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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May 07. 2020

요가원에서 짙게 느낀 요가의 맛 2

요가에 매진한 방학을 보내고 프랑스로 돌아와 바로 요가원을 찾았다. 집에서는 조금 멀었지만 아쉬탕가 요가를 전문으로 수련하는 곳이었다. 이름마저 요가 아쉬탕가 마르세유 엑상프로방스의 약자였다. 요가원 입구가 몹시 비좁은 바람에 문을 열자마자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덕분에 일사천리로 등록을 마칠 수 있었는데, 등록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것이 수강비가 적힌 수표를 편지 봉투에 넣고 내 이름을 적는 것이 전부였다. 곧바로 수업을 듣기 위해 탈의실에 올라갔다. 다락방을 연상케 하는 작고 낮은 탈의실이었다. 그래도 그 작은 공간에 커튼이 달린 샤워실도 있고 옷가지를 담을 수 있는 바구니와 수건이 들어찬 서랍도 있었다. 그리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다. 그런데 칸막이는 없었다. 당황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구석에서 조심조심 옷을 갈아입었다. 여기서 민망해하는 사람은 나뿐인 걸까 궁금했다. 무사히 옷을 갈아입고 수련을 하는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높은 천장에 둥그런 종이 갓이 씌워진 조명이 매달려 있었고 벽을 따라 조그만 촛불이 늘어서 있었다. 곳곳에 인도를 떠오르게 하는 시바신 모형과 자그마한 불상이 놓여 있었다. 매우 따뜻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수업은 매번 시바신을 등지고 앉은 선생님이 요가원 소식을 공지한 후 만트라를 외우며 시작했다. 보통 저녁 수업에는 열명 남짓하는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다 모여있었다. 그중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머리가 하얗게 센 것으로 보아 나이가 꽤 있는 듯한 아주머니 한 분과 아저씨 한 분이었다. 아주머니는 한눈에 봐도 근육이 불끈불끈했는데 손바닥 두 개만으로 바닥을 지탱한 채 온몸을 가벼이 들어 올릴 정도였다. 또 배가 볼록 튀어나온 아저씨는 바닥에 닿지 않는 손을 끙끙 뻗으며 겨우 겨우 수련을 이어갔다. 가끔 아저씨가 쉬이 넘을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하면 선생님이 각종 도구를 가져와 도와주었다. 한 번은 기다란 쿠션 다섯 개로 둘러싸인 아저씨가 모두 자기를 쳐다보겠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수업마다 매번 마주치는 이 두 분은 아사나를 잘하는지에 상관없이 꾸준히 수련하는 노장의 모습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선생님은 제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 세 사람이었다. 회색빛 머리칼을 가진 줄리엣 선생님은 힘 있는 목소리로 구령을 외치고 우아하게 움직이는 손으로 자세를 표현했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멋진 손놀림이었다.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른 사비트리 선생님은 단단한 내면이 밖으로도 비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수련을 하다 그것이 익숙해졌다 싶으면 그제야 다가와 정확한 자세를 다시 알려주었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 차곡차곡 아사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곱슬머리를 가진 아미나 선생님은 항상 환하게 웃으며 밝은 에너지로 수업을 진행했다. 한 달에 한번 있는 마이솔 주간에서 가장 많이 만난 선생님도 아미나였다. 선생님의 구령 없이 스스로 수련을 이어가는 마이솔이기에 맞춤식으로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아미나는 내가 해내지 못하는 아사나를 할 순서가 되면 먼저 다가와서는 함께 해보자며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사나가 너무 어려우면 그에 필요한 근육과 유연성을 기를 수 있는 다른 동작을 알려주었다. 그녀들과 함께 수련하며 많은 아사나를 시도하기보다는 기초가 되는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때가 되어 마르세유를 떠날 때 가장 아쉬운 것이 이 요가원이었다. 4개월을 살았지만 언제나 낯설었던 마르세유에서 무사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요가 덕이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요가에 집중할 수 있었고 요가에 빠져있었기에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 하던 마음도 사라졌다. 이미 내 손에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애당초 잡을 필요가 없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 멀리를 바라보지 않고 눈 앞에 있는 오늘을 살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마르세유에서는 햇빛에 반짝거리는 바다와 그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던 나날들만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저녁 항구 앞을 지나 요가원에 가던 길이며, 수련을 마치고 지친 몸을 누여 잠시 선잠에 들던 때며, 새벽 깜깜할 때 들어가 환히 밝았을 때 요가원을 나서며 하루를 시작하던 활기며, 모두 훗날에 자주 떠오를 기억이었다. 아미나와 마지막 수업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마르세유든 어디서든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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