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오늘의 명언 - 서머싯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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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비판해 주기를 요구하지만, 사실은 오직 칭찬만 받기를 원한다. - 서머싯 몸


1874년 1월 25일 출생


윌리엄 서머셋 몸(영어: William Somerset Maugham, CH, 1874년 1월 25일~1965년 12월 16일)은 영국작가이다. 파리외교 공관에서 태어났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뒤에 문학으로 전향하였다.


작품 세계

소설가로서 더 유명하지만 극작에도 재능을 보여, 이국정서의 색채가 짙은 살롱극을 몇 개 남기고 있다. 그는 동양의 신비에 대한 강한 동경심을 나타내고, 인생관을 강하고 명석한 문체로 묘사하였으며, 특히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대중적인 풍자 희극의 전통을 세웠다.


희곡

《프레드릭 부인》(1907)은 오스카 와일드류의 코미디풍 희곡이며, 《재크 스트로》(1908)는 급사로 변신한 귀족과, 귀족으로 가장한 하인이 벌이는 코미디이다. 그 밖에 《주행》(1921), 《수에즈의 동쪽》(1922), 《정숙한 아내》(1926), 《편지》(1927), 《성스러운 불꽃》(1928), 《서비스의 대가》(1932), 《서클》, 《변함없는 부인》, 《부양자》 등이 있다.


소설

제 1·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정보 기관원으로 활약하였으며, 그 체험을 소설화하기도 하였다. 소설 작품으로는 《면도날》,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 《람베스》, 《인생의 베일》 등이 있다.


그의 시대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였으며, 1930년대에는 세계에서 제일 수입이 많은 작가였다


프랑스 파리영국대사관에서 일하던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프랑스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영국에서 목사로 있던 삼촌에게 거둬진다.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는 삼촌의 집에서 어린시절을 외롭게 보냈고, 13세에 캔터베리의 왕립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프랑스에서 요양하던 중 189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청강생으로 1년간 자유로운 유학 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삼촌의 권유로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다가 그만둔 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의과대학을 졸업, 의사 면허를 취득했지만[8] 문학에 더 큰 흥미를 느껴 작가로 활동했다.



다만 작가의 길을 걷기로 한 후 초창기 10년은 그에게 불행한 시기였다. 여러 편의 소설과 희극을 썼지만 이렇다 할 히트작은 없었다. 생활고로 돈을 위해 작품을 쓰기도 했던 그는 1907년 발표한 오스카 와일드풍의 코미디 희곡 '프레드릭 부인'이 성공하면서 경제적, 정신적 여유를 얻게 됐다. 1912년부터는 희극 집필을 그만두고 장편 소설 '인간의 굴레'를 쓰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에 완성한 장편 소설 '인간의 굴레'는 작가의 고독한 청소년 시절을 거쳐 인생관을 확립하기까지 정신적 발전의 자취를 더듬은 자서전적 대작으로 대표적 걸작이다. 그 외에 긴 생애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제1차 세계 대전MI6 소속 스파이러시아에서 활동한 적이 있으며 그 체험을 소설로 남겼다.[9]



더불어 당시만 해도 극히 일부에게 인정받던 폭풍의 언덕을 높이 평가하며 언론 여기저기에 크게 다루면서 이런 명작이 묻혀지다니 이건 죄악이라고 한탄했다.[10]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 소설은 재평가되고 영국 문학에서 전설이 되었다. 또한 당시 알려지지 못한 모비 딕도 엄청 높게 평가하여 여기저기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모비 딕에 밀려보이긴 해도, 몸이 쓴 달과 6펜스나 인간의 굴레 또한 영문학 최고걸작 50에 들어가는 불후의 명작으로 엄청난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몸도 서구 영문학 연구가들에게 대문호로 인정받고 연구 중이다.



1916년 남양 여행을 떠나 타히티 섬을 방문했는데, 훗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달과 6펜스'를 발표했다. 혹자는 이 여행이 그가 정보부에서 물러난 후 개인적으로 떠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정보부의 특수 임무를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지만, 계속되는 여행으로 부인과 불화를 일으켜 결국 이혼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그는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다시 정보부 활동과 선전 임무 등을 맡아 일했다.



대표작은 폴 고갱의 생애를 모델로 한 '달과 6펜스'. 엘리자베스 2세에게 명예 훈위(CH) 칭호를 받았다. 그후 1965년에 프랑스 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중적이고 평이한 문체로 작품을 썼지만, 정교한 플롯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과 어리석음을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한편,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에 대해 회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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