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콘다(2025)」

뱀보다 ‘장르로서 잭블랙’을 남긴 영화

by 민초매니아

원작의 귀환보다 더 선명하게 남는 것은 거대한 뱀이 아니라, 끝내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려는 한 배우의 과잉된 열정이다


1997년의 「아나콘다(2025)」는 묘한 영화였다. 당시에는 스타 캐스팅을 앞세운 크리처 무비였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진지한 공포영화라기보다 과장과 과잉, 우스꽝스러움까지 함께 소비하는 컬트 텍스트로 다시 자리 잡았다. 「아나콘다(2025)」는 바로 그 어정쩡하면서도 오래 남는 유산 위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작을 그대로 다시 만드는 길보다, 원작을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서사의 중심으로 끌고 들어오는 길을 택한다. 소니 공식 시놉시스가 “이것은 리부트가 아니다”라고 못 박을 정도로, 이 작품은 원작의 줄거리 재현보다 ‘그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왜 다시 그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가’에 훨씬 더 관심을 둔다. 더그와 그리프라는 두 친구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한 「아나콘다(2025)」를 다시 만들려는 꿈을 품고 있다가, 중년의 위기 끝에 아마존으로 들어가 촬영을 시작하고, 그 와중에 진짜 거대한 아나콘다가 나타난다는 설정은 이 영화의 관심사가 괴수 자체보다 영화 만들기의 욕망에 더 가까이 놓여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래서「아나콘다(2025)」를 보고 나면 아주 이상한 역전이 일어난다. 제목은 분명 「아나콘다」인데, 막상 끝까지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는 것은 뱀의 비늘이나 습격 장면보다 사람의 얼굴과 몸짓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잭 블랙이라는 배우가 영화 전체의 톤을 어떻게 자기 식으로 끌어당기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액션 어드벤처 코미디 호러이고, 산업적으로는 메타 리부트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감독은 톰 고미칸이고, 각본은 고미칸과 케빈 에튼이 함께 썼으며, 잭 블랙과 폴 러드, 스티브 잔, 탠디웨 뉴튼, 다니엘라 멜키오르, 셀톤 멜로가 출연한다. 이 숫자들과 장르 분류만으로는 이 영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끝내 관객에게 건네는 감정은 “뱀이 무섭다”보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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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장르로서 잭 블랙”일 것이다. 잭 블랙은 오래전부터 단순한 코미디 배우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기능해 왔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영화는 특정한 기운을 갖는다. 과잉된 열정, 약간은 민망할 만큼 진지한 태도, 유치함을 숨기지 않는 몸의 움직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추진력, 그리고 어딘가에서 늦게 도착한 사람 특유의 조급함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그래서 잭 블랙이 있는 영화는 단순히 웃긴 영화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는 코미디와 애잔함, 슬랩스틱과 창작의 절실함, 허세와 상처가 한 프레임 안에서 뒤섞인다. 「아나콘다(2025)」는 바로 그 뒤섞임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이 영화의 핵심은 거대한 뱀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거대한 뱀이 나타나는 상황 속에서 잭 블랙이 어떤 종류의 인간적 과잉을 끌고 들어오느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아나콘다(2025)」는 괴수영화라기보다, 잭 블랙이라는 배우가 한 편의 메타 리부트를 어떻게 자기 장르 안으로 끌어들여 버리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이 작품을 두고 “뱀 영화”라고만 부르면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출발점을 갖는 이유는, 리부트를 둘러싼 할리우드의 익숙한 문법을 정면으로 비틀기 때문이다. 보통 리부트는 원작의 세계관이나 캐릭터를 현재의 기술과 감각으로 다시 포장해 내놓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아나콘다(2025)」는 “우리가 왜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가”를 먼저 질문한다. 이 질문은 산업적으로 보면 IP 재활용의 자기반영성이고, 서사적으로 보면 한때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중년이 되어 다시 자기 욕망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원작이 단지 오래된 텍스트가 아니라, 어떤 세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상상력의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원동력은 향수 자체가 아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정만으로는 이 영화의 우스움도, 그 속의 쓸쓸함도 설명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좋아했던 것을 다시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나이와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다시 몸을 던져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마음을 리부트라는 외양으로 감싼다.


