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 선샤인> 리뷰
가장 기억에 남는 눈부신 순간은 돌아올 수 없기에 더욱 특별하다. 그 겨울의 찰나를 포착한 이야기 <마이 선샤인>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왜 붙잡을 수 없는지, 아름다움이 무엇을 가려버리는지를 묻는다. 이 이야기는 2026년 1월 7일, 우리 곁을 찾아왔다.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영화는 제77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이다.
홋카이도의 작은 시골 마을 아이스링크장. 타쿠야는 아이스하키에 집중하지 못한 채 빙판 위에서 피겨를 하는 사쿠라의 몸짓에 시선을 빼앗긴다. 홀로 어설프게 그 동작을 흉내 내던 타쿠야에게 아라카와 코치가 다가오며, 세 사람만의 특별한 겨울 연습이 시작된다.
카메라에 투영된 아름다운 풍경과 세 사람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의 모습이라서 그런 걸까. 서로에게 끝내 건네지 못한 그 '말'들은 그동안 쌓아온 시간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날의 햇살이 너무 눈부셔 눈을 전부 녹여버린 것인지 혹은 그 환상이 너무나 눈부셔 가혹한 현실을 가리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른다. 세 사람이 이전과 같을 수 없더라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회복할 수 없는 이별에 불과한 걸까.
감독은 인물들을 편견으로 판단하지 않기 위한 장치로서 '공백'을 이용한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을 굳이 설명하여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는 의도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부터 영화는 설득력을 잃기 시작한다. 성장의 전형성을 탈피하기 위해 '시간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니 이야기 자체가 그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린 것이다. 정보의 공백은 도덕적 낙인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겠으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순간 인간의 잣대는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배경을 지움으로써 인물의 본질은 보호받을지언정 그들의 날 선 반응은 비겁하고 음침하게 느껴질 뿐이다. 특히 사쿠라의 행위는 '정상성'이라는 잣대를 휘두르는 어른의 세계를 그대로 모방한 결과다. 자신이 배운 정상성을 위협하는 불결하고 혼란스러운 사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른의 개입으로 깨져버린 꿈의 파편을 묵묵히 응시한다. 비록 꿈꾸던 세계는 부서졌을지라도 그 파편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되는 오묘한 순간을 포착한다. 마치 눈이 녹으면 땅이 드러나듯 자연스럽게 말이다. 감독의 의도대로 아름다운 순간은 짧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마치 여름방학이 끝나 기억 속에만 남은 꿈처럼. 완벽한 '선샤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셋이 함께했던 그 볕이 각자에게 변화를 불러왔음은 틀림없다. 거창한 결과는 아닐지라도, 말을 건네기 시작한 소년의 변화처럼 말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쿠라를 갈등과 해제의 시작점에 두었으면서도, 그 아이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는 점이다. 사쿠라 엄마의 기대와 완벽주의 사이에서 숨 가쁜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 고민의 과정은 짧게 생략되고, 오해를 통해 추억의 서사를 파괴하는 도구로만 이용되는 듯 보인다. 오해는 쉽고 진실을 바로잡는 것은 어렵다. 그것이 코치가 해명 대신 떠남을 택한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존재(성 정체성)가 누군가에게는 비정상성의 기준이 되는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는 연출의 의도가 도리어 '공백의 무리수'로 도드라지는 지점이 되어버렸다. 서사나 설정 대신 '계절의 변화'로 이별을 일축해 버린 결과 그들의 햇살 같은 순간은 그저 깨고 나면 허무한 꿈처럼 남고 말았다.
햇빛이 강해지면 눈은 녹는다. 이들의 순간은 '눈이 녹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아이들은 학교와 집으로 코치는 자신의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마을에서 떨어진 링크장은 사회적 시선에서 격리된 안식처이자 순수한 열정의 공간이었으나 그곳이라 할지라도 발자국과 핏방울은 선명히 남는다. 발자국이 노력의 흔적이라면, 핏방울은 갈등이 남긴 상처다. 홋카이도의 설원은 찰나의 미학을 담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었지만, 그 하얀 배경은 역설적으로 인물들의 서사적 빈틈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눈은 모든 것을 덮어 아름답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아래 숨겨진 진실과 구체적인 고민들까지도 함께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진심 어린 소통'보다는 '아름다운 이별의 그림'을 만드는 데 더 집착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럼에도 <마이선샤인>은 성장이 완결되지 않아도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포착하는 것은 성취나 화해가 아니라 깨진 꿈 이후에도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미미하고 불안정할지라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영광의 순간만을 그리지 않기에 눈이 녹고 사라진 이후의 시간 역시 이 이야기의 일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