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아 May 09. 2020

요가원에서 짙게 느낀 요가의 맛 3

마르세유를 떠나 파리로 이사하며 새로운 요가원을 찾았다. 마이솔 수업을 듣고 싶어 찾던 중 아미나와 사비트리가 일본인 선생님 한 명을 추천해주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나오는 요가원이 새집과 가까웠기 때문에 고민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요가원에 찾아가 3주 동안 마이솔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마이솔 때문에 찾아갔지만 시간표를 빼곡히 채운 아쉬탕가, 하타, 인양, 아헹가, 쿤달리니, 필라테스 등 다양한 수업들에 너무나 구미가 당겼다. 게다 첫 등록 시에만 이용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원래 수강비보다 훨씬 저렴했다. 요가원은 전체적으로 새하얀 벽으로 이루어져 몹시 세련되고 몹시 정갈했다. 수련실이 두 개, 탈의실이 두 개, 화장실과 샤워실에 마사지실까지 있었다. 안내데스크가 있는 입구도 몹시 널따랐는데 판매를 위한 요가 용품들이 여백의 미를 존중하는 듯 알맞게 거리를 둔 채 진열되어 있었다. 현관문 옆에는 레몬을 잘라 넣은 물병과 유리잔도 준비되어 있었다. 종종 너무 일찍 도착할 때면 이 완벽하게 꾸며진 공간에서 쭈뼛쭈뼛 앉아있어야 했다.


체험 프로그램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몽롱한 듯 날카로운 인상을 남긴 아쉬탕가 선생님은 춤을 추듯 몸을 풀며 수업을 시작했다. 또 다른 아쉬탕가 선생님은 쾌활하고 호탕하게 수업을 진행했고 호흡을 세는 사이사이에 미소를 지으라는 지시를 추가하기도 했다. 하타 선생님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어려운 동작을 스르르 완성했다. 그녀는 수첩에 적어온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읽으며 수업을 마쳤다. 인요가 선생님은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다만 아사나에서 버티는 시간이 몹시 길었기에 선생님을 볼 기회가 적어 얼굴이 영 기억나지 않는다. 아헹가 선생님은 어깨를 활짝 펴고 꼿꼿한 자세로 수업 내내 바삐 움직이며 지시를 내리고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영국인 필라테스 선생님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쉼 없이 말을 뱉어내 마치 1인극을 보는 듯했다. 그는 수업 중에 종종 프랑스어 단어를 묻기도 하고 종종 아몬드도 먹었다. 쿤달리니 선생님은 계속 눈을 감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에 수업 내내 그녀의 목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게다가 팔을 위아래로 휘젓는 동작을 하도 반복해서 어깨가 빠질 것 같은 고통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기분이 한껏 신나 보였던 아쉬탕가 선생님이다. 그는 ‘헤이 친구들, 힘내라구’ 같은 말을 리듬감 넘치게 내뱉으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이렇게 꾸러기 같은 요가 선생님은 처음이어서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수업 내내 노래를 틀었는데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종이 울리는 소리는 그의 흥을 따라잡기에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대부분 이미 들어본 대중가요였지만 어느 한곡 때문에 모든 노래가 머리에서 잊혀졌다. 다리를 펴고 서서 몸을 반으로 접는 자세를 하고 있는데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화 인셉션의 사운드트랙이었다. 이 극적이고 웅장한 노래에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이렇게 몸을 접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기분이었다. 더 극적인 자세를 하며 눈에 눈물이라도 맺혀야 할 것 같았다. 노래는 점점 절정에 올라 온갖 악기가 제 소리를 내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데 겨우 몸이나 굽히고 있는 내가 우스워보였다. 웃음을 겨우 참으며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참으로 가혹한 수업이었다.


아쉽게도 체험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 찾아온 전염성 높은 바이러스 때문에 마이솔 수업은 듣지 못하고 파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여러 수업을 체험했다는 데에 매우 감사하다. 요가를 수련하는 것만큼 개성 강한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색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요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수련을 하며 스스로를 만나고 이해하는 시간이 잦아지다 보면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세도 수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 아닐까. 요가를 통해서 하루를 마주하는 열린 에너지를 얻고, 삶을 스스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얻고,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얻을 수 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고난과 그만큼 튼튼해진 몸은 덤이다.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요가원에 다니지 못하고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처럼 집에서 홀로 수련하고 있다. 그러나 나를 지도해주었던 선생님들과 함께 수련했던 학생들이 마음에 남아있기에 예전과는 다르다. 요가원에 다니며 익혀야 할 수많은 아사나들이 있고 그것들을 수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삶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일 때는 알지 못했던, 요가원에서 짙게 느낀 요가의 맛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가원에서 짙게 느낀 요가의 맛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