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문통을 아세요? 성교통은요?
잘못된 습관이 성교통을 일으킨다.
서울에서는 꽤 먼 동네에서 젊은 여성이 진료를 받으러 왔다. 수심 가득한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온 그녀는 엊그제 내린 폭설과 연이은 한파로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수심 가득한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와 이내 침착하게 자신의 불편함을 설명해주었다.
“외음부가 아파서 성관계가 잘 안 돼요.”
관계를 가지면 너무 아파서 며칠은 끙끙 앓으면서 속으로 달랜다는 그녀는, 여러 해 동안 사귄 남자 친구가 이해하는 듯하다가도 아픈 티를 내면 이내 화를 낸다고 덧붙였다.
아직은 젊은 20대 후반. 살아야 할 날이 길고, 임신을 해서 아이를 여럿 낳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현재의 고통이 이런 희망을 도리어 고문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했다.
‘엄마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성교통을 누가 이해해줄까? 아니, 이해를 떠나서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사이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어떤 곳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간단한 질염이라고 진단했고, 어떤 곳은 아픈 부위에 여러 대의 주사를 놓기도 했다. 그럴 땐 고통에 몸서리쳤지만 나을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꾹 참아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마음은 곪아가고 있었다.
나는 일단 그녀의 아픈 부위를 아주 조심스럽게 진찰했다. 그녀 말대로 주사를 맞은 흔적이 여기저기에 작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꼭 필요한 검진도 해보았다. 그러다 여성의 성기, 즉 질의 입구가 마치 연두부를 만지듯 약해진 걸 발견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양측에서 만들어져 하나로 붙으며 태아로 성장해간다. 그래서인지 몸의 한가운데 부분은 상처가 잘 나는데, 아이를 낳을 때는 그 부위가 자연스레 찢어지거나 혹은 일부러 회음절개(아이가 잘 나오도록 회음부를 가위로 절개하는 일)를 하기도 한다.
그녀의 회음부는 아랫부분이 너무 약해서 간단한 진찰만으로도 화선지가 찢어지듯 갈라졌다. 얼마나 아프고 불편할지…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같이 찢어지는 듯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회음부가 약해졌을까? 이유를 찾던 나는 그녀에게 평소 외음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어보았다. 어리둥절해하던 그녀는 이내 내가 예상하던 답변을 내놓았다.
“어느 날 갑자기 외음부가 아프고 분비물 양이 평소보다 많아져서 뭔가 문제가 생긴 줄 알고 깨끗이 씻기 시작했어요. 비누와 세정제로 세게 씻고, 주변에서 좌욕이 좋다고 해서 뜨거운 물로 좌욕도 수시로 했고요.”
그렇게 몇 년을 했는데 도리어 증상이 악화되자 인터넷에서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나를 찾아온 것이다.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이처럼 잘못된 세정으로 다양한 문제를 겪다가 나를 찾아온다. 여성의 몸은 생리를 시작하면 호르몬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비물이 나오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성기가 건조해져서 온갖 염증과 불편함에 시달릴 것이다. 실제로 폐경 이후 많은 여성이 이런 문제로 말 못 할 불편을 겪는다.
이 자연스러운 분비물을 없애려고 지나친 세정을 반복할 경우, 점막조직인 질과 배변 및 생리로 많은 일을 해내는 외음부가 연화되어 만지기만 해도 쩍 갈라질 만큼 약해질 수 있다. 오늘 나를 찾아온 이 환자처럼 말이다.
20년 넘게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이처럼 아주 작은 생활 습관이나 잘못된 정보 때문에 병을 키우는 일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와중에 비즈니스로 단단히 무장한 여성용품 업계의 광고와, 광고비를 받고 나타난 유명인들의 한마디를 들으면 ‘여성성과 여성의 성기를 이용해 장사하고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시골 출신의 무명 의사가 아무리 조언해봐야 비전문가인 유명인이 한마디 하는 것만 못하니, 이럴 땐 나의 미미한 영향력이 정말이지 밉고 싫어진다. “내가 유명해져서 몇 마디만 해도 다들 집중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고, 여성의 건강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될 텐데”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나도 보통의 산부인과 의사처럼 ‘그러려니’ 하고 불편하다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치료해주면 그만인데, 그렇게 살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하다가도, 여성들이 이런 상술에 휘둘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신을 케어해가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고개를 내젓는다.
문화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간다. 나부터 이런 건강한 여성 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오늘도 부족하나마 짧은 글을 적어본다.
▶ 음문통(vulvodynia): 눈에 띄는 변화나 신경적 이상 없이 나타나는 외음부의 불편감을 말한다. 성적인 접촉을 시도할 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성교통이라는 말로 혼용되기도 한다.
음문통은 ① 일반적인 접촉만으로도 통증이 유발되는 경우, ② 하나 이상의 신경을 따라 발생하는 통증, ③ 전정염(질 입구의 조직에 염증이 생기는 것), ④ 질경련 등의 종류가 있다.
최근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성교통 증상을 보이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간의 진료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과다한 세정과 화학물질 혹은 환경호르몬에 노출된 게 주원인인 것 같다.
널리 알려진 병은 아니지만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당사자는 물론 파트너도 위축되기 쉽고,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아주 괴로운 질병이다. 이러한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올바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