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어쩌면 나아갈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지금의 처지와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이중 삼중으로 암호를 설정하고 개인 스마트폰으로 본인이 맞음을 끊임없이 인증해야 하는.
일주일의 무료 사용 기회를 주고 결제 방법을 등록시킨 후, 일주일 후 사용의사가 계속 있는지 묻는
플랫폼처럼 개인의 신분이 명확해야 하는 사회.
아무리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발전했어도 어느 순간 해킹으로 신상 정보가 다 털려버리는 아이러니한 사회. 비밀번호, 이름, 나이, 성별, 주소 그 모든 것이 안전하면서도 안전하지 않은 그런 세상.
J는 죽고 싶다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처음으로 죽음을 희망했던 그때가 명확히 떠오르진 않았다.
어렴풋한 감각 속에서 지금과 같은 기분을 가졌던 사실만이 생각날 뿐이었다.
늘 미래가 기대된다고 현재 힘든 일쯤이야 지나갈 거라고 믿고 살아왔던 J는 마흔이 넘는 순간
그 기대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달콤한 빵도 더 이상 맛있지 않았고, 드라마도 재미가 없었다.
마흔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노란 크림빵 하나도 너무나 맛있어서 행복해하면서 먹고, 아이들을 밤에 재운 후
몰래 보는 드라마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서 더 이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문득 오랜만에 본 음악 프로에서
한 아이돌 그룹이 데뷔 10년 차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J는 깨달았다. 그들이 갓 데뷔했을 때 같은 프로에서 봤었다는 사실을.
마치 자신만 빼고 세상이 빨리 감기를 해버린 것 같은 기분에 J는 당황스러웠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가게를 운영하고 바쁘게 아이들 키우며 살았었고, 며느리와 아내 역할에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J에게 남은 건 얼마간의 빚과 공허함이었다.
벌써 마흔 중반인 그녀는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남보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발버둥 치며 잘해보려 애썼다.
무엇보다 행복하고 싶었다.
한 번 꺼져버린 마음의 불씨는 다시 피어오를 줄 모르고 깊은 우울감으로 찾아왔다.
결심했다.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으면 죽기로.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실천이라는 단어를 이런 경우에 쓰는 게 맞나?
뭔가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좋은 의도로만 '실천'이란 단어를 사용해 온 J로써는 이런 자신의 결심이 낯설기만 했다.
2년 전 여름, 자괴감과 우울에 빠졌던 그녀는 신도시에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러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새로 생겨난 그곳은 마치 다른 나라처럼 생겼었다.
없던 세상이 탄생한 느낌. 예쁜 레고 블록처럼 생긴 아파트. 공무원이나 특이한 직업군이 많다는 그곳.
"J야 힘들면 언제든지 와. 맛있는 거 사줄게. "
그 말 한마디에 무작정 떠났던 그곳. 이젠 그럴 기운조차 없는 J에게 그때가 떠올랐던 건 당시의 우울감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벼웠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커져버린 불안감에 앞으로 시간이 더 고통스러울까 봐 괴로워졌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고민에 빠져들던 J는 어느 순간엔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이 들곤 했다. 부모의 빚으로 집이 무너지던 순간에도, 아직 스물넷, 시간은 많다는 이유로 힘을 냈던 J는 돈의 어두운 그림자에 잠식당했고 여간해선 극복이 되지 않았다. 20대 내내 돈을 갚아야 했던 그때가 떠올라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돌고 돌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글의 첫 문장은 신경숙 작가의 책 <외딴방>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