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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립식 가족
저는 직업 상 드라마 중 복잡 미묘한 심리적 역동이 잘 표현된 경우에는 공부(?) 차원에서 보기도 합니다.
최근 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조립식 가족'이라는 드라마입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만, 엄마가 없이 자란 세 아이가 두 명의 아빠와 한 지붕 아래에서 '식구(食口)'가 되어서 살아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역동을 그렸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진짜 가족은 아닌 가족들이 서로 가족이 되어 가는 훈훈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엄마를 기억조차 못하는 딸과 엄마가 대 놓고 버린 아들, 그리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랐다가 엄마마저도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가슴 아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 주목을 하게 된 이유는 조립식 가족이라는 이름처럼 원래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족의 '사랑(愛)'과 같은 긍정적인 부분들과 자신을 버린 또는 온다고 하고 오지 않는 엄마에 대한 '미움(憎)'과 같은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부분들이 비교적 명확하게 분리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소 이상적으로 그려지는) 부족한 사랑이 채워지는 훈훈하고 따뜻한 가족 간의 정과 미움과 원망이 포함된 가족 간의 애틋한 그리움을 대비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리얼리티는 이와 같이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내적인 혼란을 겪기도 하고 어떤 것이 진정한 내 마음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구분하여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2. (심리적인) 가족의 의미
가족의 사전적인 정의는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자녀들로 구성된 집단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사전적인 정의에 기초한 가족의 의미를 심리적 관점에서 몇 가지 추려보면...
1) 혈연이라는 특별한 관계 패턴으로 맺어졌거나 그에 준할 정도의 의미를 부여가 가능하며,
2) 영아, 유아, 아동기 등 어린 시절의 생활 및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3) 독립적인 성인이 되기 전 경제적 및 심리적으로 의존 및 돌봄 관계로 맺어지는(그래서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오래 & 깊이 &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관계 등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입양이나 결혼을 통한 새로운 가족 구성 등 혈연관계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특별한 배타적 관계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가족이 맞습니다.
또한 부모가 아니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돌보고 양육해 준 할머니 혹은 친척, 또는 재벌집의 유모(?) 등도 엄격한 의미의 가족과 동일한 급의 심리적 영향을 나눕니다.
이와 같은 배타적인 돌봄과 양육 과정은 이후 절대적인 돌봄이 필요하지 않지만 완전한 독립은 하기 어려운 아동기나 청소년기 시절에 심리적 관계의 베이스가 됩니다.
이런 의미들은 다른 관계들과 차별화되는 독특하고 고유한 가족의 심리적 가치와 그로 인한 심리적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3. 진지하고 깊이 있는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진행되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고통을 벗어나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위해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정확하게 몰랐던 또는 의식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내 마음의 상태와 이슈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실마리를 풀어가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그 끝에는 가족, 그리고 가족과의 경험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이제는 과거이며 제대로 &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았던 과거의 일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냅니다.
지금의 감정이나 생각, 그리고 성격 등이 존재하나 현재의 심리적 특성과 현상들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된 재료 또는 연료는 가족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가족이 나오며, 평상시에 의식하지 못했고 기억 저편에 있던 가족과의 기억을 되살리며 현재의 아픔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를 얻기도 합니다.
4. 기억은 변형되고 왜곡된다
그런데 현재 기억하는 가족에 대한 기억들은 대체로 객관적인 사실과는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차원에서는 객관적인 사실일 수는 있지만 알고 보면 편향되고 왜곡된 기억의 잔재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가족과 관련된 기억들은 감정가가 더해지기 때문에 편향된 사실의 조합에 다채로운 감정의 색깔이 입혀진 형태로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중립적인 생활 사건들은 고통스러운 감정과 연결되어 어두운 무채색의 기억으로 남아 있거나 화사하고 알록달록한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일한 부모에게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형제자매들 간에는 어린 시절의 사건들이나 부모에 대한 기억은 다르게 남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던진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곪아서 평생의 한이 되었으나 부모는 그런 말을 했던 기억조차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으며 내가 겪고 있는 불행과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어린 시절 때 이야기를 하던 중 환하게 웃고 해맑게 웃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고 편향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과거의 사건과 그에 입혀진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 인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5. '가족이란?' & '당신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당신에게 있어서 가족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리고, 가족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love is _____' 등과 같이) '가족이란 _____'이라는 질문의 뒤를 채워보는 것이며, 두 번째 질문은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_____'이라는 질문에 답해 보는 것입니다.
