한 그의 태도 표명, 또 한 편의 작품이 예술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창작이었다는 것은 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자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특히 바그너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시와 음악의 융합"이라는 이념에 촉발되어, 낭만주의 음악의 급선봉으로서 그 이념을 더욱 밀고 나아가 악곡을 탄생시켰다. 또 그 표현을 위해 풍부한 관현악법으로 음향 효과를 증대시켰고, 베토벤을 이용한 고전적 화성법을 해체하고, 트리스탄 화음으로 대표되는 혁신적 화성으로 조성을 확대했다.

반면 브람스는 낭만주의 시대에 살면서 바그너파와 선을 긋고, 어디까지나 베토벤의 견고한 구성과 극적인 전개를 통한 고전주의 음악 형식의 구축이라는 측면을 이어받아 낭만주의 시대 속에서 음악 형식적으로는 고전주의적인 작풍을 유지했다. 그러나 선율이나 화성 등 음악 자체에 넘치는 서정성은 낭만주의 이외의 누구도 아니었다. 또한 이 고전주의 형식에서의 극적인 전개와 구성이라는 측면은 브람스 뿐 아니라 드보르자크와 차이콥스키, 그리고 20세기에는 쇤베르크, 벨러,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라헨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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