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신문을 보시다가 수기 한 번 써보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써서 제출했다가 얼떨결에 상 받은 작품
상금으로 30만 원 받고 기분 정말 좋았던 그때가 떠오른다. '
함박 피어나는 목련꽃처럼 수수하게 웃어주는 둘째 아이에게 미안한 소리지만 사실, 둘째 아이가 생겼을 땐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었다. 가장 먼저 든 걱정이라면 단연코 산후조리였다. 둘째 때는 첫째 때보다 몸의 회복도 느리다던데 나는 어떻게 산후조리를 해야 할까?
첫째 때는 산후조리원을 들어가면 됐기에 별 걱정이 없었지만, 둘째 때는 산후조리 중 첫째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첫째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산후조리원은 거의 드물뿐더러, 설령 같이 산후조리원에 들어간다 해도 아이가 많이 답답해하고 힘들어 하기에 산후조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였다. 그렇다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자니 시댁에서 살고 있는 처지인 데다가 시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기에 아직까지 생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시어머니에게 기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친정어머니 또한 생업으로 바쁘시기에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잘 지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첫째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는 산후조리원을 예약하였다.
첫째 아이 33개월. 폭설에 한파가 가시지 않는 겨울이었지만 산후조리원은 덥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산모인 나도 답답하고 더울 때가 많았는데 아이는 오죽했으랴. 첫날부터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 집에 가자.”보채기 시작했고, 아니면 밖에 나가자고 채근될 때가 많았다. 신랑이 출근하고 난 후에는 몸조리하러 누워있을 틈도 없이 “엄마, 우리 한 바퀴만 돌자. 산책하자.”하는 아이와 함께 산후조리원과 병원을 순회해야만 했다. 아빠가 퇴근한 후에 집에 가라고 하면 엄마도 같이 가자며 눈물 바람을 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를 두고서 집에 가겠다고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산후조리원이 싫었나 보다. 그런 아이를 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아 편하게 잠을 자지 못해 몸과 마음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며칠 같이 안 자고 안 보는 것뿐인데 어찌나 밤 새 보고 싶고 눈물이 나던지... 동생 생긴 성장통에 엄마까지 잃는 듯한 아픔에 아이는 얼마나 힘이 들까?
결국 안 되겠다 싶어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지 3일도 되지 않아 급히 산후도우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산후도우미 관련 기관이 많아 다행히 당장 3일 뒤라도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오실 수 있다는 희망에 기뻐하였다. 그중 ywca는 다른 곳보다 비용이 저렴하다 하여 ywca를 선택하게 되었다. 연락을 취한 직 후, 담당자는 이모님을 알아본다고 하시고서는 연락을 주시지 않아 불안하였다. 하루라도 급한 마음인데 조리원 퇴실 전날까지 연락이 없어 어찌나 야속하고 속상하던지.. 다시 연락을 드리자, 담당자분께서는 꼭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셨고,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당일부터 한 이모님과 함께 3주간 지내게 되었다.
첫날의 어색함 때문일까? 쉽사리 어떤 걸 부탁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고, 행여 내 뜻과 맞지 않아 산후조리를 더욱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무엇보다 시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기에 이모님께서 불편해하시며 싫어하실까 내심 신경 쓰이고 죄송하기도 하였다. 그런 마음이 더 요동치기도 전에 이모님은 먼저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밥을 먹다가도 아이가 울면 젖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미역국에 밥을 말아 급히 먹으려고 하니, 이모님께서 산모가 밥을 먼저 잘 먹어야 힘도 생기고 젖도 잘 나온다며 아이가 울면 안아 줄 테니 천천히 먹으라고 말씀해주셨다. 친정 엄마 같은 따스한 말 한마디에 걱정되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조리원에서는 밥을 먹다가 아기가 배고파 운다고 연락이 오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수유실로 뛰어가기 바빠 차가운 밥을 먹기 일쑤였는데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니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신랑 퇴근이 늦는 날에 아기가 잠을 자지 않고, 첫째 아이가 보채고 있을 때면 퇴근도 마다하시고 아기를 봐주신다며 저녁을 먹으라고 챙겨주시기도 하셨다. 때문에 식사를 잘 챙길 수 있어 너무 감사하였다.
