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외적인 아름다움만이 기준이 아님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란 아름다운 존재다.
세상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다.
지구를 괴롭힐 일도 다른 것을 빼앗을 필요도 없다.
전지적 시점에서 작가는 신이다.
새로운 언어를 만나는 일은 어려움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동반하는데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어렵거나 귀찮다기보다는 무릎을 탁 치는 경쾌함을 느꼈다.
소위 우리 사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부장의 시대였다.
아마조네스는 가모장이라 할지라도 가부장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언어의 창시자로서 이슬아 작가는 톡톡히 제 몫을 해내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독자로서 이 부분을 논하기엔 다소 논리가 빈약할지 모르나
이 책을 읽고 확신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작가구나.
어렵지 않은 언어 표현, 작가로서 언어의 품위를 잃지 않는 문장들.
거기에 묘한 재미와 가독성까지 두루 갖춘 이야기를 읽고, 소설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통쾌했는지도 모른다.
가녀장이라는 말이.
수많은 세금계산서와 운영에서의 일을 떠나서라도 철저히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의 경계를 아는 모습.
어쩌면 나도 오래전부터 가녀장이 되고 싶었던 거다.
링거 꽂고 전국을 누비며 노래하고 재산을 모았다는 호감형의 트로트 여왕의 예능을 보며 힘들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녀처럼 경제력을 갖추고 싶다는 생각, 능력치의 최고봉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인지라 이 말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슬아 작가가 강연을 준비하는 모습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후에 작가 북토크를 하거나 강의를 할 때 나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열심히 메모했다.
미리 가서 강연장의 좌석을 살피고, 동선에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조명은 괜찮은지
날씨에 따른 준비사항은 없는지, 마이크나 노트북 등 기타 부분에 손볼 곳은 없는지 살펴야겠다는 마음.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대화할 참여자들을 위해 더 배려할 부분은 없는지 꼭 살피리라.
운동을 해서 건강도 꼭 관리하고, 이 작가 하면 생각나는 취향과 시그니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진짜 자기만의 취향이 필요하다.
셔츠와 슬랙스, 청바지와 재킷을 좋아하는 나의 의상 시그니처는 벌써 완성이 된 것일까.
단지 필요한 건 나만을 위한 작업실 겸 서재일 것이다.
십 대 때부터 작가를 꿈꾸고 작가가 되지 않으면 어떡해나 심히 걱정했다는 그녀를 보며 한 곳으로 오롯이 향하는 마음이 얼마나 귀하고 간절한지 느껴졌다.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다채로운 삶이 있는데 <가녀장의 시대>는 그 삶의 증거다. 아직 알아보진 못했지만 이 세상엔 수많은 가녀장이 있을 거라 믿는다. 가사노동이 직업의 하나로 인정받고 정당한 임금을 받는 삶 또한 참 통쾌하다. 복희 씨와 웅이 씨가 각자의 능력을 만렙으로 뽐내며 정당한 대가를 받고 살아가는 모습은 인간에게 일이란, 인정받는 그 일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껴진다. 작품 속 슬아 작가의 집은 일종의 베이스캠프다. 마음이 쉬는 곳, 집밥이 있어 감사한 곳, 누구나 초대할 수 있는 사랑방, 정갈하고 깔끔한 그녀의 문체. 군더더기 없이 서술하지만 수려하고 정돈된 문체가 느껴지는 책이다.
곧 드라마로 제작될 작품이라니 영상화된 모습도 기대가 된다.
바른 자세를 가진 작가의 몸이나 다정한 당당함을 보면 장윤주 배우가 역할에 어울릴 것 같단 생각도 든다.
108배를 올리며 좋은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을, 이 일을 계속 사랑하고 싶은 그녀의 속내를, 어딘가에 독자들이 있을 거라 믿는 그녀를 보며 세상에 어느 한 정성 들이지 않은 일이 없음을 느낀다. 식당 직원 분께 선생님이라 부르고,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는 그녀. 작가의 눈은 자기 자신만이 아닌 자신과 만물을 관통하는 우주의 실을 향하고 있다는 말을 평생 가슴에 품겠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다시 한번 글을 쓰는 마음을 배운다. 호시절이 계속 흘러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작가는 좋은 글을 쓸 것이다. 우주의 실을 관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