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3:16
해본 적이 없다. 금식기도는 해본 적이 없다.
3년 전인가. 소개팅에 번번이 실패하고, ‘도대체 나는 언제’냐며 떼를 쓰는 마음으로 하루 금식에 도전했다가 가족에게 짜증만 내고 늦은 밤 폭식했던 기억만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식후감상문에 고백했듯이) 나는 맛에 살고 맛에 죽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먹기 위해 사는 존재라서 음식을 ‘금’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두려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다이어트 후유증으로 7년 이상 ‘섭식식이장애’를 겪어온 터라 식단을 제한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더 무거운 족쇄가 될 거라 생각했다.
지난 2월 28일.
일생일대 순간이 왔다. 서울에 계시는 목사님으로부터 금식 기도 동참을 권유받았다.
대구 31번 확진자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 전체를 휩쓸고 있던 당시였는데, 코로나 19로 힘들어진 대한민국을 위한 공동체 금식 기도에 함께 참여해달라는 메시지였다. (참고로 나는 대구에 산다.)
망설였다.
‘…. 내가?’
경험이 없으니, 겁부터 났다. 고민하다가 기도를 했다. 결단하고, 참여를 표했다. 나름 비장했다.
“하나님, 저 아시죠? 저는 못해요. 금식은 못해요. 그런데 제 기도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해주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3월 1일. 첫날이었다. 나는 오전 금식과 다니엘 금식을 선택했다. (낮 12시~저녁 6시까지만 식사.)
다니엘 금식이란, 다니엘서 10장 3절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말씀 따라 21일 동안 고기, 밀가루, 설탕과 카페인을 금지하는 식단이었다. 가족도 밤 10시 합심 기도로 공동체 기도회에 동참해주었다.
희한하지. 첫날부터 온 우주가 내 금식기도를 돕는 기분이었다.
하나. 가족이 아파트를 떠나, 팔공산 근처 주택으로 모였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댐이 있는 전원주택이다. 도심에서 벗어난 곳이라 우리 집은 ‘노아의 방주’라며 가족 모두 코로나 19 창궐 중에도 안전하며 안심했다.
둘. 외출과 외식을 자제하던 때라 식단 지키기가 수월했다. 식구들도 내 금식을 응원해주었다.
엄마는 끼니마다 생선, 해산물, 채소, 과일 등으로 맛있게 요리를 해주셔서 금식이 힘든 줄도 몰랐다.
셋. 이게 진짜 신기한데, 가족들이 옆에서 빵을 먹고 고기를 먹어도 ‘유혹’이 되지 않았다. 1식 1 초콜릿, 1일 1 빵을 할 정도로 간식을 좋아하는 내가, 그들을 봐도 무감했다. 예수님이 하고 계신다는 증거겠지.
장점도 많았다.
일. 몸이 가벼워졌다. ‘이보다 더 건강할 수 없다’ 싶을 만큼 몸이 가뿐했다. 건강한 식재료만 먹어서 그럴까.
화장실을 갈 때마다 쾌변 했다. 일명 황금구렁이. 내 속에서 매끄럽게 빠져나온 그가, 너무 신기해서 2초간 멍하니 바라본 적도 있다. 진짜다.
이. 머리가 맑아졌다. ‘아예 못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식탐도 안 생겼다. 되려 줄었다. 늦게 먹지 않고 기름진 종류를 안 먹으니 살찔 일이 없었다. 평안했다. 평소, 살과 체중에 대한 강박이 심해 요일별로 운동량과 시간을 정해놓을 만큼 엄격했는데, 살찔 일이 없으니 운동 강박에서도 벗어났다. 글 작업과 묵상에 시간을 양껏 투자할 수 있었다.
삼. 영혼이 밝아졌다. 이게 진짜다. 핵심이다. 이건 좀, 길게 쓰련다.
3월 21일, 마지막 날.
밤 10시, 가족 기도 시간이었다. 내 차례였다. 그날따라 말씀 묵상 중 ‘회개’라는 단어가 머리에 꽂혔다.
나는 가족들에게 회개해야 한다면서 그들을 다그쳤다.
성경을 더 많이 읽으시라며, 아빠에게 큰소리쳤다. 기도를 너무 적게 한다며, 엄마와 언니를 나무랐다.
장로님과 권사님이 계신 데서, 나보다 훨씬 지혜롭게 믿음 생활하는 언니 앞에서, 나는 목이 곧은 태도와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봤다. 몰지각한 내 언행 탓에, 기도 자리는 엉망이 되었다.
