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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통의 몸짓.

영화 <국보> 리뷰

by 민드레


그 위대한 이름뒤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감히 언급조차도 못할 일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싶을 정도의 열망은 도대체 어떤 형태일까. 영화 <국보>는 이상일 감독의 신작으로 제78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 부문에 초청되었고 일본에서는 천만관객들이 관람하며 큰 호평을 듣는 등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영화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되었다. 2025년 11월 19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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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키쿠오는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느 날, 세력 다툼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꿈꾸지만 이내 실패하고 만다. 그 후, 그의 재능을 살려 간사이 가부키 명문 가문의 당주 하나이 한지로에게 거두어져 가부키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한지로의 친아들이자 후계자인 슌스케를 만나게 된다. 야쿠자 가문의 피, 가부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두 사람은 자라온 환경도, 타고난 재능도 다르지만 당당한 라이벌로서 서로를 자극하며 청춘을 예술에 바친다. 경쟁과 만남, 그리고 사랑이 그들의 운명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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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가부키, 그 뒤의 처절함


예술을 가득 담아 때론 뜨겁고 때론 차갑게 표현해 낸다. 가부키 배우는 힘들어도, 슬퍼도, 행복해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야 한다. 이는 무엇을 위한 예술일까. 화려함 뒤에 숨겨진 고통은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강조하듯 그들의 고통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 후의 성과나 인정은 타고난 재능이나 뛰어난 능력이 아닌 '혈연'이었다. 보통의 예술과는 다르게 가부키는 혈연을 중요하게 여긴다. 타고난 재능보다 더 지독하리만큼 혈연을 중시하는 그 폐쇄적인 문화는 키쿠오에게 더욱 가혹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잘'해도 혈연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처절했고 포기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자신을 괴롭게 하더라도 그는 결코 그만둘 수가 없었다. 무엇이든 이용했고 설령 그 욕심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데도 가부키에서 결코 멀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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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과 재능 사이


키쿠오와 슌스케는 친구이자 경쟁자로 서로를 자극하며 발전해 왔다. 하지만 어느새부터인가 서로를 신경 쓰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의 반전이 두 사람의 사이를 그리고 이 세상을 뒤집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큰 사랑을 얻었지만 가부키 가문의 사람만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불문율을 깼고 전통을 따르던 가부키 문화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가부키 가문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 이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살펴보면 키쿠오가 가부키 배우로서 성공할 확률은 0에 가까웠다. 폐쇄적인 혈연의 고리는 정말로 지독했기 때문이다. ‘인정'의 끝은 또 다른 '인정'의 시작이었다. 키쿠오는 그러한 굴레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칠까.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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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호평과는 조금 다를 나의 시선.


여성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가부키지만 정작 무대에는 여성이 없다. 에도막부 시절, 풍기문란을 이유로 여성은 무대에 오를 수 없었고 '온나가 쿠'라는 이름으로 남성들이 가부키 분장을 하여 무대에 오르며 여성을 연기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이상화된 허상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예술의 극치를 찬양하지만 그 속에 배제된 여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배우들의 화려한 미모와 몸짓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가부키 배우의 아내의 덕목이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보면 무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여성은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가부키 배우라는 직업아래 희생된 이들의 이름 또한 희미하다. 이러한 지점은 영화에 조금 몰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이상화된 시선, 즉 오리엔탈리즘을 더욱 공고히 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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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줄 예술가의 자세


이런 불편한 지점에도 불구하고, 키쿠오의 열망과 성취는 쉽게 부정하거나 비난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빛났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문제를 고발하기보다는, 예술의 경지에 오르려는 한 사람의 집념과 투지에 초점을 맞춘다. 키쿠오는 다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직 예술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을 각오로 임했다. 이런 열정과 광기를 품는 일은 흔치 않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출신을 먼저 보는 현실에 실망했지만 그 한계를 딛기 위해 더 치열하게 몰두하며 예술을 완성한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고, 고통과 상처는 그에게 절망이자 동시에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본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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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는 것


수많은 모순과 상실, 그리고 이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단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온몸을 던져 만들어낸 순간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영화 <국보>는 가부키의 화려한 전통과 그 뒤의 고통을 동시에 응시하며 예술을 향한 한 인간의 열망이 얼마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제삼자이자 관객으로서 나는 그 몸짓 앞에서 경외와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 그의 성취가 꺾이지 않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신의 꿈을 위해 어디까지 내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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