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리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망설여지는 영화가 있다면 그건 바로 홍상수 감독의 작품일 것이다. 여전히 대중에게 용서받지 않은 악마의 재능을 가진 감독과 배우의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람과 작품은 별개라고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을 반영하기도 하는 그 세계관에서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그는 2017년 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을까.
이 영화의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건 바로 실제 감독과 배우의 이야기를 반영한 듯한 설정 때문이다. 바로, 유부남 감독과 미혼 여배우의 불륜 스캔들. 영화는 그 관계가 끝난 후의 모습을 그린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두 연인의 모습이 아닌 이별 후 상처받은 한 인간의 비참함을 비추고 있다. 어쩌면 무의미하게 그려질 영희의 이야기. 처음엔 실연과 상실을 겪는 영희의 시선에 집중하다 조금씩 주변부에 시선이 옮겨간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특별한 줄거리 없이 흘러간다. 인물들의 대화가 자연스럽다가도 왠지 모를 이질감에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담백한 연기, 적당한 은유, 과하지 않은 연출이 어우러져 그 이질적이고도 모순적 경계를 담아내기엔 충분해 보였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영희는 감독과의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성적으로는 끝났음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이별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내적인 사랑이든 외적인 사랑(불륜)이든. 사실 그녀는 벗어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영화에서는 그들의 사이가 이미 종결되었음을 선언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영희를 통해 보여준다. 기다리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면서도 미련이 잔뜩 남은 얼굴로 그가 오길 바라고 다시 사랑이 이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시선은 날카롭게 잔인할 만큼 그들을 찢어놓는다. 공동으로 짊어져야 할 책임임에도 그 책임은 오로지 그녀에게 쏠려있었다. 그들의 관계가 끝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서있던 중심부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사회적 시선이나 비난이 자신에게 쏟아지자 영희는 도망치듯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대로 그 자리에 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녀는 이제 밤의 해변에서 시린 고난의 시기를 견뎌야 한다.
그 사람도 나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감독 상원은 어떨까? 그는 사실 이 관계의 종말보다는 자신의 명예 실추를 더 두려워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이 섞여 있다. 어쩌면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스스로를 변명하려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면죄부’라고 매듭 짓기엔 이 영화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화면 곳곳에 여전히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잃은 남자의 쓸쓸함이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 담담함에서 애정이 묻어 나오는 그 감정에 왠지 빠져들 것 같았다. 불안과 죄책감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누구보다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 아마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과 지금의 심정을 표현하는 영희보다 더 외로운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영화에 언젠가는 끝날 관계, 그리고 혼자 남겨질 배우에 대한 미안함을 표하는 것 같았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대중은 그녀에게 등을 돌렸으니 스스로 일어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녀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의 이별도 견뎌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변명이자 면죄부를 위한 영화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연인에 대한 미안함이 더 담겨 있었다. 그들의 잘못은 쉽게 지울 수 없으며 자유롭지도 않다. 그들이 선택한 '사랑'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일어나야죠. 이러다 큰일 납니다
영희는 도피처로 바다를 선택한다. 틈이 날 때마다 그녀는 모래사장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다 잠들고 누군가 깨워주는 소리에 스르륵 일어나 어디론가로 향한다. 그녀에게 밀려오는 죄책감에 무너지기도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하며 그녀는 계속해서 바다로 다시 돌아온다. 바다는 영희에게 '위로'와 동시에 '징벌'의 공간이다. 그녀는 감독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 대중의 비난과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밤의 해변이라는 비현실적 공간으로 숨어든다. 모래사장에 누워 잠드는 행위는 잠시 현실을 잊으려는 몸부림이며 파도 소리는 그녀의 죄책감과 불안함을 잠시나마 떨쳐낼 수 있는 공간이다. 인간의 감정과는 달리 변하지 않는 영원함의 공간인 것이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밥은 먹었어? 배고프지 않아?"라는 말은 저마다의 결핍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다. 정신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지만 궁극적으로 허기를 채우지는 못한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은 자신을 위한 기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랑의 실패와 고통에 대한 종교적인 속죄의 의미처럼 보였다. 영화에서는 '술자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영희의 솔직한 속마음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만든다. 그 모습에 웃음 짓기도, 허탈 해하기도, 황당해하기도 하는 모습을 통해 관계가 나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 함께 있어줄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그 미묘한 불편함은 인간의 외로움은 해결될 수 없으며 관계는 덧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영화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단 세상의 시선 아래에서 고독을 견뎌야 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감독과 배우가 원망스러웠다. 도덕적으론 잘못된 선택이지만 감정으로 설득하려 드는 태도에 당혹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그것을 미화하기 위한 자기변명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비난하기도 어려웠다. 단면적으로만 보았던 그 사람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게 되었고 그의 허무와 결핍을 온전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독이 바라보았던 배우, 배우가 바라보았던 감독이 이런 모습이었구나를 느꼈다.
나는 명백한 타인이기에 그들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가까운 주변인이라면 그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응원도 옹호도 아닌 그저 먼 곳에서 바라보기를 선택했을 것 같다. 사랑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들의 비윤리적인 사랑에 쉽게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만큼 그 감정이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생각하는 바가 전부 드러나지 않기에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들이 견뎌야 할 사랑의 무게란 남겨진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선택에 대한 책임감, 끝내 감당해야 할 외로움과 죄책감일 것이다.
영희는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정신적 허기를 채우지 못한 채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본능적인 외로움을 드러낸다. 그런 그녀를 통해 '그렇게 사랑하고도 아무것도 채우지 못했구나’라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끊임없는 갈망이 그녀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영화는 사랑했던 사람들, 그 실패를 끌어안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서울에서 실패 후 강릉으로 내려온 선배들, 사랑에 지쳐 변해버린 얼굴을 마주하며 보통과 다를 바 없음을 느끼게 만든다. 그 모든 관계는 덧없음을 드러내어 우리가 익히 경험한 사랑과 이별, 상실과 미련의 감정으로 뒤섞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