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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minalee Jan 23. 2021

산부인과 안경쓰고 세상보기 2

여성 넷 중 하나는 갖고 있다는 자궁근종

창백하고 여리여리하다는 표현은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감성적인 사람은 청순가련한 그녀를 보고 한 떨기 난을 떠올리겠지만 이과형인 나는 단번에 ‘빈혈이 심하고 피곤하게 사는 여인이구나’ 임시 진단을 내린다.


문득 감성이라곤 개미 눈물만큼도 없다던 딸내미들의 원성이 떠올랐지만, 어쩌랴. 감성에 휘둘렸다면 여태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외롭고 쓸쓸한 의사 노릇을 하면서 너희들 뒤치다꺼리까지 제대로 했겠느냐 혼자 반문해본다. 


그녀는 말소리도 작고 가늘었다. 


“오래전부터 자궁근종이 있었어요. 수술을 권유받았는데 몇 년째 사정이 있어서 수술을 못하고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진찰대에 올라간 그녀의 배는 5개월 차 임산부나 복부비만이 있는 사람처럼 볼록 올라와 있어서 단단한 혹이 손으로도 만져졌다. 


난 그 배를 만지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몹쓸 근종이 그녀의 몸에 자리 잡고 이토록 커질 때까지 환자가 겪었을 괴로움을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그녀는 생리통과 생리과다로 인한 빈혈,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는 불안증은 물론, 자궁 안에서 커진 근종이 각각 방광과 대장을 압박하여 빈뇨와 야간뇨, 변비로 고생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수술을 받지 않으셨냐고 묻자 그녀가 조심스레 딸 이야기를 꺼낸다. 딸이 예체능 쪽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인데, 매일 딸을 학교에서 학원으로 나르고, 간식을 챙기고, 실기시험 준비를 직간접적으로 도우면서 수술 날짜를 계속 미루게 됐다는 것이다. 


나 역시 세 딸을 키우면서 우리나라 대학 입시의 피 말리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터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예체능 쪽은 수험생의 육체와 정신을 한계에 몰아붙여야 하니, 재수에 삼수까지 거듭하며 모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무엇보다 자궁 안에 열 달 품어 낳은 딸을 위해 온갖 불편을 감수하며 근종을 품고 살아온 그녀를 보고 같은 엄마로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궁근종은 자궁의 근육층에서 생긴 양성종양으로, 나무로 치면 옹이가 생긴 것과 같다. 근종이 단단하고 커지면 생리양이 많아지면서 빈혈이 생기고, 심한 월경통까지 일으켜 한 달 중 상당 기간을 고통스럽게 지내야 하는 질환이다. 


근종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에너지를 먹으면서 스스로 자란다. 우리 몸에 기생하는 셈인데,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가져간다. 그래서 평소보다 피곤함을 느끼고, 과다한 생리양으로 빈혈이 생기며, 심장이 적은 양의 피로 온몸을 먹여 살리느라 그야말로 쉬지 않고 펌프질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슴이 과도하게 뛰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심하면 심부전에 이르기도 한다. 


자궁근종은 젊은 여성부터 나이든 여성에 이르기까지 4명 중 1명은 가지고 있을 만큼 흔한 질병이다. 그렇다면 어떤 여성에게 자궁근종이 생기는 걸까?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혈액순환의 장애로 근육의 수축이 지속되어 점점 단단해지고 커지면서 근층을 파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환경호르몬에 노출되거나 이를 흡수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호르몬이 작용하는 생식기, 특히 유방과 자궁에 암과 종양을 일으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환경호르몬의 정식 명칭은 내분비계 교란 물질인데, 체내에 들어가서 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하여 체내환경을 혼란시키는 물질을 일컫는다. 오죽하면 이름도 환경‘호르몬’이겠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과 이들이 분해되어 생긴 미세플라스틱, 열을 가한 일회용기는 물론, 오염된 대기에서도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다.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흡수된 비스페놀, 프탈레이트, 다이옥신 등이 몸 안에 쌓이면서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호르몬을 줄이는 일은 여성의 몸을 보호하고 병을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일회용기 대신 개인 물통이나 컵 사용하기, 음식을 보관할 때 가급적 비닐 랩 사용하지 않기, 쓰레기 배출 최소화하기, 유기농 농산물 애용하기, 자동차 공회전 줄이기 등 일상의 사소한 실천만으로도 사회적으로 보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이라도 범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개인의 식생활 측면에서는 기름에 탄 음식을 피하고, 항산화작용이 풍부한 자연식품(예: 브로콜리·양배추 같은 십자화과 식물, 해조류 등)을 매일 섭취하여 독성 물질을 몸에서 빨리 배출시키는 게 좋다. 


자궁근종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치료방침을 세워야 하는데, 증상이 적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간혹 육종(sarcoma)이라고 불리는 악성종양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피임을 해야 하거나 생리양이 많은 경우, 먹는 피임약을 처방받거나 호르몬제를 매일 복용하면 근종 때문에 발생하는 생리과다와 통증을 줄일 수 있다. 당장 임신 계획이 없거나 이미 아이를 낳은 경우, 호르몬함유 루프(미레나) 등을 시술하면 위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만 근종 때문에 루프가 제자리에서 밀려나거나 빠질 수 있으니 자주 병원에 가서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작은 시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자궁근종은 혈액을 공급받으면서 커지기 때문에 근종으로 가는 혈관을 막아서 근종을 굶겨 줄어들게 만드는 색전술이 효과를 보일 때도 있다. 최근에는 근종의 한가운데 고주파 시술을 하여 안에서부터 녹아내리는 원리를 이용해 근종을 줄이기도 한다. 복강경 수술을 통해 근종을 정확하게 도려내는 방법도 있다.


근종이 아주 심할 경우, 개복해서 자궁 전체를 들어내는 안타까운 수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자궁을 적출한다고 해서 여자의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수술 후 삶의 질이 높아지고 건강해져서 만족하는 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모든 치료는 항상 쉽고 저렴한 방법부터 시작해서 점점 수술과 같은 침습적이고 큰 방법으로 가는 게 올바른 치료가 아닌가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치료가 이 시점에 이 환자에게 최선인가’를 평가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경험이 풍부한 의사에게 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이들이 전문가의 말보다 친한 친구, 아는 언니, 엄마의 말을 더 믿고 신뢰한다. 자궁근종은 위치와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증상을 보이므로 ‘옆집 언니는 어쨌다더라, 엄마는 수술 안 하고 좋아졌다더라, 친구는 무슨 약을 먹었다더라’ 같은 주변 이야기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 근종의 위치와 크기를 확인하고, 자신에게 맞는 치료방침을 결정해야 한다.


때때로 주변 사람들 말만 믿고 병을 방치하다가 손쓸 수 없는 시점에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만큼 의사가 멀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걸까 반성도 한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이들에게 때로는 언니, 동생이 되어주고, 때로는 엄마가 되어주려 노력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 역시 여성으로 50년을 넘게 살았고, 엄마와 이모들이 있으며, 20대의 세 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나를 찾아온 환자들이 남 같지 않고 꼭 내 식구 같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내 동생이나 언니, 혹은 엄마나 딸이라고 생각하면 나 역시 마음이 편해진다. 의사로서 고민되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도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면 쉽게 실마리가 풀리곤 한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역시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마지막 잔소리를 덧붙인다. 여성의 자궁과 난소는 하복부 배꼽 아래 위치하고 있으며 손으로 만졌을 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아야 한다. 혹 무언가 만져진다면 이상이 생긴 것이므로 바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 몸에 조금만 더 관심을 주자! 그게 바로 내 몸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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