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것 좋지만, 행동해야 할때가 되면 생각을 멈추고 뛰어 들어야 한다 - 앤드루 잭슨
(영어: Andrew Jackson, 1767년 3월 15일~1845년 6월 8일)은 1829년부터 1837년까지 제7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미국의 군인·정치인이다. 1815년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미국 군인으로서 영국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켈트족의 피를 이어받은 첫 아일랜드계이자 귀족 출생이 아닌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며, 민주당 소속으로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독립 13개주와 관계가 없었던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으며, 또한 잭슨 민주주의 정신의 기원이었지만, 반면에 그는 흑인노예 농장주이기도 하였다.
1815년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지형 지물과 솜 포대를 이용해 진지를 요새화한 것이 효과를 거두어서 불과 21명의 전사자로 영국군 2,037명을 전사시켜 대승을 거두었다.[1] 그 후 인디언 토벌이후 영웅으로 떠올라서 18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존 퀸시 애덤스에게 패했다. 하지만 1828년 재도전으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 대통령 사상 유일하게 의회에서 불신임 결의를 한 대통령이며, 미수에 그쳤지만 미국 대통령 사상 최초로 암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영미전쟁(1812~14)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대통령 임기 중의 강경정책을 펴 '앤드루 1세'라는 야유를 받기도 하였지만, 미국 독립 전쟁부터 남북 전쟁 종전 시(1775~1865)까지는 '에이지 오브 잭슨'(페터르 루세프), '잭슨 에라'(Jackson Era)라고 불리기도 했다.
부인 레이첼 잭슨은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2개월 전에 급사하였고, 이에 잭슨은 그녀의 사인이 된 것으로서 그의 정적 존 Q. 애덤스 및 그의 지지자를 격하게 비난하였다.
미영전쟁의 전쟁영웅이자 잭슨 민주주의라 하여 진정한 대중 민주주의를 시작한 선도자 그리고 기존 대통령들이 활용하지 않던 강력한 권한인 거부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처음 보여준 능력있는 정치인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원주민들을 학살한 살인마,[7] 흑인 노예를 소유한 인종주의자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상존한다. 다만 2010년대 이후로 평가가 떨어지는 추세라서 2020년대 현재는 꽤 복합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에서 대통령 업적 평가나 인기 순위 조사를 하면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위권대 초중반을 차지했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10위권대 후반~20위권대 초반을 차지하는 등 중위권으로 평가가 많이 떨어진 상태. 특히 민주당 대통령의 시초로 대접받는 인물이지만, 정작 오늘날에는 공화당 정권이나 공화당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에게 더 높이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특히 노예제, 인종차별, 학살 등 미국의 역사에 반성적 시선을 갖는 진보좌파층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현재 통용하는 미국의 20달러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를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