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한마음 Oct 13. 2024

엄벙덤벙 시골살이

시와에세이 2021.가을호 게재

  이른 새벽 이장님의 마을 방송이 흘러나왔다. 들에 가시는 분들을 위해 일찍부터 안내사항을 전달하는 모양이다. 앰프 소리가 끝나자마자 14개월 된 아이가 부스럭거린다. 옆에서 잠든 나를 툭툭 치며 뽀뽀를 한다. 눈을 맞추니 아이가 참 사랑스럽게 바라봐준다. “맘마, 맘마”하는 소리에 얼른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밥을 안쳤다.   


  시골집에서 지낸 지도 벌써 반년이 되어간다. 코로나19로 남편이 중국에서 직장을 정리하게 되면서 이곳에 왔다. 어쩌다 우리는 파이어(FIRE)족이 됐다. 파이어족이란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신조어다. 경제적 자립을 토대로 자발적 조기 은퇴를 추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은퇴 연령인 50, 60대가 아닌 30대 말이나 40대 초반까지 은퇴를 목표로 한다. 원하는 목표액을 달성해 부자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조금 덜 쓰고 덜 먹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요즘 이런 신조어가 나오는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환호하는 돈의 가치가 모든 것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우리는 준비된 은퇴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현실에 생활비가 비교적 덜 드는 시골집으로 왔다. 오래된 중고차를 타고 외식 대신 집에서 요리를 다 해 먹는다. 물론 먹을거리는 거의 마당에서 직접 재배한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비춰 제법 환해졌다. 새들도 한껏 지저귄다. 아이를 업고 마당에 나갔다. 마당에 심고 키우는 파, 상추, 토마토, 보리수, 남천, 영산홍, 국화, 수국에 물을 줄 차례다. 남편이 옆에서 물조리개를 들고 왔다. 투명한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온다. 나는 그 옆에서 상추를 솎았다. 솎다보면 한 줌 가득 오늘 일용할 양식이 나온다. 일어서려고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등에 업힌 아이는 나를 따라하듯 집게손가락으로 상추를 찍고선 내 입에 넣어주는 시늉을 한다. 아이 손이 내 입술에 닿았다. “엄마한테 먹여주고 싶구나? 잘 먹을게, 냠냠.” 얼굴을 가까이 대니 아이가 꺄르르 웃는다.


  아이와 하늘을 보며 새 구경을 한다. 집 뒤쪽에는 오죽이 우거진 산이 있다. 참새, 박새, 때까치, 산비둘기들은 우리 마당을 가로질러 먹이를 나르느라 바쁘다. 올봄에는 제비 한 마리가 거실 안으로 들어와 허둥대며 날아다니기도 했다.


  우리 마당을 자주 찾는 이웃으로 고양이가 빠질 수 없다. 고양이는 느릿느릿 마당을 거닐며 아예 제집처럼 드나든다. 노란 털에 하얀 무늬가 있는 고양이, 검정 고양이, 하얀 털에 검은 점이 있는 고양이가 번갈아 나타난다. 한참 꽃이 피어날 때는 꽃 가까이 코를 대며 향기를 맡더니 꼬리를 한껏 올리고 몸을 쭉 펴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내가 골목대장이라 이름 붙인 동네 강아지 세 마리도 예외가 아니다. 꼭 세 마리가 뭉쳐서 동네를 누빈다. 그러다 우리 집 마당을 한 바퀴 어슬렁거리다가 나와 마주치면 흘금대며 돌아가곤 한다.


  무엇보다 이웃은 동네 어르신들이다. 아이를 안고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드리면 “아이고, 요즘 애 보기 힘든데 어째 애가 있나, 귀하다.”며 좋아하신다. 젊은 사람이 새로 이사 왔다고 다듬고 계시던 파를 건네주시기도 한다. 아랫집 어머님께선 딸 같다며 두릅이며 상추, 시금치, 김치까지 가져다주셨다. 나도 음료수라도 가져가 감사 인사를 드렸지만 동네에서 받은 넉넉함은 늘 넘치고 뭉클하다.


  시골살이가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하루는 남편과 아이랑 함께 외출하려는데 마당으로 검은 잿더미와 연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깜짝 놀라 나는 아이를 안고 집 안으로 황급히 들어가고 남편은 연기의 출처를 알아보러 갔다. 곧이어 허겁지겁 “불났어!” 하며 집에 갖춰놓은 소화기를 들고 달려 나갔다. 집 옆 언덕바지 밭으로 올라가 소화기를 다 쓰고 돌아온 남편은 한숨을 쉬었다. 한 할아버지께서 언덕바지에 쓰레기와 나뭇가지들을 긁어모아 태우셨는데 그만 불길이 바람을 타고 옆 대나무까지 번진 것이다. 자칫하면 정말 큰 불이 될 뻔했다. 불을 껐다니 다행이라 여겼는데 할아버지는 오히려 남편에게 역정을 냈다. 밭의 쓰레기를 아직 다 태우지도 못했다는 거다. 이런 상황을 안다는 듯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모두 산불 조심’이라는 마을 방송 스피커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린다.


  이제 슬슬 날이 더워진다. 파리와 모기가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세 식구의 팔이며 다리에 모기한테 물린 붉은 반점이 날마다 늘어난다. 또 비만 오면 길 포장 공사 중인 우리 집 입구는 늘 엉망이다. 파헤쳐놓은 진흙에 차는 움직이기가 어렵다. 그날은 꼼짝없이 집 안에 있어야 한다. 주변에 마트나 편의점도 없으니 장마철을 대비해 먹을 것을 미리 쟁여두어야 한다.


  풀은 또 어찌나 쑥쑥 자라는지 뽑고 나서 며칠만 지나면 다시 제자리다. 돌 틈 사이에 자라는 작은 풀들은 보기에는 예뻐도 어쩔 수 없다. 그대로 방치하면 마당은 하루가 다르게 요란해진다. 동네 분들이 틈날 때마다 풀을 매셨는데 그 이유를 알겠다. 영산홍 잎 위로 손 모양 잎이 삐죽 나왔다. 자세히 보니 가느다란 가지를 뱅글뱅글 휘감아 올라온 환삼덩굴이다. 처음엔 모르고 맨손으로 덩굴을 만졌다가 그만 가시에 찔렸다. 장갑을 끼고선 환삼덩굴 줄기를 덤벙덤벙 잘랐다. 살아 있는 나무를 옥죄듯 자라는 환삼덩굴이 야속하다. 다 같이 잘 살 수는 없을까.


  지금 우리에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잘 산다는 말이 언제부터 경제적인 부의 의미로만 전락해버린 것일까. 산다는 것은 생명을 뜻한다. 숨을 쉬며 활력을 가지고 나아간다. 그러니 잘 산다는 것은 그저 사람답게 살아내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만 빽빽이 보이던 도시와 달리 산과 구름이 맑게 보이는 이곳이 점점 편해진다.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며 세 식구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고 감사하다. 아이가 맑은 바람 속에서 숨 쉬며 정성스레 키운 토마토를 두 손 쥐고 먹을 수 있고 꽃을 만지며 커가는 것이 우리에겐 커다란 즐거움이다.


  끓어오르는 밥솥 위로 하얀 김이 집안 가득 퍼져간다.        



작가의 이전글 늙은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