(쪽팔린다.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나갔구나 싶다.)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언니가 내 방으로 왔다. 언니는 나를 위로하며 타일렀다. 조근조근.
“미나야, 네가 기도를 많이 하는 건 좋지만, 신앙생활을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돼. 그리고 난 내 동생이 요즘 좀 걱정돼. 신앙도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섞이면서’ 지켜가야 하는 건데, 요즘 미나는 사람들과 못 섞이고, 겉돌고 있는 거 같아. 하나님도 세상에 스며드는 ‘소금’이 돼라 말씀하셨잖아.”
수긍했다. 언니 꾸짖음에 몹시 부끄러웠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만큼.
사실이다. 나는 기도하고 성경 몇 장 더 읽는다는 이유로, ‘나 정도면’이라 생각했다. 목을 쳐들고 다녔다. 내 기준에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만큼 어리석었다. 말씀에서 자유롭지도 못해 행위마다 ‘율법’에 비추어 봤다. 율법주의자였다. 교만하고 거만했으며 오만했고 자만했다.
늦은 밤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하고, 부모님에게도 반성하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금식기도 마지막 날을 그렇게 보냈다.
...
3월 22일, 저녁.
아빠가 피곤하다며 일찍 방으로 가셨다. 어깨라도 주물러 드릴까 싶어 따라 들어갔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빠 모습인데, 유난히 작고 왜소해 보였다. (우리 아빠 배는, 절대 안 왜소하다.)
아빠를 바라보는데, 여러 감정이 복받쳤다.
부끄러움, 죄송함, 미안함... 부끄러움, 죄송함, 미안함... 감사... .
“미나야, 아빠는 6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 하나님 전적인 은혜로 장로라는 직분도 얻게 되었지. 7살 땐가. 가족도 없고, 돈도 없어서, 사람들이 아빠를 다 외면할 때 유일하게 아빠를 사람 취급 해준 곳이 교회였어. 세상이 나를 버렸을 때, 하나님만 나를 건져주셨지.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를, 하나님이 선택해주셨어... 가정도 이루게 해 주시고, 우리 미나 아빠로도 살게 해 주셨지.
아빠는 참 가진 것 없이 살아서 그런가. 모든 조건이 잘 갖춰진 미나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 미나를 참 사랑하시는구나 느낄 때가 많아. 늘 감사하지.
미나야, 미나는 이제 겨우 서른이잖아. 모든 걸 즐길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청춘! 그래서 아빠는, 우리 미나가 회개하고 반성하고, 자책하며 기도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은혜를 누리면서 마음껏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저 엄마 아빠 살아계심에 감사, 먹을 음식과 입을 옷 있음에 감사, 하고 싶은 글 쓰는 일 할 수 있음에 감사, 신앙 동역자인 가족들 있음에 감사… 아빠는 미나가 그렇게 하나님 사랑 안에서, 은혜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단다. "
눈물이 폭포수같이 쏟아졌다. 콸콸.
아빠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말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메시지로 들렸다. 분명했다.
율법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나를 깨트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날을 허락하심을 알았다.
‘행위’에 매여 ‘중심’을 바라보지 못하는 닫힌 눈을 열어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금식을 결단하셨음을 알았다.
오직 나를 위해, 금식 기도를 계획하셨음을 알았다.
아빠가 내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기도를 해주시는데, 내 몸을 감고 있던 모든 사슬이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고린도후서 3장 15~16절. 아멘 아멘!
정말이다. 내 얼굴을 덮고 있던 수건이 벗겨지던 그 순간을 난 잊지 못한다. 잊을 수 없다.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말씀을 오감으로 느꼈다. 몸으로 체감했다. 삶으로 경험했다. 하나님 말씀은, 진짜 살아있다.
대한민국을 위한 공동체 기도 자리에 내가 도움이 되기를 바랐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 나를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셨다. 또 내게 일방적인 은혜를 주셨다.
금식기도를 통해 나는 배웠다.
금식기도는, 내 혈기로는 할 수 없음을.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할 수 있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금식기도에 대한 결단이 든다면,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신다는 신호다.
자신이 없다면, 우선 기도하고 여쭤보자. 예수님이 도와주신다.
겁내지 마라. 하나님이 하신다.
기대만 하라. 하나님이 만나 주신다.
2020년 3월1일~3월 22일 생애 첫 금식 기도로 “하나님이 하셨네”라는 간증을 할 수 있도록
이 글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지금도 뜻을 정하여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는 모든 분들의 헌신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아멘.
*금식기도가 필수라는 글이 아닙니다. 금식 기도를 통해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