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오늘 명언 - 폰노이만

0313폰노이만.jpg

수학에서는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익숙해질 뿐이다. - 폰 노이만


존 폰 노이만(영어: John von Neumann 존 본 노이먼[*] 영어 발음: /dʒɔn vɒn ˈnɔɪmən/, 독일어: Johann von Neumann 요한 폰 노이만[*] IPA: [ˈjoːhan fɔn ˈnɔɪ̯man], 헝가리어: Neumann János Lajos 너이먼 야노시 러요시[*] IPA: [ˈnɒjmɒn ˈjaːnoʃ ˈlɒjoʃ], 1903년 12월 28일 ~ 1957년 2월 8일)은 헝가리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수학자, 물리학자, 컴퓨터과학자, 경제학자이다. 양자 역학, 함수 해석학, 집합론, 위상수학, 컴퓨터 과학, 수치해석, 경제학, 통계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연산자 이론을 양자역학에 접목시켰고, 맨해튼 계획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참여하였으며, 게임 이론세포 자동자의 개념을 개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자기 복제 구조에 대한 수학적 분석은 DNA가 발견되기 이전에 이루어졌다.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NAS)에 제출한 짧은 글에서 그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essential) 생각했던 나의 연구들은, 1926년에서 1929년 사이 괴팅겐베를린에서 연구한 양자역학, 다양한 구조의 연산자 이론, 그리고 프린스턴에서의 에르고딕 정리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폰 노이만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에드워드 텔러 등과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일했고, 내폭형 핵무기 (Implosion-type Nuclear Model)에 사용되는 폭축렌즈(Explosive Lens)를 발명하는데 수학적으로 공헌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미국 원자력 위원회 내 일반자문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위원이 되었다. 그는 많은 기관의 컨설턴트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중엔 미합중국 공군, 미국군 특수무기 프로젝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 등도 있었으며 에드워드 텔러, 스타니스와프 울람 등의 요인들과 함께 그는 핵물리학에서 열핵 반응 연구와 수소 폭탄을 개발하는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수학

1920년대 괴팅겐 대학교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집합론의 공리화 프로그램을 접한 폰 노이만은 1925년 박사논문에서 폰 노이만-베르나이스-괴델 집합론으로 불리는 공리계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1930년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발표를 계기로 수학에 관한 견해를 바꾼 폰 노이만은 이후 수학 기초론 대신 응용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는 1929년 힐베르트 공간을 최초로 공리화한 이후 1932년까지 여러 논문에서 연산자 이론에 관한 중요한 개념들을 제시하고 정의하였으며, 이후 이를 기반으로 폰 노이만 대수를 개발하는 등 함수해석학의 기초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1932년 일련의 논문에서 그는 폰노이만 에르고딕 정리를 증명하며 에르고딕 이론의 핵심적 배경을 제시하였다. 또한 1935년부터 1937년까지 폰 노이만은 격자 이론에 관해 연구하여 연속기하학(Continuous geometry) 분야의 창시자가 되었다.


양자 역학

1900년 세계 수학자 대회에서, 다비트 힐베르트는 수학 발전의 핵심적인 23개의 문제들을 발표했다. 그 중 6번째 문제는 물리학의 공리화였다. 1930년대까지 새로운 물리 이론들 중에서는 공리적 접근 방식을 따랐던 것은 양자역학뿐이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결정론적 세계관과 모순되는 부분이 있어 철학적·기술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 왔으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에르빈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접근방식이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집합론의 공리화를 끝낸 이후, 폰 노이만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공리화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1926년, 폰 노이만은 N개의 입자를 양자 역학으로 다루는 문제가 무한차원 힐베르트 공간 내의의 한 점으로 나타나며, 이는 고전역학에서 6N 차원의 위상 공간에 대응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3N 개는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3N 개는 운동량을 나타내기 위해 쓰임) 거기에 더해 위치, 운동량 등의 물리량은 이 점에 연산자를 작용시켜 얻어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을 다루는 물리문제는 힐베르트 공간 내의 에르미트 연산자를 연산자끼리 계산하는 방식으로 치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유명한 예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불확정성 원리는 위치 연산자와 운동량 연산자를 곱했을 때, 곱하는 순서가 바뀌면 계산 값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e.g. p를 x 축에 대한 운동량, x를 x축에 대한 위치 라고 할 때, px - xp ≠ 0)으로 설명 가능하다. 이 접근 방식은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접근방식을 포괄하며, 노이만은 1932년 양자역학에 내재된 수학이론을 완성한다. 물리학자들은 폴 디랙이 1930년에 완성한 브라-켓 접근방식을 선호하나, 수학자들은 노이만의 접근방식이 아름답고 완전하다고 평가한다.


게임 이론

폰 노이만은 그의 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게임 이론의 기초를 다졌다. 1928년 그의 미니맥스 이론을 증명했으며, 이는 완전한 정보와 제로섬 게임을 기반으로 두 사람이 두 가지의 전략을 갖고 있을 때, 각자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1944년에는 오스카르 모르겐슈테른(독일어: Oskar Morgenstern)과 함께 쓴 책 《게임 이론과 경제적 행동》(Theory of Games and Economic Behavior)를 출간함으로써 불완전한 정보와 참여자가 두 명 이상일 경우를 고려했다는 점에서 미니맥스(Minimax) 이론을 스스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뉴욕 타임즈 표지에 소개되었을 만큼 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 공중의 관심이 굉장히 높았다. 이 책에서 폰 노이만은 경제 이론이 함수해석학을 사용할 필요가 있음을 밝히며, 특히 볼록집합과 위상 고정점 정리를 강조하였다. 이는 그의 이론이 전통적인 미분학을 뒷받침하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과학

미군 탄도 연구소의 EDVAC에 관한 보고서에서 폰 노이만은 데이터와 프로그램 메모리를 구분하지 않는 컴퓨터의 구조를 제시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폰 노이만 구조로 불리며 대부분의 현대 컴퓨터 설계가 기반하고 있다. 또한 스타니스와프 울람과 함께 합병 정렬 알고리즘을 처음 고안하였으며, 몬테 카를로 방법유사난수 이론에도 기여했다. 1940년대 세포자기 복제 능력에 주목하여 이에 착안한 세포 자동자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월12일 오늘명언-마리 폰 에브너 에셴바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