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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엄마달팽이 Jan 30. 2021

[05일 미션] 욕조에서 듣다 또록 흘러내린 눈물

[오늘 듣는 노래] 20일간 글쓰기 모임

공대생의 심야서재 프로젝트. 신나는 글쓰기 5일 차.
“예술적 감성을 회복하기 위한 미션.
편안하게 쉬면서 음악 감상을 해봅니다.
글을 쓰는 대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갖습니다.”

고요한 곳에서 음악을 듣는다. 멜로디에 집중하고, 흐름에 집중하고, 앞으로 새롭게 생길 일들을 상상하며 들어보라는 지침.
멋진 지침 ^^



아침에 비가 내렸다.
영국이 좋은 건(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 특히 밤마다 비가 자주 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야행성을 만든 건 육아가 아니라 영국 밤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

비가 내리면 생각나는 노래들이 있다. 비 내리면서 앞 풍경이 산이라면 양희은의 ‘한계령’이 떠오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야밤의 적막에 내리는 비라면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듣고 싶기도 하다. 지금. 나는 무엇을 듣고 싶은가?


선우정아의 ‘비 온다’가 듣고 싶기도 하고. 비 오는 아침, 상쾌해서 최근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들리는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이 듣고 싶기도 하고. 그래, 비창. 조성진의 비창이다. 지금 내 감정은 상쾌 전선을 지나고 있으니까.




“엄마, 비 오면 누가 좋아하지요?”
“어어?”
“엄마. 달팽이!”
달팽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나의 만 5세 딸아이.

“보슬보슬, 비가 와요, 하늘에서 비가 내려요. 달팽이는 비 오는 걸 제일 좋아해”
우리의 최애정곡, ‘달팽이의 하루’. 비가 오면 정원에 나가서 찾아든 달팽이와 지렁이.  
딸아이와 달팽이의 하루 노래 한 판 부른 후, 달팽이가 생각났다. 나의 가수 이적(패닉)의 ‘달팽이’.



20살 내게 다가온 달팽이와 이적. 나와 함께 세월을 걸어가는 그가 다시 부르는 달팽이도 멋있다. 그의 목소리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더욱 깊어지고 세련되었다. 그래도 내게는 어린 청년 이적이 부른 달팽이가 좋다. 노래 가사처럼 욕조에 몸을 담그고 들은 그 날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 날의 내 감정을 기억나게 하는 그때 그의 목소리가 좋다.

그날. 욕조에서 이 노래를 듣다 또록 흘러내린 눈물이 기억난다. 그리고 20여 년, 그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왔다. 늘 토끼같이 빠릿빠릿하던 내가 달팽이라는 이름에 마음을 담은 건, 나도 모르는 20년 전 욕조 속에서 느낀 어느 감정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패닉- 달팽이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아무도 못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모두 어딘가로 차를 달리는 길
나는 모퉁이 가게에서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들고 길로 나섰어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노랠 흥얼거렸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내 모든 걸 바쳤지만 이젠 모두
푸른 연기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내게 남아 있는 작은 힘을 다해
마지막 꿈속에서
모두 잊게 모두 잊게
해 줄 바다를 건널거야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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