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질감과 펜의 사각거림을 픽셀로 구현한 나만의 작업 환경
아날로그라는 울타리를 넘어
첨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시간을 절약하고 편의성이 따르는 디지털화된 세상이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군가에는 레코드판, 보드게임, 다이어리 꾸미기, 종이 신문 스크랩 또는 그 무엇인가가 해당될 것이고, 저에게는 종이책 독서와 손글씨 필기가 그러합니다. 물리적인 책의 무게를 느끼고 종이의 질감과 냄새를 맡으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사각사각하는 펜과의 교류를 통해 오감으로 책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은 제 삶의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은 시대의 변화 앞에서 사라지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이패드라는 도구를 만나며, 제가 사랑해 온 기록의 감각은 고스란히 지켜졌고, 저의 정원은 아날로그라는 울타리를 넘어 비로소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책상 가득 색연필을 늘어놓지 않아도 펜슬 하나로 톡톡 두드리며 수만 가지 색채를 표현해 낼 수 있습니다. 틀리거나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언제든 고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니멀함과 자유로움이 가장 큰 매력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이의 질감을 픽셀로 구현한 나만의 디지털 작업실, 이곳에서 저의 기록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됩니다. 그리고 '되돌릴 수 있음'이라는 특성은 제 일상에서 더욱 선명한 의미를 가집니다.
'되돌리기' 버튼이 주는 다시 시작할 용기
병원의 업무는 오차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수치가 환자의 병 진단과 치료의 방향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긴장의 연속인 일상 속에서 아이패드는 해방구가 되기도 합니다. 실수를 용납하는 되돌리기 버튼이 있기 때문이죠. 마음껏 선을 긋고, 색칠을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금세 되돌릴 수 있어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자유롭게 유영하기 좋은 공간입니다. 이 심리적 안전지대 덕분에 저는 하얀 캔버스 위에서 과감한 정원사가 된답니다.
경계가 없는 캔버스
종이 노트에 기록을 하다 보면 종이의 경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꽤 흔합니다. 수정하기가 어려운데 여백이 부족하거나, 흐름을 끊고 다음 페이지로 넘겨야 할 때의 아쉬움도 늘 뒤따랐죠. 반면 디지털 캔버스는 화면을 자유자재로 축소하고 확대하며 무한히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면 계속해서 레이어를 덧붙여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마법 같은 도구 위에서 어떻게 정원을 설계해나가는 것이 좋을까요? 다음 화에서 구체적인 가드닝 비법을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