더그라는 인물은 바로 그 감정의 중심에 있다. 그는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지금은 웨딩 비디오를 찍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여기에는 이 영화가 아주 영리하게 건드리는 현대적 비애가 숨어 있다. 그는 카메라 곁을 완전히 떠난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이미지와 프레임과 기록의 세계 안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영화를 만드는 삶과는 분명 다르다. 그는 꿈을 완전히 버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꿈을 제대로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던 일을 생계의 언저리에서 비슷한 형태로만 만지작거리며 살아가는 사람, 창작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기술만 남은 사람, 한때는 자기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남의 결혼식을 기록하며 남의 중요한 순간을 찍는 사람.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더그는 웃기기 전에 먼저 서글픈 인물이 된다. 그리고 잭 블랙은 이 서글픔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정확히 품는다. 처음의 더그는 잭 블랙 특유의 폭주형 코미디와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눌려 있고, 스스로를 크게 드러내지 못하고, 타협된 삶 안에 자신을 우겨 넣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마존으로 향한 뒤 상황이 꼬이고, 촬영이 엉망이 되고, 생존과 영화 만들기가 이상하게 뒤섞이기 시작하자 더그는 점점 달라진다. 그는 우스워질수록 진심이 드러나는 인물, 진심이 커질수록 더 우스워지는 인물로 변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잭 블랙이라는 배우가 본색을 드러낸다.


잭 블랙의 강점은 대개 ‘과장된 연기’라고 단순하게 말해지지만, 실은 그 과장 안에 늘 시간 감각이 들어 있다는 데 있다. 그는 늘 너무 늦은 사람처럼 보일 때가 많다. 타이밍을 놓쳤고, 이미 사회적으로는 다른 선택지가 굳어졌으며, 이제 와서 다시 진심을 꺼내기엔 민망한 시점에 도착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그는 기어이 다시 뜨거워진다. 이때 생기는 웃음은 단순한 몸개그의 웃음이 아니다. 관객은 저 사람의 과열을 보며 웃지만, 동시에 저 사람은 왜 이제 와서 저렇게까지 애를 쓰는가를 느끼게 된다. 「아나콘다(2025)」의 더그는 바로 그런 잭 블랙형 인물의 성숙한 변주다. 젊은 시절의 무모함이 아니라,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 속에서 나오는 무모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그가 영화에 집착하고, 장면에 매달리고, 위기 속에서도 연출 욕망을 버리지 못할 때, 그 모습은 바보 같으면서도 묘하게 절박하다. 잭 블랙은 그 절박함을 늘 웃음 쪽으로 흘려보내지만, 끝까지 완전히 지워 버리지는 않는다. 이 미묘한 감정의 잔여가 이 영화를 그냥 한 철 웃기는 괴수 코미디로 끝나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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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러드가 연기하는 그리프는 이런 더그의 과열을 받쳐 주는 또 다른 축이다. 더그가 좌절된 창작자라면, 그리프는 성공하지 못한 배우의 허풍과 낙천주의를 체질로 가진 인물이다.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신감은 때로 공허하고 때로 무책임하다. 그런데 폴 러드의 얼굴과 목소리, 그 사람이 지닌 특유의 가벼운 매력은 이런 캐릭터를 완전히 비호감으로 떨어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그와 그리프의 관계는 단순한 버디 무비의 장난으로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실패를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한다. 더그는 그리프를 보며 아직도 뭔가를 꿈꿀 수 있다는 착각을 얻고, 그리프는 더그를 보며 자기가 잃어버린 진심의 밀도를 떠올린다. 이 둘의 조합이 중요한 이유는, 이 영화가 뱀과의 대결보다 결국 “이 두 사람이 왜 다시 함께 영화를 찍고 싶어 했는가”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나콘다(2025)」는 대자연 속 생존담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실패한 두 남자가 한 편의 영화를 핑계 삼아 다시 자기 욕망을 확인하는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맞다.


이 영화가 끝내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버디 코미디의 정서가 단순한 복고 취향과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잠깐, 영화를 사랑한 사람들이 직접 다시 찍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몇몇 영화들이 스쳐 지나가듯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아나콘다(2025)」의 관심사는 거기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중년의 좌절, IP 리사이클링 시대의 자기풍자, 그리고 “한 번쯤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뒤늦은 욕망 쪽으로 간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정글은 단지 모험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눌려 있던 창작 충동이 다시 표면으로 솟구치는 공간이다. 정글에 들어간 순간 이들은 더 이상 안전한 일상 속 타협된 어른들이 아니다. 그들은 다시 어설프고, 다시 바보 같고, 다시 무모해진다. 그리고 그 무모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장 사랑하는 인간적 상태다.


