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수련은 생각보다 평화롭지 않다. 작은 매트 위에서 벌어지는 조용하지만 몹시 치열한 나와의 싸움이다. 물론 그 치열함이 종종 거친 숨소리로 튀어나올 때도, 간혹 가다는 단말마 같은 신음이나 육두문자가 되어 입가에 잠시 머무를 때도 있지만 겉보기에는 조용한 것이 보통이다. 또 보통은 수련의 흐름을 온전히 이어가기 위해 몇 번이고 숨을 골라야 하고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힘을 쥐어짜 동작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한 동작 한 동작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끝에 다다르고 매트 위에 누워 꿀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렇게 눈을 감고 누워있다 문득 이 과정이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나를 어르고 쥐어짜며 살다가 끝이 오면 이토록 평화로운 것. 수련을 건성으로 해 몸이 충분히 깨어나지 않으면 휴식도 개운치 않은 것처럼 삶과 죽음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가가 나의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요가를 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요가가 삶의 이유라는 거창하고 절박한 사정은 아니고, 그저 매트 위에서 고군분투할 때 가장 살아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의 호흡에 가장 집중하는 시간이고 나의 온몸이 생생히 살아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가를 하는 이유가 오로지 요가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요가를 수단 삼아 이루려는 다른 목적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 서기를 완성한들 연꽃 자세를 숙련한들 내 삶에 바뀌는 것은 없다. 나의 마음이 바뀌기는 하겠으나 삶에 실용적인 변화는 가져오지 않는다. 아, 우연히 발견한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아르다 밧다 파드모타나아사나를 할 때처럼 발을 골반까지 들어 올려 허리를 숙이지 않고 발을 닦았을 때 수련이 제법 유용히 쓰일 수도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우스갯소리로 던지는 이런 사소한 쓸모 말고 요가 자세가 일상에서 쓰일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요가의 이유는 온전히 요가 자체에 있고, 그것은 오로지 매트 위에 있는 나에게만 해당된다.
매트를 벗어나면 내가 했던 동작들은 오로지 그것들을 받아들인 내 몸 안에만 남을 뿐이다. 당연히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고 타인의 수련 역시 내게 전달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아무리 티칭을 해주어도 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선생님에게 더 바른 자세를 안전하게 수련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지 수련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말 그대로 혼자만의 싸움이다.
또한 요가는 어딘가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과 그때에 존재하기 위한 수련이다. 그래서 수련을 하는 동안 자세를 완성시키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손쉽게 할 수 있던 자세에서 갑자기 흔들릴 수도 있고 어떤 자세는 몇 달을 끙끙대며 노력해도 해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저 온전한 자세에 다다르려 정성스레 호흡하고 몸을 가누었다면 그날 수련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는 그곳에 이르리라는 믿음, 그리고 이르지 않더라도 노력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확신이 있으니 되었다. 요가에는 수련을 하는 시간과 수련을 하는 나만이 존재한다.
물론 수련을 함께하는 이가 있다면 에너지를 나눌 수도 있고, 요가에 대해 깊고 열띤 이야기 꽃을 피울 수도 있다. 또 몸이 튼튼해질 수도 있고, 요가를 통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그것들을 위해 요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수련을 하다 보니 어쩌다 얻게 된 것뿐이고 또 어쩌다 그것들을 잃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련은 계속될 것이다. 애초에 요가 수련을 하는 이유는 그 자체에 있었으니까.
요가가 이러한 것처럼, 삶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 존재의 이유는 그 자체에 있다. 내가 열심히 살았는데 죽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여 무력감에 빠질 것도 아니고, 또 살면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들 그 삶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개입이 삶을 흔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부의 것이 삶의 목적이 될 수도 없다. 살면서 어쩌다 얻게 된 것은 어쩌다 잃을 수도 있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요가를 하는 동안 내 몸이 스스로 깨어나듯 삶을 온전히 사는 동안 나의 영혼도 깨어날 것이다. 그렇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온전히 삶을 살아내면 된다. 그 순간을 내가 충분히 살았는데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살았으니 그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