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지워지지 않는 필름, 그 잔혹한 진실을 기억하다
영화 <난징사진관> 필름 시사회 리뷰
전범 국가들이 세계에 끼쳤던 수많은 해악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역사다. 잊어버릴 때마다 없었던 일이라고 부정할 때마다 우리는 이 끔찍한 인류의 비극을 다시 상기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중 가장 잔혹하고 처참한 기록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전역에서 저지른 만행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에 대한 식민 불법 침략과 강제 동원, 그리고 1937년 중국 본토 난징에서 자행된 대규모 난징 대학살이 있다. 이번에 다룰 리뷰가 바로 난징대학살을 다루어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했던 영화 <난징사진관>에 대한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한 장의 사진 필름이 역사의 증인이자 진실의 무기가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줄거리
1937년, 일본이 난징을 점령했다. 난징의 시민들이 대피하는 대혼란 속에서 젊은 우편배달부 아창은 살아남기 위해 난징의 한 사진관에 몸을 숨기고 자신을 사진 현상 전문가라고 속인다. 일본군 종군 기자 이토 히데오의 요청으로 사진을 인화하게 된 아창은 사진관 주인 진 씨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군의 사진 인화 작업을 돕게 된다.
순식간에 무너진 나라는 힘이 없었고 힘이 없는 나라는 국민을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라를 등지는 사람이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다. 아창은 살아남기 위해 사진을 현상하지만 일본군의 만행이 담긴 그 필름을 자신의 손으로 현상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서 이 사진을 현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무너진 국가를 대신해서 역사를 기록하고 진실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는 전쟁 한 복판이 아닌 사진관이라는 좁고 어두운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사진관에는 이젠 수많은 합리화가 담긴 필름으로 가득했지만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증거였다. 더 이상 자신들의 강산을 일본이 더는 짓밟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듯, 이들은 셔터를 당겼다. 빛이 진실을 비추고 화학약품으로 역사를 현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침략 행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왔지만 그 필름들은 제네바 협약에 명백히 반하는 끔찍한 만행의 증거가 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찬양을 위한 사진, 진실을 위한 사진. 영화는 이 두 가치가 '난징사진관'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통해 '기록의 힘'을 강조한다.
한국 또한 아픈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난징 시민들의 비극에 깊은 동질감을 느끼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창이 목숨을 걸고 보존한 필름이 전후 전범 재판의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되어, 난징 대학살의 주요 책임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는 모습을 담아낸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다만,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나라를 되찾고 싶다는 열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이 후반부에서 다소 급하게 이루어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초중반의 섬세하고 긴장감 넘치는 심리 묘사와 달리 후반부의 전개는 만행을 폭로하는데 급급하고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거나 교훈적으로 흐르면서 몰입도를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 영화는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전역을 무력으로 지배하려 했던 만행을 격렬히 비판한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과 홍콩 등의 지역에 대해 강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통제를 시도하는 현실은 과거 침략 국가의 폭압을 비판하면서도 유사한 방식의 지배 논리를 따르는 듯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