가족과 관련된 첫 번째 질문인 '가족이란 _____'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기대나 요구, 또는 의무와 책임 등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란 마음의 안식처이다'나 '가족이란 최고의 사랑과 애정을 나누는 사회적 단위'라고 대답하는 경우와 '가족이란 평생 짊어져야 하는 삶의 짐' 또는 '가족은 불행과 고통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가족에 대해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이은 두 번째 질문인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_____'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신이 느끼는 가족의 의미를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내 마음의 안식처이다'라고 대답하는 경우와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책임져야만 하는 삶의 짐'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현재 느끼는 가족에 대한 감정이 매우 다른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질문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동시에 고려한다면 더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란 마음의 안식처이다'하거나 '가족이란 최고의 사랑과 애정을 나누는 사회적 단위'라고 대답한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내 마음의 안식처이다'라고 답했다면 그에게 있어서 가족의 마음의 안식처라고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된 상태이며, 다른 가족도 안식처로 느끼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반면에 '가족이란 평생 짊어져야 하는 삶의 짐' 또는 '가족은 불행과 고통의 시작'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책임져야만 하는 삶의 짐'이라고 말하는 경우라면 가족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부담을 가지고 있고 현재도 그런 부담으로 인하여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처럼 두 가지 질문을 통해 가족에 대한 기대와 현재 본인이 느끼는 가족을 비교해 봄으로써 당신에게 있어서 가족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가족과 관련된 과거와 현재의 감정과 생각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정리하라 & 독립하라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은 가족과 관련된 일은 평생의 족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30대를 넘어서 40대가 되어서도 가족과 관련하여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6~70대가 되어서도 가족과 관련된 심리적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평생의 굴레가 아니며 평생의 한이나 끝도 없이 불행을 가져오는 원천도 아닙니다.
가족과 관련된 감정과 생각, 그리고 잊고 있던 혹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을 꺼내어 털어내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심리적 현상과 과제일 뿐입니다.
물론 현재의 내가 있도록 만든 원천이며 그 상황과 배경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모두 과거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가족은 과거로 인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그림과 같은 것입니다.
과거에 아픈 기억과 한이 있다면 이를 정리하고 털어내어 건강한 독립을 이루면 됩니다.
건강한 독립을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가족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가족'이라는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가족?
누구에게나 애증의 원천이며, 기쁨과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고통과 미움의 기억도 품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시작점은 간단합니다.
과거의 왜곡되고 편향될 수 있는 가족에 대한 기억들을 정리하고, 내가 진정 원하고 바라는 새롭고 행복하며 건강한 가족의 그림을 만들어 가면 될 뿐입니다.
어느 날 업무 상으로 저랑 카톡으로 얘기를 나누시던 고객분께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박사님, 이 카톡사진은 뭐예요?'
마침 카톡 프사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증명사진을 걸어놓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버님 기일이 10월 26일인지라 아버지 기일 전후 일주일에서 한 달가량 아버지 사진을 제 프사로 걸어 놓곤 합니다.
아버지 기일을 고려한 추모기간이라는 제 대답에 고객분은 당황하시면 '혹시 제가 부친상을 놓친 걸까요?...'라며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벌써 25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어려운 일이 있거나 마음의 지지와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거나 아버지 산소를 찾곤 한답니다.
고객분의 당황스러움과 걱정에 '이미 돌아가신 지 25년이 되셨어요. 그냥 제 인생의 정신적 지주이신 거죠?!^^'라고 서로 웃으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가족의 의미는 모두에게 각각 다른 색깔과 의미를 가집니다.
가족과 관련된 나만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한다면 내 인생의 풀리지 않던 많은 수수께끼들이 이해되고 납득되며 수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가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바탕과 밑거름이 되었던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