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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kang May 22. 2022

꽃놀이  

솜씨 없이 찍어도 예쁜 꽃

이곳저곳에서 날아들던 꽃 사진의 향연이 시들해지거나 끝이 나면 비로소 내 뜰에 꽃들이 바쁘게 피기 시작한다. 무릎 아래의 꽃 웃음 마주하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꽃잎 매만져 가며 그리움을 푼다. 이 때는, 해후하는 대상이 꽃뿐만이 아니다.  새색시 같이 젊은 엄마와 봄 동산으로 오르던 어린 나를 만나는 반가움을 와락 안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봄바람에 볼 살이 트고 봄 볕에 그을린 망아지 같았던 나,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칡을 캐기 위해 어설프게 삽질하던 엄마를 더듬더듬 찾아가다 보면 그리움의 골은 깊어만 진다.


봄의 계절은 꽃뿐이고 춘유(春遊)의 기억뿐일지도 모를 나의 2세와는 달리, 내 어린 시절의 봄은 이웃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생활 여건이었던 절대 빈곤 시절이었다. 겨우내 저장했던 양식 떨어지며 시작되는 춘궁기는 나의 부모님에게는 아픔의 계절이었을 것이다. 노는 것에만 정신 팔려있던 어린 딸의 허기짐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미리미리 알아차렸다. 딸의 배 꾸리를 채울 만한 것들을 찾아 엄마는 봄 들판으로 나서고, 칡뿌리를 캐러 뒷산을 오르기도 했던 기억은 반 세기가 넘도록 봄만 되면 자동으로 떠오른다.


나는 엄마와 나물을 캐러 들판으로 가는 것도 좋아했지만 칡을 얻기 위해 뒷동산에 오를 때가 좋았다. 내 시야에 들어왔던 작은 동산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내라 하면 그릴 수 있을 듯이 기억이 난다. 굵은 나무들은 땔감으로 베어져 나간 민둥산에 몇 구의 무덤이 있었다.  무덤가 주변 높은 곳에 서면 게 딱지 같은 지붕들이 얼기설기 모여 이룬 우리 동네가 내려다 보였다. 동네 끝자락에 붙어 있던 나지막한 뒷동산이 내게는 아름다운 봄날의 놀이터였다. 칡을 찾기 위해 파 놓은 동산의 흙으로 두꺼비 집을 만드느라 손등에 올려놓고 다둑다둑 누른 후 흙이 무너지지 않게 손을 살살 빼내던 일도 재미난 일이었다.


연약했던 엄마의 삽질로 칡을 얻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 그 재미난 일을 몇 번을 반복해도 엄마일은 끝이 나지 않았다. 허리를 펴지 않던 엄마가 바람 들지 않는 양지를 가리키며 그곳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펄펄 뛰어 놀 때는 못 느꼈던 배고픔이 심하게 느껴졌었다. 엄마를 조르는 대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무덤가에 한 무더기씩 피어 있었던 꽃과 놀았다. 꽃을 쳐들어 꽃 속을 들여다보다가  꽃 한 송이 꺾어 꽃잎을 만져 보기도 했다. 처음으로 꽃이 예쁘다고  생각했던  때도 , 꽂을 좋아하기  시작한   때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 만난 꽃은 한 뼘 키로 자란 솔붓꽃이랑 꽃의 얼굴이 땅을 향해 꼬부라진 할미꽃이었다. 잉크빛 같기도 하고 쪽빛 하늘의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져 물든 것 같은 솔붓꽃을 보면 지금도 마음이 떨린다. 무덤가에서 구르다 넘어져 까진 무릎에서 나던 피의 색과 같았던  할미꽃, 이 또한 가슴을 절절하게 한다.


그 한번 맺은 꽃과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꽃과 이별하지 못하고 평생 해로를 하고 있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날,  나의 가슴 끓어 안고 평안을 안겨 줄 꽃의 그 영원한 연정. 그 정이 해마다 깊어지는 것 같다. 어제도 오늘도 꽃들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꽃밭에 앉아 귀를 기울이며 꽃놀이에 빠져  있다. 종일이라도 꽃을 보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꽃을 데리고 왔던 봄은 또 꽃을 데리고 쉬이 떠나버린다. 기념사진 찍어주며 내 년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꽃잎을 쓰다듬어 주었다. 눈물 같은 이슬 한 방울이 또르르 꽃잎 안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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