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몹시 혼란하던 어느 겨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요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살다 보면 살아질 삶이라지만 떠밀리듯 살고 싶지 않았다. 이왕이면 기꺼운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매일 아침 이런저런 잡생각과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는 감정을 무시하고 몸을 벌떡 일으켜 요가 매트를 깔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을 따라 하며 요가를 했다. 다양한 선생님들이 올린 많은 영상 덕분에 그때그때 골라가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몸을 가볍게 하는 요가, 코어 강화를 위한 요가, 골반을 열어주는 요가, 아침에 하는 요가, 잠자기 전에 하는 요가 등등 무엇이 필요할지 몰라 전부 준비해놓은 듯 세세히 분류된 요가 영상들이었다. 어느 때는 무슨 영상을 볼까 고민하다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배우는 요가는 뚜렷한 장단점이 있었다. 요가원에 등록하고 싶어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금전적인 부담도 있었고 요가원에만 의존해 수련을 게을리하게 될까 염려되었다. 그렇게 1년 반을 나 홀로 요가에 정진했다.
그러다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요가원에 등록했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수련을 게을리할 게 뻔했으니 요가원에 다닐 좋은 기회이자 핑계였다. 근래에 시작한 아쉬탕가 요가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는데 마침 알고 지내던 선생님이 계신 곳도 아쉬탕가 전문 요가원이었다. 더 찾아볼 것도 없이 이곳으로 선택했다. 전화로 문의를 하고 며칠 후 요가원을 찾아갔다. 밝은 베이지색으로 칠해진 요가원 내부는 몹시 아늑하고 깔끔했다. 최소 등록 단위가 한 달이었기에 한국에 머무는 3주 동안 한 달치를 모두 채우기 위해서는 매주 네 번씩 수업에 다녀야 했다. 괜스레 해찰하지 말고 방학 동안 요가에 매진하라는 뜻인가 보다. 등록을 마치고 바로 수업에 참여했다. 너무 힘들었다. 평일 오전 수업이라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힘든 기색 없이 슥슥 동작을 이어갔다. 사실 그들의 기색이 어땠는지 살필 여력은 없었지만 느낌이 그러했다. 나만 부들부들 거리는 듯했고 나만 선생님의 구령에 놀라는 듯했다. 이걸 또 하라고? 또? 아직도 안 끝났어? 선생님은 수련을 하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세를 교정해주었고 동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다가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준비 동작을 하지 않아도 선생님은 너무나 쉽게 동작을 완성했다. 나의 팔다리가 민망해하는 게 느껴졌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팔다리에 힘이 쏙 빠져서야 수업이 끝났다.
요가가 주는 활력과 기쁨에 매료되어 3주 동안 12번 수업을 빠지지 않고 모두 나갔다. 수업을 듣고 나면 제대로 운동을 했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뿌듯하기가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집에서 했던 요가가 메모장에 끄적이는 낙서였다면 요가원에서 하는 요가는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는 느낌이었다. 요가원에서는 더 진지한 마음으로 수련에 임할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열기도 도움이 되었다. 다들 수련을 어찌나 열심히 하고 또 어찌나 잘하던지 매번 놀라고 또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역할이 컸다. 수업 후반에 가면 숨이 넘어갈 듯 체력이 부족해지지만 선생님의 구령과 격려 덕분에 매번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각각 개성이 달랐지만 모두 세심하고 꼼꼼하게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그리고 힘든 아사나가 있으면 밀고 당겨주며 아사나를 완성시키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심지어 비명을 지르기에는 너무나 차분한 공간이기에 내적 고통도 견뎌내야했다. 그렇게 선생님의 도움으로 몇 번 아사나를 완성하고 나면 금세 몸이 풀어졌고 홀로 완성은 못하더라도 수련이 한결 수월해졌다. 무엇보다 완성의 맛을 보았으니 꼭 아사나를 완성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라 수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요가원을 다니는 동안은 모든 일정이 요가에 맞추어져 있었다. 요가 전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았기에 식사 시간이나 친구들과 약속도 수업시간을 고려해서 정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가를 하고 오면 체력이 남아있지 않아 쉽사리 다른 일정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가가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살다 보니 살아졌던 삶이 온전히 살아내고 싶은 삶이 되었다. 맑게 깨어있는 마음이 하루하루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요가를 하고 나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