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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우리의 길

부모와 자식, 그리고 삶에서 이어지는 모든 인연에 대하여

by 두유진
감자 깎는 엄마와 아들.jpg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Peder Severin Krøyer)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우리 부모와 자식 하늘이 맺어준 이 인연은 단순히 생물학적 혈연을 넘어선 삶의 결을 함께 나누는 동행이다.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감정의 언어, 서로 다른 삶의 속도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우리는 같은 시간 속을 나란히 걷는다. 물론 그 시간의 흐름은 항상 평탄하지 않다. 때 로는 벼랑 끝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서운함과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그 러나 참 신기하게도 가장 평범하고 조용한 어느 날, 그런 모든 벽이 스르르 허물어지는 순간 이 찾아온다. 어느 늦은 오후, 나는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 서 있었다. 모처럼 모인 가족들을 위해 차를 우 려내며, 비록 마주 보진 않았지만, 말없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소리 없이 보내는 시간이 잔잔한 위안과 따스함을 선사했다. 문득 나는 덴마크 화가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가 그린 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그림 속에는 햇살 가득한 야외 한편에 돌담과 돌집이 보인다. 돌담 앞에는 두 명의 집시 여성 이 나란히 앉아 있다. 왼쪽의 젊은 여성은 고운 꽃을 엮으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고, 오른쪽 의 성숙한 여성은 바느질에 집중한 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두 사람의 다리는 모두 편히 뻗어 있고, 그 곁에는 갓난아이가 고요히 잠들어 있다. 언뜻 보면 두 사람은 대화하지 않는 듯해 보이지만, 그림 전체에 흐르는 평온함과 따스함에서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을 느 낄 수 있다. 이 그림을 통해 나는 말 없는 교감과 세대 간의 공감대를 떠올린다. 눈을 맞추지 는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준다. 어머니가 바느질하며 삶의 경험 을 쌓아가는 동안, 딸은 꽃잎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소소한 기쁨을 누린다.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함께 같은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이들이 묵묵히 알려주는 것 같다. 이 모습은 내가 자랐던 가족의 풍경과도 닮았다. 어린 시절, 나는 어머니와 함께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콩나물을 다듬기도 하고 계란 거품을 내며 빵을 만들기 위해 집중했던 장면 들이 기억난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받았다. 부모와 자녀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서로 각기 다른 세계 속 에서 성장해 간다는 것을 그림 속 어머니와 딸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은 말없이 말한다. 부모와 자녀는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 가지만, 함께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성장해 간다.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며 보듬어 주 는 사랑이야말로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이 그림 속 따스한 햇살과 정겨운 표정이 말 해주듯, 우리도 서로 다른 길을 걷더라도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의 곁을 지켜 주며 함께 자라 갈 것이다.- 196 우리는 종종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곤 한다. 가까운 존재일수록 더 잘 알 것이라고 무조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때론 가장 가까운 사이가 가장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세대의 틈은 생각보다 넓다. 자 식은 부모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지만 그 마음속 깊이에 닿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시간이고 설명이 아니라 함께함이다. 함께 요리하는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나누는 그 조용한 동행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같은 길 위, 서로를 배우는 사이 그림을 바라보며 이런 상상을 해본다. 두 명의 집시 여인은 말을 아끼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분주하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 아 래, 한 여인은 오래된 바느질을 고요히 이어가고 있고, 다른 여인은 그 손끝을 물끄러미 바라 보며 속으로 되뇐다. ‘그동안 너도 나처럼, 버티며 지내왔구나.’ 말없이 주고받는 눈빛엔 서로 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것은 오랜 유랑 끝에 마주 앉은 이들의 깊은 존중이다. 서로 다른 상처와 시간을 통과해 온 두 사람의 삶이 이 조용한 풍경 속에서 겹쳐지 며, 작은 안도처럼 머문다. 그건 서로를 향한 깊은 존중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통과해 온 두 사람의 삶이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 속에서 조용히 포개진다. 우리는 그렇게 산다. 자식을 키우며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에 마음이 다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정말 어른이 맞는가 싶을 만큼 스스로 흔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나란히 앉아 함 께 사과를 깎거나 밥을 짓고, 김을 굽는 그런 일상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은 단지 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다. 그건 끊임없는 대화이고 끊임없 는 관찰이며 서로를 향한 애정 어린 연습이다.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불편하거나 서투를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다.


part4-5 two gypsy women outside their home.jpg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Peder Severin Krøyer)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결국 그것이 아닐까. 일상의 작은 장면 말없이 나누는 감정 그리고 반복되는 일 속 에서 발견되는 따뜻함. 그 모든 것이 모여 ‘가족’이라는 이름의 역사가 된다. 그림 속 그 짧은 순간처럼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일상의 장면들이 결국은 우리가 서로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위대한 유산이 된다. 그러니 기억하자. 우리가 오늘 나눈 이 평범한 하루가 언젠가 누군가에겐 생생한 추억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삶을 버텨낼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웃고 함께 하는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같은 시간을 다르게 살아가지만, 서로를 품은 그 순간만큼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존 우드(John Wood)는 말했다. “가장 위대한 유산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 속에 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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