이 지점에서「아나콘다(2025)」는 리부트에 대한 영화라기보다, 리부트를 핑계로 자기 세대의 감정을 꺼내 놓는 영화가 된다. 지금 할리우드는 기존 성공 IP를 어떻게 다시 조립해 현재의 시장에 맞게 내놓을 것인가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런 산업 안에서 “원작 자체를 다시 찍고 싶어 하는 인물들”을 내세운 이 영화는 아주 노골적인 자기반영성을 띤다. 하지만 그 자기반영성은 냉소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했던 것을 다시 건드릴 때 생기는 어색함, 원작을 사랑했던 마음과 지금의 산업 논리 사이의 거리감, 그리고 그 둘을 한꺼번에 끌어안고도 어쨌든 뭔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창작 충동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할리우드 리부트 열풍을 비웃으면서도, 동시에 리부트라는 형식이 왜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지를 알고 있다. 과거의 텍스트는 단지 자본이 재가공하는 상품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정서의 저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메타 리부트로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는 원작을 소비하는 현재의 방식을 비트는 동시에, 그 소비 방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감정까지 안에 품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산업적 해석만으로 읽으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게 된다. 「아나콘다(2025)」는 기본적으로 몸의 영화다. 다시 말해, 아이디어가 영화를 끌고 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배우들의 몸이 분위기를 완성한다. 잭 블랙은 걷는 방식, 소리치는 방식, 겁먹는 방식, 흥분하는 방식, 심지어 진지해지는 방식까지도 모두 조금씩 과장된 리듬을 갖고 있다. 그 과장은 이 영화의 메타성을 설명하는 언어보다 더 직접적으로 관객을 설득한다. 아마존에서의 난장판, 저예산 촬영의 허술함, 위기 속에서도 연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태도, 계속해서 영화와 현실을 뒤섞는 행동은 모두 잭 블랙의 몸을 통과하면서 훨씬 더 구체적인 코미디로 변한다. 그는 텍스트를 수행으로 바꾼다. 이 때문에 「아나콘다(2025)」의 진짜 주인공은 뱀이 아니라 사람이고, 그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잭 블랙이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아나콘다 영화”보다 “잭 블랙 영화”라는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는 명백히 잭 블랙이라는 배우가 있기에 성립하는 종류의 메타 코미디다.

여기에 스티브 잔과 탠디웨 뉴튼, 셀톤 멜로 등이 합류하면서 영화는 한층 더 묘한 앙상블을 만든다. 특히 셀톤 멜로가 가져오는 기이한 진지함과 잔이 던지는 엉뚱한 리듬은 영화 전체를 단순한 스타 투 톱 구조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이들은 각자 다른 결의 코미디를 들고 들어오는데, 그 덕분에 영화는 한 가지 유머 톤으로만 밀리지 않는다. 어떤 장면은 메타 농담에 가깝고, 어떤 장면은 버디 코미디에, 어떤 장면은 거의 슬랩스틱 호러에 가깝다. 이런 혼합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실제 평단에서도 이 작품은 웃음과 호러, 자기반영성과 오락성이 끝까지 완전히 접합되지는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관객 쪽에서는 배우들의 기운과 캐릭터 앙상블이 영화를 밀어 올린다는 반응이 강했다. 이것은 꽤 중요한 지점이다. 잘 짜인 플롯보다 배우들의 존재감과 상호작용이 더 큰 동력으로 작동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시나리오의 정교함보다, 이 엉뚱한 사람들을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힘에 더 가까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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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메타 설정의 영리함이 끝까지 폭발하지는 않고, 괴수영화로서의 긴장감은 종종 버디 코미디의 톤에 밀려 느슨해지며, 풍자의 화살은 가끔 예상 가능한 곳에 꽂힌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완성도보다 더 오래 남는 다른 이유를 갖는다. 「아나콘다(2025)」는 바로 그런 종류의 영화다. 잘 짜인 걸작은 아닐지 몰라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영화. 뱀보다 사람을 더 기억하게 하는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제목은 「아나콘다」인데 정작 다 보고 나면 “잭 블랙이라는 배우는 왜 아직도 이렇게 대체 불가능한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결국 이 작품의 진짜 성취는 여기에 있다. 원작의 무게를 짊어지고 들어와, 그것을 현재의 산업 문법 안에서 비틀고, 동시에 그것을 사랑했던 세대의 쓸쓸함과 욕망을 코미디로 번역해 낸 것. 그리고 그 번역의 중심에서 잭 블랙이 단순한 출연자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처럼 기능하도록 만든 것. 「아나콘다(2025)」는 괴수의 귀환을 알리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한 배우가 오래된 IP를 자기 체질로 재해석해 버리는 과정에 대한 영화다. 그러니 이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거대한 뱀을 다시 불러온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잭 블랙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아직도 현재형으로 작동하는지를 증명한 작품이라고. 뱀은 제목을 가져가고, 기억은 배우가 가져간다. 「아나콘다(2025)」가 끝내 남기는 것은 바로 그 분명한 역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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