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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엄마달팽이 Feb 02. 2021

[06일 미션 중] 공감필법: 태도. 굴원의 <어부사>

유시민의 공감필법 읽으며 글쓰기.

글쓰기 책(유시민의 공감필법)을 읽으며 글을 쓰기 06일째.



“저자가 책 속에 심어놓은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와 인간과 나 자신을 더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공부의 한 면이고, 그렇게 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문자로 옮기는 글쓰기는 공부의 다른 면입니다.”


“어떤 지식과 정보를 주고 전달받으며 어떤 감정을 전하는 텍스트를 주로 읽느냐에 따라 세계와 타인과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세상을 대하고 나를 대하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을 정할 때, 독서를 통해 얻은 정보와 지식을,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활용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어제까지의 나의 태도에 오늘 읽은 글이 하나를 더 보태거나 바꿔버리는 일은 계속적으로 일어난다. 어떤 글을 읽는지, 어떤 사람의 어떤 말이 내 감정을 움직이는지에 따라 나의 오늘의 행동이 달라진다. 매일 심리치료에 관한 전공책을 읽으며 나를 연마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안전하게 그리고 안정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인다. 정보를 전하고 싶다. 그 정보를 받아들일 감정을 일으켜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신경 쓰면서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해야 한다. 마음이 열리는 태도에 대한 공부를 한다. 세상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채우는 타인들의 타인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나는 나 자신의 태도를 우선 점검한다. 나의 마음은 무엇에 열리고, 어떻게 열리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행동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싶은가. 어떤 글과 말로 타인의 감정을 움직이고 행동으로 이어지게 할 것인가.



“내가 달라지면 같은 텍스트도 다르게 해석하게 되고,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하면 그 해석을 토대로 한 삶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는 저자. 우리의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늘 변한다. 겪는 일에 대한 해석을 통해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보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대목에 그어져 있는 밑줄이 보이고, 왜 그어졌을까 신기한 밑줄도 찾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아무 밑줄도 없는 부분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생각은 늘 변하고 나의 태도는 늘 영향받는다. 내가 무엇을 읽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상황을 겪는지에 따라 나의 삶이 바뀐다. 무엇(글, 상황)과 누구에 대한 해석이 언제나 방향키이다. 그리고 그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그 무엇과 누구이다. 주거니 받거니 늘 묶여있다. 20대의 태도와 40대의 태도는 다르다.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전할 것인가.




“어른들은 자꾸만 어린이한테 위인전을 읽어줍니다. 위인전은 대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저는 위인전 인생관을 버렸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요즘 나의 화두이다. ‘훌륭하게’가 아니라 ‘온전하게’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이다. 온전히 삶을 살려면 우선 안전해야 한다. 온전한 삶의 내용은 즐거움으로 채우고 싶다는 것이 지금 이 시점을 지나는 나의 삶에 대한 태도이다.


인간 하나하나가 거대한 우주라는 생각, 그리고 그 우주가 온전히 시간을 여행해야 한다는 생각, 그 시간이 즐겁게 마무리되길 바라는 생각. 나의 생각이다. 타인에게 훌륭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온전히 가득한 것이 중요하다는 시점을 지나고 있는 때, 유명한 저자가 위인전 인생관을 버리자는 텍스트를 남겨놓았다. 그의 텍스트가 우리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그의 텍스트에 도움을 청해 본다.




“춘추시대 굴원이 쓴 <어부사>의 문장입니다. 죽으러 가는 길에 <어부사>를 남겼습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


세상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세상에 맞춰 살라는 것이라는 저자의 해석이다. 정치를 하던 시절, 선거에서 떨어지면서 ‘대중이 원하면 정치를 하고 대중이 원치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책임 회피라고 볼 수도 있고 오만한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세상에 맞춰 살라.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면 될까. 나의 이야기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돌아서면 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저자의 생각을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하고 있다. 내가 하면 할 수 있어(정치)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오만함일 것이고, 원하지 않으니 물러서겠소(정치)라는 마음은 존중과 세상에 맞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려 애쓴다(약간은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자의 마음을 내가 다 읽어내지 못함이려나....).

나는 어디쯤 어느 해석으로 나의 활동을 이어나가야 하는 걸까. 아직은 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이다. 나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은 이 이야기가 세상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전개가 세상에,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갓끈을 씻어야 할 세상에 들어가 갓끈을 씻고 발을 씻어야 할 세상을 잘 찾아 발을 씻으려 한다. 그 무엇을 씻든 내가 하려는 것은 씻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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