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모든게 화났던 하루
처음엔 귀로 들었다.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쇼츠였다.
화면은 보지 않았다.
그냥 소리만 들렸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문장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리듬이 있었고, 단어는 정리되어 있었고,
끝까지 듣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다만... 나는
묘하게 거슬리면서 화가 올라왔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그럴듯한 단어들이 이어지고,
뭔가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묘하게 마음에 안 붙는다.
좋은 말처럼 들렸는데, 좋은 말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서 화면을 봤다.
서울대 졸업식 축사.
아.
그 순간 납득이 됐다.
아니 비아냥 댓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구나.”
권위에 기대어 그럴듯한 말을 덧칠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댓글을 열었다.
좋다, 감동이다, 울었다.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부 그런 말뿐이었다.
여기서 한 번 멈췄다.
이거 좋은 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슬렸는데,
댓글을 보니까 갑자기 헷갈린다.
내가 이상한 건가.
유명한 사람이,
서울대에서 한 축사고,
사람들은 다 좋다고 한다.
그럼 이건 좋은 글일 가능성이 높다.
근데…
나는 왜 이렇게 거슬리지?
아니 거슬리는걸 넘어서 화가나지? 뭘까?
여기서부터 다시 문장을 꺼내본다.
“그럴듯한 1인실에서의 죽음을 위해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깐만.
누가 1인실에서 죽기 위해 사는가.
이건 비유겠지.
인생의 끝은 비슷하니까
중간 과정에 너무 매몰되지 말라는 뜻.
여기까지는 이해된다.
아니 아니 이해가 안된다... 이상하다.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산만하다?
우리가 산만해서 문제인가?
오히려 한 가지에 몰려서,
쫓겨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게 문제 아닌가?
그럼 이건 뭐지.
“산만하지 말라”는 건가?
“집중하라”는 건가?
그럼 무엇에?
1인실에서 죽는 것에?
아니면 그냥…
그럴듯하게 들리라고 넣은 단어인가?
여기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다음 문장.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뭐가 이렇게 길어.
그리고 이 단어들,
뭘말하고 싶은거야? 그냥 막 나쁜단어들 조합인거야?
무례, 혐오 — 태도
경쟁, 비교 — 구조
나태, 허무 — 상태
이걸 왜 한 줄로 묶지?
그리고 “달콤함”.
진짜로 궁금하다.
무례가 달콤한가?
혐오가 달콤한가?
경쟁이 달콤한가?
나태? 인정.
허무?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나머지는?
이건 설명이 아니라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붙인 단어 아닌가.
“길들지 말라.”
뭘?
정확히 뭘?
이쯤 되면 슬슬 화가 난다.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여기서 거의 멈췄다.
의미와 무의미의 폭력?
의미 있는 것도 폭력이고
의미 없는 것도 폭력이고
그럼 그냥
“온갖 폭력” 아닌가?
왜 굳이
이렇게 한 번 더 포장하지? 아니면 의미와 무의미의 무언가를 폭력에 빗대어 말한걸까?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좋은 말이다.
근데 이제는 안 먹힌다.
이미 앞에서 신뢰가 무너졌다.
그리고 마지막.
“낯선 나를 맞이하길 바랍니다.”
이제는 그냥 웃음이 나온다.
낯선 나.
이건 통찰인가,
아니면 그냥 있어 보이는 표현인가.
여기까지 오니까 처음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이거… 그냥 잘 써 보이고 싶은 문장들 모아놓은 거 아닌가?”
나는 이걸 이해 못 한 게 아니다.
이해했는데도 납득이 안 된 거다.
그래서 다시 댓글을 본다.
좋다. 감동이다. 울었다.
그럼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삐딱한 건가.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이걸 못 느끼는
똥멍청이인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튀다가
문득 웃음이 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했던 말들.
다 맞는 말인 건 아는데
괜히 반항심에 따지고 들던 기억.
지금 내가 딱 그 상태다.
사실 금연 중이다. 가장 예민하다는 3일차.. ㅋㅋ
그래서 더 예민한 걸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따지고 드는 걸 수도 있다.
서울대에서 축사한 사람보다
내가 더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오늘은
금연 때문에 짜증이 나서,
그 짜증이 문장 하나에 꽂혀서,
여기까지 생각이 튀어나온 것 같다.
당연히도 나중에 이 글을 다시 보면
창피해서 숨고 싶을 수도 있다.
근데 뭐.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잡생각 수집가다.
오늘은 이 생각을 수집했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