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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Dec 05. 2024

누군가의 수식어조차 될 수 없는 사랑의 광기에 대하여.

영화 <세이사쿠의 아내> 리뷰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세이사쿠의 아내>는 아내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요시다 겐지로의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전에 영화화 된 무라타 미노루 감독 작품을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특히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충격과 감탄을 자아낸다.



오카네는 가난했던 집안 사정에 의해 팔려가듯 17세부터 노인의 애첩으로 살아왔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역할을 부여받고 살아가는 와중에 남편의 요구는 더 커진다. 너에게 뭐든 해줄 수 있다고, 뭐든 해줬는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고, 너를 예쁘게 꾸미는 게 나의 만족이라고 말하며 그의 욕망 어린 눈을 그녀에게 투영한다. 그러던 중, 늙은 남편이 죽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오카네는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노인의 애첩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오카네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마을의 자랑인 모범 청년 세이사쿠가 전역을 했고, 우연히 오카네를 도우면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얼마 되지 않아 러일 전쟁이 발발했고 세이사쿠는 징집된다. 세이사쿠와 이별할 수 없었던 오카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한 여성을 통해 바라보는 전쟁의 시선.


오카네는 이따금 사랑을 받으면서도 끝내 인정받을 수 없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편견에 둘러싸인 오카네는 여우, 첩, 요염한 여자, 엉덩이가 가벼운 여자와 같은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여자들에게는 철저한 무시를 남자들에게는 성적 희롱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오카네는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며 동시에 고립된다. 세이사쿠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었던 오카네는 세이사쿠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독하다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오카네의 실제를 마주하게 된 세이사쿠 또한 오카네를 사랑하게 된다. 모두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 가족들을 등지면서까지 오카네를 선택하기로 한다. 편견으로 둘러싸인, 상처로 가득한 그녀를 감싸 안는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불안으로 가득하면서도 안정감을 선사하며 텅 비었던 그녀의 마음을 채워가기 시작한다.


의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이사쿠를 향한 사랑의 깊이 또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다. 세이사쿠의 아내라는 말에 오카네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수식어? 아니다. 누군가의 수식어로서도 존재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사랑은 별거 아닌 것처럼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그녀의 마음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개전소식과 동원령이 떨어지며 세이사쿠 또한 징집 대상이 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보다 더 두려운 것은 세이사쿠가 오카네의 옆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오카네는 정말 말이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오카네에게 지옥은 그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주체할 수 없는 집념의 사랑이 가학 혹은 죽음의 형태로 나타나며 '족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이사쿠는 마을의 자랑이자 모범 군인이다.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전쟁에 참가하여 국가의 명예를 지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전쟁에서 죽음을 걸지 않으면 명예 또한 지킬 수 없다는 보통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 모든 일들은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 의해 좌우되는 일들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녀의 고독과 외로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쌍한 여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어쩌면 볼 수 없었던 그녀의 고독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는 눈이 멀면서 눈을 뜨게 된다. "혼자가 되자 겨우 당신의 심정을 알았어.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건지. 이제 난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당신 덕분에 난 보통 사람이 된 거야. 네가 아니면 바보 같은 모범 청년이었을 거야. 남의 시선만 신경 쓰는 사람이었던 거야."라는 말처럼 그는 그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오카네의 처절한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집착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힘은 그런 것이다. 서로를 향하는 마음의 형태를 자신들의 방법으로 만들어간다. 



전쟁과 인간성의 파괴


철저히 사회에 외면되는 인물들을 조명하며 제국주의와 전쟁의 허황됨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오카네와 세이사쿠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억압된 사회 구조와 군국주의의 잔혹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결국 어떠한 상황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군국 주의는 일본 제국 시대를 지배한 군국주의 사상으로 군사력이 국력이며 군대가 나라의 모든 부문을 통솔해야 한다고 여겼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의 여파로 여러 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본의 군부 세력은 사회 불안과 경제 불황을 벗어나기 위해 침략 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군부의 권한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농민 운동과 노동 운동으로 인한 사회주의의 확산을 두려워했던 지주와 자본가들은 군부세력에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사회의 불안감을 역이용하는 방식으로 침략 전쟁을 정당화했다. 이처럼 일본의 침략 전쟁은 국가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과거의 전쟁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국가를 유지하고 번성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수탈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일일까? 전쟁 자체가 생명을 앗아가고 재산 또한 보호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는 만큼 그것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국가적으로 전쟁이라는 광기 그리고 폭력에 물들어있었다. 제대로 된 합리적 판단이나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여전히 전쟁의 광기는 잠들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외부의 전쟁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도구로 활용되는 모순을 보여준다.


전쟁은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승패가 모든 것을 좌우할 뿐. 영화는 그 과정에 착취당한 이들이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과 약자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오카네의 모습을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배제되고, 성적·사회적 약자로서 이중의 고통을 겪는 여성들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 속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전쟁과 그로 인해 형성된 폭력적인 사회 구조는 그녀를 점점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몰아간다. 영화는 전쟁 속 여성의 희생이 단순히 개인적 비극이 아닌 전쟁이 가져온 사회적 병폐임을 분명히 한다.


<세이사쿠의 아내>는 전쟁이 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인간의 사랑과 존엄성을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를 묻는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본다면 충분히 그녀의 선택을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후반부에서 이어지는 그 장면들이 너무 강렬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특히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전쟁은 총과 칼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갖 편견의 말들이 지독하게 박혀 있었다. 국가 간의 충돌에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로 이어지는 모습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이러한 편견에 갇혀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만 그것이 전쟁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정당화된다.


이 영화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군사 독재 시설을 떠올리게 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본연의 목적을 잃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억압과 폭력을 저질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이 희생되고 사회는 자유를 억압당했다. 전쟁과 억압은 사회와 개인 모두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질서를 온전히 유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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