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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삶의 다양성에 대하여. by 양귀자.

by 마음돌봄
옅은 베이지 미니멀 11월 가을 독서 인스타그램 포스트 (2).png

양귀자 작가가 누구던가.

뭇 여고생에게 천년의 사랑을 말하던 작가가 아니던가.

90년대 말 시간을 거스른 사랑 이야기나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 많았는데 작품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지극히 아름답지만 수동적이다. 그걸 느끼면서도 이런 남자를 만나고 싶다 생각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들었을게다.


다시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건 시간의 역할이 크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객관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과 개인의 의지가 들어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나누었는데, <모순>이란 작품의 역주행은 그 모든 시간이 함께 힘을 합친 결과이다. 결코 인간은 두 시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기에.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25세가 결혼 적령기라 말하는 주인공 '안진진'의 말과 뭔가 50년대 한국 영화의 남자주인공스러운 소설 속 두 남주의 말투. 시대적 배경이 옛이야기임을 짐작케 했고,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 가사를 보면서 여고 시절 메가 히트급 노래였던 그 곡을 다시 음미했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부터 철두철미하게 작품을 계획한 듯하다. 마치 소설 속 나영규가 인생계획표를 세우는 것처럼. 엄마와 이모, 두 쌍둥이 자매의 극도로 다른 삶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단면을 양면으로 보여주는 소설. 역시나 작가의 필력은 어마무시했고, 차마 작품이 재미없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조차 없었다.


조폭을 꿈꾸는 동생,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정신분열증에 폭력적인 남편이 치매 걸린 사람이 되어 돌아와도 굳건히 버텨내는 엄마, 부유하고 완벽한 삶인 줄 알았던 이모의 자살. 아무도 개인의 삶의 깊은 면은 알 수 없고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결국엔 자신만의 문제가 있으며, 온갖 불행을 다 안고 사는 사람처럼 보여도 인생의 행복은 있다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것이 인생.

인생은 고해다.

인생은 고통이다.

인생은 행복한 것이다.

인생은 소중한 것이다.

이율배반적인 이 말들은 모두 사실이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오래된 미래.

바닐라와 다크 초콜릿.

이열치열.


너무나 모순된 말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그 말들은 다 사실이다.

작가의 말처럼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우리의 삶은 발전할 것이다. 지난날의 역사가 그랬듯이.


소설을 읽으면 가장 재미있게 느껴지고,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작가의 말이다.

제목을 정하면서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 좀 무거웠다 말하는 작가는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이기에. 세상의 일들은 다 모순으로 짜여있기에 이보다 구체성을 띤 제목을 없다는 역설을 받아들인 것이다.


작가란 무엇인가 생각한다는 그녀는 작가란 주어진 인생의 하니까를 뛰어넘는 새로운 현실을 소설 위에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이야기'와 '감동' 두 가지 핵심 화두는 그녀의 말대로 지금까지 소설의 큰 테마로 버티고 있다. 세상은 신화와 이야기, 인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을 가장 잘 반영하는 형태 중 하나가 소설이기에 시간이 흐르고 맞물려도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닐까.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마흔이 되어서 가진 이 물음은 '안진진'은 25살에 벌써 안 것이다.

미국 유학을 한 주리보다 안진진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인생의 순간에서 한 발 물러날 줄도 알고, 사람을 잘 파악할 줄도 안다.

종국엔 자신의 인생을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도 그녀다.


이제 이 작품을 인덱스를 붙인 곳 위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야기와 감동을 느끼며 끝내는 것이 소설 읽기가 아니다.

이후에 생각하는 시간, 곱씹어보는 시간.

진짜 소설을 읽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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