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늘 같은 상황에 같은 감정을 반복할까?
·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갑작스레 울리는 메시지 알림에 짜증이 난다.
· 회의 시간에 상사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속이 욱 하고 끓는다.
· 아이의 투정에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 금세 후회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처럼 우리의 감정은 때로 너무 빠르게, 너무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마치 우리 안에 ‘자동반응 버튼’이 있는 것처럼
특정한 자극 앞에서 늘 비슷한 감정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같은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감정이 반복될까?
바로 이 지점에서 ‘감정코드(Emotional Response Code)’라는 개념이 시작된다.
감정은 단지 그때그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랫동안 내 안에 저장되어 온,
자동 반응 경로를 따라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그 반응 경로는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작동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반복되는 감정 반응을 하나의 ‘자동화 회로’로 기억한다.
신경심리학자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는 감정의 자동 반응을 연구하며 “두려움, 분노, 수치심 같은 정서는 뇌의 편도체(amygd ala)가 과거의 유사한 경험과 연관된 패턴을 저장하고, 유사한 자극이 들어오면 그 경로를 따라 자동으로 반응한다”고 설명한다.
즉, 뇌는 반복된 자극에 대해 ‘감정적 바로 가기(shortcut)’를 형성해두고, 그 경로를 따라 가장 빠르고 익숙한 반응을 선택한다.
이때 감정은 논리보다 빠르고, 의식보다 앞서 나타난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셈이다.
자동화된 감정 반응의 많은 부분은 어린 시절 애착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자동화된 감정 반응의 많은 부분은 어린시절의 애착 경험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이론에 따르면,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한 아이는 낯선 자극에도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능력 즉, 자기조절력을 키우지만, 불안정한 애착을 경험한 아이는 감정 자극에 과잉반응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비난을 당하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사소한 지적에도 과도하게 수치심이나 분노를 느끼곤 한다. 그 감정 반응은 그 당시의 생존 전략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자극 앞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하는 감정 코드가 되어버린다.
아래는 실제 상담에서 자주 관찰되는 감정 자동반응 유형들이다.
· 불안 자동반응형 : 누군가 연락이 뜸하면 “내가 뭔가 잘못했나?”, “날 싫어하나?”라는 생각부터 든다.
· 분노 자동반응형 : 비난을 받거나 비교당하면 자동으로 ‘버럭’하거나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 회피 자동반응형 : 감정이 복잡해질 기미가 보이면 ‘그냥 피한다’. 대화나 관계에서 슬그머니 물러난다.
· 수치 자동반응형 : 실수했을 때, 문제보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으로 감정이 깊이 가라앉는다.
이처럼 감정은 하나의 경로를 따라, 늘 익숙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흐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반응한다.
바로 이것이, 감정이 나를 ‘끌고 가는’이유다.
2020년,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감정이란 “실제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예측(prediction)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면, 뇌는 자극이 들어오기 전부터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을 ‘미리 생성’한다.
예컨대, 누군가 찌푸린 얼굴로 다가오면, 뇌는 과거의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저건 공격일 수 있어’라고 해석하고 즉시 불쾌감을 만들어낸다.
즉, 감정은 현실에 대한 즉각적 반응이 아니라, 예측된 해석의 결과다. 그리고 그 예측은 대부분 내가 반복해온 감정 패턴에 의해 결정된다.
이 말은 곧, 감정을 바꾸고 싶다면 단지 상황을 피하거나 반응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뇌가 사용하는 예측 모델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왜 나는 똑같은 상황에 똑같이 반응할까?”
이 질문은, 이제 단순한 습관을 지적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감정 회로를 되돌아보고,
내 안의 무의식적인 자동반응을 마주하려는 회복의 시작이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자동반응 코드는 과거의 생존을 위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감정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예전에는 불안을 통해 나를 지키려 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 반응을 이해하고, 다시 조율할 수 있다.
그걸 알게 되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루고 설계할 수 있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