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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빌더 Mar 28. 2023

배우가 갖고 있는 힘

공간과 시간을 바꾸는 마법

연극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대라는 장소는 마법의 장소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지 모르겠다. 불과 일이 미터 사이이지만 까마득한 다른 시대와 공간이 펼쳐지고, 배우들은 숨결이 느껴지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아는 사람 중 배우가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배우인 배우자를 만나고 보니 아는 사람을 무대에서 보는 경험이 무척 신선하다. 내가 아는 남편이 맞지만, 뭔가 다른 모습.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면 어느 순간 내 남편은 표도르가 되고 체부띄낀이 된다.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기는 힘'이라고 남편이 표현하는 것이 있다. 시공간을 잠시 다른 것으로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배우들이 우기기 시작하면 속절없이 끌려가게 된다.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로. 많이 상업화되어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뮤지컬 시장은 무대나 조명 같은 장치가 화려하게 극적인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배우만의 힘이라는 느낌은 덜하다. 작은 소공연장에서 악기 하나와 간단한 조명, 무대가 세팅된 상태로 숨소리가 느껴질 듯 가까운 거리에 배우들이 등장하면 모두 숨죽여 배우가 펼치는 마법에 빠진다. 연기가 부족한 배우라면 그 마법은 쉽게 깨질 테고, 관객은 쉽게 주의가 흐트러진다. 연기를 하는 배우라면 잠시 거기에 빠져도 좋다.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남편 차를 수리해야 해서 내차로 함께 움직이는 길. 남편이 공연 연습을 하는 동안 나는 옆에 있는 작은 미술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연습시간이 끝나자 남편은 '우리 결혼할 때 축가해줬던 배우들이 있다며 인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나를 연습실로 이끌었다. 문을 열자마자 각자 팔을 펼쳐 LOVE 글자를 만들고 생일 케이크를 들고는 거창한 생일축하노래가 시작된다. 뮤지컬도 하는 분들이라(연기 전공인 사람은 모든 예체능을 배우는 것 같다) 그런지 누군가 화음을 넣은 것도 같고, 여섯 명 치고 너무 큰 목소리라서 어안이 벙벙하다. 창에 발라진 이상한 시트지며 빨간 플라스틱 의자가 어수선하게 널려있고, 부조리하다 싶은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네모난 탁자가 한가운데에 있는 열린 공간이 갑자기 생일파티장이 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과 나의 생일을 축복하기 위해 온 사람으로 변한다.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우기는 힘'을 가진 배우들이라면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연극 공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좋은 공연을 보고 그 매력에 빠져보길. 대학로 연극에 실망을 느꼈다면(대학 시절 나처럼) 오히려 고전작품에 도전해 보길. 팁을 하나 드리자면, 두산아트센터에서 양질의 공연이 잘 열린다고 한다. 공연장과 매체를 오가는 노익장들도 계시니 좋은 배우의 공연을 찾아다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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