아침에 출근하시면 밤새 아기가 울며 보채진 않았는지, 편히 잘 잤는지 여쭤봐 주시고 첫째 아이와 남편이 밤새 어질러 놓은 방을 깨끗이 청소해주시고 빨래를 해주셨다. 세상에 태어나 하루하루가 고단했는지 잠투정이 심한 둘째로 인해 밤새 잠을 못 잘 때가 많았다. 이모님은 아기가 행여 옆에 있으면 잠을 편히 못 잘까 걱정하시며 아기를 안고 방을 나가곤 하셨다. 그러면 밤새 자지 못한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새로운 밤을 위한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어깨가 너무 아플 때 신랑이 주무르는 모습을 보면 달려오셔서 산모 몸을 그렇게 세게 하면 안 된다고 하시며 부드럽게 마사지도 해주셨다. 집에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해 신랑과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이모님께서 아이를 잘 봐주시기에 맘 놓고 외출할 수도 있었다. 오히려 외출을 걱정하는 시어머님께 기분 전환도 필요하다며 걱정 말고 다녀올 수 있게 하라며 내 맘을 콕 집어 읽어주셨던 배려 덕분에 얼마나 힘이 될 수 있었는지...
첫째 아이는 제 딴에는 반갑지 않은 손님인 동생을 예뻐하면서도 사랑을 빼앗길까 염려하며 어느 누구도 아기를 안지 못하게 하였다. 그럴 때면 이모님께서 “할머니는 아기 할머니야. 할머니가 아기 안아줄게.” 라며 인식시켜 주셨고 그로 인해 첫째 아이는 불안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첫째 아이는 지금도 종종 “아기 할머니 보고 싶다. 아기 할머니 이제 안 와?”라고 묻곤 한다. 아마 매일 자신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나오셔서 반겨주시고 안아주셨던 그 따뜻함으로 정이 많이 쌓이기도 하였을 터이다.
가장 염려하였던 시어머니와의 관계. 시어머니께서 불편해하실까 걱정도 했지만 하루는 시어머니께서 드시고 싶어 하셨던 배추전을 만들어 주셨다. 경상도 음식을 전라도 분이 하시기 힘드셨을 텐데 어찌나 맛깔나게 해 주시던지.. 배추전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시어머니와 오붓이 앉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정도 쌓이고 편해져서 같이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모님은 이제껏 살아오셨던 삶의 흔적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고, 남편과의 관계, 자녀 양육에 관한 좋은 정보들도 나누어주셨다. 친정엄마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남편에게도 하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들도 나누면서 마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든든한 상담자를 만난 듯한 편안함과 위로가 가득하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연륜 있는 삶 속에서 나온 지혜일 것이다.
그렇게 3주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헤어질 시간에 어찌나 섭섭하고 아쉽던지.. 처음 산후 도우미를 알아볼 때는 주변 사람 대부분이 친정 엄마, 시어머니에게 산후조리를 받는 다는데 나는 왜 그런 복이 없을까 속상하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차라리 친정어머니, 시어머니보다 더 편안한 산후조리를 하지 않았나 싶다. 가까운 가족일수록 불편한 것을 이야기하면 다툼이 될 수도 있고, 행여 고생스러우실까 걱정되는 마음 편한 산후조리보다 맘 조리는 산후조리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모님은 이미 어떤 걸 하셔야 하는지 잘 알고 계시고, 나의 필요에 맞는 큰 도움들을 주셨기에 편하게 산후조리가 가능했지 싶다. 게다가 훈훈한 마음까지 두고 가셔서 지금도 집안 곳곳을 지날 때마다 아기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만약 셋째를 낳게 된다면 그때도 주저 없이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택할 것이다.
“이모님. 이모님 덕분에 아기도 잘 자라고 제 몸도 많이 회복되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글을 쓰며 이모님과의 추억을 돌아보니 참 감사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모님 덕분에 산후우울증도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귀한 시간에 함께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